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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 시장이 생긴 사연

북한에서 시장을 통해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물건까지 팔리고 있으며 특히나 초코파이와 신라면이 인기라는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기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북한 시장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북한 시장은 1945년에 형성되었던 ‘농민시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북한 시장은 '중앙계획 밖에 존재하거나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소득창출 경제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정부의 통제 아래 비공식 부문에서 유일하게 농민시장만을 합법적 시장으로 허용하였습니다. 북한은 계획경제체제로써 국가가 모든 생산설비와 자재, 원료를 장악하고 생산과 소비를 비롯한 나라의 모든 경제활동을 계획적으로 진행합니다. 그러나 생산력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전한 계획경제를 무리하게 추진하여 경제난이 심화되었고, 김일성 정권은 1964년 농민시장을 부활시키게 됩니다.


북한 시장의 모습 (출처: 중앙포토)


 북한 경제가 침체되면 농민시장은 활성화

농민시장은 국영상업을 보충하여 상품공급통로를 넓히며 노동자와 사무원들에게 식료품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을 공급함으로써 인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하였습니다. 농민시장은 계획경제의 식량 및 생필품 공급능력에 따라 위축되거나 활성화되었는데, 1970년대 이후 북한 경제가 침체됨에 따라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1970년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서방 채무불이행과 외자도입 정책의 실패, 과도한 군사비지출 등으로 인해 북한 경제가 침체 상태에 빠지면서 농민시장에서의 사적 거래가 증가합니다. 

1986년 태풍피해와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대비를 위해서 주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을 줄이고 공장, 기업소 등에 여성위주로 정식 고용 인력을 감축하는 조치가 시작되면서 농민시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 사적 경작지를 확대 허용했고 1983년 부업생산에 의한 곡물의 자유처분을 인정하였습니다. 사적으로 생산된 농작물은 농민시장에서 거래가 되었고 부업과 가내작업 장려 조치는 생필품의 시장 유입을 증가시켰습니다. 1984년 김정일 지시에 의해 8.3인민소비품생산운동이 시작되면서 비공식 부문의 생산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북한정권은 농민시장이 국가통제 아래 계획경제를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할 경우 묵인하거나 우호적인 정책을 실행했지만 계획경제를 침식할 위험이 높아지게 되면 강력한 통제정책을 펼쳤습니다. 북한은 1987년부터 상설시장을 7일장으로 변경, 거래품목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으며, 1989년 불법적인 토지 경작을 금지했습니다. 또 1992년 화폐개혁을 단행했으며 같은 해 10월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단속하기 위해서 농민시장과 불법적인 토지 경작을 단속했습니다. 기근이 발생하기 전 농민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적었고, 거래품목도 식량, 채소, 생선, 가축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계획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농민시장이 확산되었습니다.


 배급시스템이 무너지고 시장이 살 길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면서 소련의 대북 경제원조가 중단되었습니다. 대소무역의 붕괴는 북한의 제한된 소비재공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경제는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고 공장, 기업소는 원료와 일감 부족으로 가동이 거의 중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식량 생산이 감소하면서 식량 배급제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식량 배급시스템이 중단되고, 최종 소비재와 생산재의 분배 통로가 무너진 것입니다. 북한 경제가 휘청거리자 북한주민들과 소규모 사회단위들은 생존과 식량 확보를 위해 계획경제 밖의 영역인 시장에 참여합니다.

아사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북한정권은 농민시장에 대한 모든 규제를 사실상 철회하고 주민들의 시장 활동을 묵인하게 됩니다. 1995년 이후 시·군 단위에 각각 2~3개의 시장이 개설되었으며, 전국적으로 300~350개 시장이 운영되었습니다. 북한 시장 활동을 촉진시킨 계기는 2002년 7월 1일 시행된 ‘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였습니다. 

북한 정권은 2003년 종합시장을 설치하여 시장을 양성화합니다. 종합시장에서는 식량과 공업제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개인, 국영기업소, 협동단체의 시장 내 매개 운영이 허용되었습니다. 농업 부문에서는 분조 규모 축소, 뙈기밭 합법화 등 농민들의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국영기업 부문에서는 지배인의 권한을 확대하고, 기업 실적 평가를 위해 번 수입 지표를 도입합니다. 공장과 기업소는 계획 외 생산과 유통 등 시장 참여를 보장받게 됩니다. 물자교류시장과 수입물자교류시장이 개설됨으로써 공장, 기업소는 국가에서 공급받지 못하는 원자재를 시장에서 거래하고, 국영상점은 위탁수매상점화하면서 사실상 시장부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공장, 기업소는 물론이고 당·군·정의 무역기관이 시장에 참여했습니다. 국가의 원자재 공급이나 자원 배분이 중단된 상황에서 국가기관들도 시장을 통해 원자재를 조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원자재 공급, 상품 판매, 자본 조달 등 계획경제의 작동을 보완하고, 국가 재정 또한 시장에서 충당되었습니다.

북한의 시장은 1990년대 식량 배급과 자원 배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활성화됩니다. 북한에서 시장의 역할이 점점 커짐에 따라 북한 전문가들은 시장을 통해서 북한의 생활을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시장을 통해서 거래되는 쌀값을 통해서 북한의 물가를 살펴보기도 하고 시장에서 북한 최신 유행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 시장 소식을 살펴보면 평양 지역에서 지난 3월 말경 시작한 '2호미' 배급을 9월까지 지속했습니다. 이 때문에 평양지역의 쌀값은 11월 초까지 5,000원 초반대로 안정세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0월부터 2개월간 이뤄진 타 지역에 수도미 배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2월 초 현재 쌀값은 4,200원으로 비교적 싸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배급이 안정화되고, 시장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면 북한 주민들의 겨울이 따뜻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 유은실 기자였습니다.


 참고문헌: 오경섭, 북한시장의 형성과 발전, 세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