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의 철광도시 ‘무산군’을 소개합니다

지난 7월에 저는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주최한 ‘2013 통일미래리더캠프’에 참가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캠프를 통해 탈북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를 방문하여 북한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북한의 무산군을 조망할 때였습니다. 중국 접경지대에서 내려다보면 북한의 무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실제로 시가지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그런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멀리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무산 시가지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북한의 넓은 철광도시인 ‘무산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북한의 무산군은 우리나라가 광복했을 당시 서북단에 있었던 군으로 함경북도 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동쪽은 부령군과 경성군, 서쪽은 함경남도 혜산군, 남쪽은 길주군, 북쪽은 두만강과 접하고 있습니다. 면적의 9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진 무산군은 오늘날 함경북도 최대의 광업도시로 떠오르고 있는데 대부분의 인구가 무산철광과 관련된 노동자와 가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무산’은 ‘나무가 풍성하고 산이 많은 고장’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식량난으로 인한 북한식 ‘주체농법’과 벌목으로 인해 현재 북한 대부분의 산지에는 나무가 별로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무산군에는 특별히 유명한 곳이 바로 ‘무산광산’입니다. 지금부터 무산광산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무산광산은 추정매장량 30억t, 가채매장량 13억 톤인 노천광산으로, 아시아 최대 ‘자철광’ 산지로 외부로 드러난 부분만 243㎢에 달합니다. 17세기 초부터 소규모로 채굴되기 시작한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부터 근대적 설비로 개발되었습니다. 현재는 중국 기업이 철광석 채굴권을 50년간 가지게 되어 있어 대부분의 철광석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무산광산에는 1만 명 가량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대형 병원과 정양소, 요양소, 문화회관 등이 있습니다. 무산공업대학과 무산광업전문학교, 대형자동차운전사양성소 등을 설치하여 현재 많은 기능공과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 중국에서 보이던 북한의 무산시내 모습(2013년 7월에 촬영)

 

저는 무산군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문득 실제로 무산군에 살았던 주민의 의견을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산군에 살았던 주민이야말로 무산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고 더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조사를 하던 중, 저는 수소문 끝에 탈북 전 무산군에서 거주했던 강원철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원철씨는 펑소 자신의 별명을 ‘무산 원철’이라고 할 만큼 자신의 고향인 무산군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부터 강원철씨의 이야기를 통해 무산군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강원철씨의 모습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2001년에 한국에 입국한 강원철이라고 합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북한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통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에 관련된 일을 하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대학 재학 시절에는 북한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다양하게 했었어요. 북한 인권에 관련된 세미나나 전시회 등을 진행했지요. 대학 졸업 후에는 북한전문 잡지 ‘NK vision’ 편집부에서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고, 현재는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공부하면서 초중고 통일교육 탈북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 오기 전 무산군에서 지냈다고 하셨는데, 그곳에는 언제부터 거주하셨나요?

저는 무산에서 태어나서 중국에 오기 전까지 계속 살았어요. 한마디로 탈북하기 전까지 총 17년을 살았던 것이지요.

 

■ 무산군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떤가요?

무산군은 전반적으로 회색빛깔의 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어요. 다른 지역보다 좀 추운 편이라 그런지 때로는 싸늘한 분위기를 품기도 했구요. 또한 무산군에는 자동차가 조금씩 다녔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늘 조용하고 차분했어요.

 

■ 무산군의 자연환경은 어떤가요?

우선, 무산군에는 아파트와 같은 고층건물이 없어서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에요. 하지만 의외로 나무와 숲이 별로 없지요. 아무래도 무산군은 나무를 다 자르며 개관된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한 밭을 일구어야하기 때문에 산에 나무가 없기도 한데, 이런 점이 옆 동네인 중국과 많이 비교가 됐던 것 같아요. 중국은 나무가 항상 풍성했기 때문이죠!


■ 무산광산의 모습은 어땠나요?

무산광산도 전반적으로 회색빛깔을 띠고 있는 곳이었죠. 여러 곳에 광산을 파서 그런지 운지가 참 많았고, 무산군에 거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무산광산에서 일을 했기에 노동자들은 아침마다 이곳으로 출근했어요. 그런데 무산광산은 중국이 50년씩이나 임대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무산광산을 거의 다 파내고 있었어요. 북한이 전기나 기술이 발달했다면 중국인들도 이곳에 간섭할 일이 없고, 북한도 철광석을 많이 캤을 거예요. 하지만 현재까지 북한은 그러한 여건이 되지 못해 무수히 많은 철광석을 중국으로 보내고 있답니다.

