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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상하이에서 본 통일의 미래 : 뼈 아픈 역사를 간직한 상해임정과 김구선생

안녕하세요 최빛나 기자입니다.

저는 9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중국 제일의 경제도시, 세계적인 상업도시 '상해(상하이)'를 다녀왔는데요. 빡빡한 일정 중에서도 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중 첫째로 상해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이 곳.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상해임시정부 청사와, 독립과 통일을 열망한 진정한 애국자 김구 선생에 대해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중국 상해라는 도시는 옛부터 프랑스의 조계지로서 외국인의 통상이 자유롭고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지역이라 일본의 군사력이 뻗치지 못했던 국제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조직적으로 항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최적지였기에 임시정부 청사를 상해에 짓게 되었다고 가이드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먼저 상해 임시정부 청사의 위치는 외국인과 쇼핑센터가 즐비한 신천지의 끝자락,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도로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도로 바로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언뜻보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만큼 매우 초라하고 좁을 골목 안쪽에 있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제일 먼저 도착하면, 청사 입구 왼쪽 건물 1층에서 임시정부의 활약상과 청사 복원에 관한 내용을 담은 5~6분 가량의 비디오를 시청하게 됩니다. 비디오 시청이 끝난후 중국 현지인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코스대로 좁고 경사가 있는 낡은 나무계단을 올라 이승만, 박은식, 이동녕 등이 사용하였던 2층의 집무실과 3층의 당시 사용하였던 가구, 서적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을 관람하게 됩니다.


 

1919년 3월 1일, 일제하 최대의 한민족 독립운동이 발발하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속에서 한민족의 줄기찬 독립 투쟁은 곧바로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1919년 4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그동안 임시정부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1945년 광복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한국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최고 중추기구였다.

1990년 노만구 마당로 306농 4호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했던 상해 임시정부 청사로 최종확인 되었고 노만구청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3년 4월 수리복원하여 개방한후 임시정부 청사는 한국인들에게 한민족의 "성전"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오늘날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한민족의 맥을 이어준 "성지"로서 한국국민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으며 또한 중한 양국의 우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위의 소개글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에 적힌 소개글입니다.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해 임시정부가 앞으로의 통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했던 김구 선생께서 광복후에도 갈라진 대한민국을 보며 가슴치며 통곡하셨고, 누군가가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첫째도 통일, 둘째도 통일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김구선생은 3.1운동 직후 국내외 각지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이곳에서 집무하시면서, 우리의 독립의지를 하나로 집합하고, 신익희, 윤현진, 서병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 내무의원으로 선임되어 활동 하셨습니다. 또 안정근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 독립운동이 위기를 맞을때마다 독립군과 전쟁비용을 마련하는 등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활약하셨습니다.

임시정부 입구에