 

▲ 강원철씨와 인터뷰 하는 모습. 강원철씨는 현재 북한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 무산군에도 공원 같은 것이 있었나요?

무산군에는 ‘청년공원’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놀이공원과 나름대로 비슷한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회전마차가 있었고 풍차도 있었고 몇 개 정도가 더 존재했어요. 청년공원의 모습이 이렇다보니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나 무산군에 살던 아이들이 여기로 소풍을 자주 왔어요. 저도 가본 적이 꽤 있는데, 그곳 경치가 무척 좋았어요. 당시 저는 청년공원에 도시락을 싸서 갔었는데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친구들과 뛰어놀고, 보물찾기를 하며 놀았던 것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네요, 하하하!

 

■ 무산군에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땠나요?

학생들의 모습은 대체로 활기차진 않았지만 끼리끼리 모여 다니며 재미있는 놀이를 하곤 했어요. 학생들은 중학생 때까지 당에서 정해준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소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등에 메는 가방을 가지고 다녔고, 중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가지고 다녔어요.

 

■ 무산군에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산시내에서 공개처형을 할 때였어요. 공개처형 날이 되면 우선 무산시내에 있던 시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어요. 무산시내에는 벌판 같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주로 공개처형이 이루어졌지요. 저는 그곳에서 재판을 하고 총살하는 장면을 총 세 번 보았어요. 공개처형 현장에 있다 보면 기분이 무척 나빴고 무서웠습니다. 그 현장들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살면서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그 당시 공개처형을 당했던 죄수들은 누군가를 살인했던, 무언가를 도둑질 했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 한국에 살면서 고향이 그리울 때가 많을 텐데요. 무산시내 생각이 가장 많이 떠오를 때는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명절 때 고향 생각이 가장 많이 나요. 뿐만 아니라 친구들하고 고향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향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되네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일단 너무 행복했습니다. 사실 중국에 있는 동안 위험한 상황이 너무 많았기에 항상 불안했거든요. 하지만 한국에 오고 나니 걱정과 염려를 할 일이 없더라구요. 한국에 와서 저는 처음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기뻤고, 한국이 정말 잘 사는 국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특별한 질문을 해보고 싶은데요. 강원철씨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통일이 된다면, 고향땅으로 다시 가고 싶어요. 남한 생활이 싫어서가 아니라, 탈북하면서 헤어진 친구들과 이웃들을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이에요. 황폐화된 북한 땅 중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그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통일이 되면 무엇이 가장 좋을까?” 하는 질문에 저는 제일 먼저 ‘이산가족’ 문제의 해소를 답하고 싶어요. 제겐 통일비용의 전망보다 그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거든요. 저는 탈북 당시 부모님이 북한에 계셨기 때문에, 가족이 남과 북으로 떨어져있는 것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요. 그래서 통일이 된다면, 북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음대로 이동하는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 북한에 있는 동포들이 마음껏 여행하며 기뻐하고, 종교도 가질 수 있는 남한의 자유를 느끼게 되면 얼마나 많이 좋아할지 상상이 가요. 그런데 통일을 위한 우리나라 정책들을 살펴보아도 그렇고, 통일부가 감당 할 수 있는 것들에도 한계가 있더라구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통일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국민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아갔으면 해요!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 고향 땅 무산에 갔으면 좋겠어요. 또한 두만강에 가서 친구들과 예전처럼 고기를 잡고 놀고 싶네요.

▲ 지난 9월에 촬영한 북한 무산시내의 모습

 

지금까지 북한의 철광도시인 무산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특별히 무산군 출신인 강원철씨를 통해 무산군에 대해 더욱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어서 빨리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강원철씨가 고향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볼수록 마음이 애틋해지고 통일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게 되는 그곳, 북한의 무산군!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를 방문하여 무산군의 무산시내를 꼭 조망해보시길 바랍니다.

 

<정보>
-2013 통일미래리더캠프 Work Book

<사진>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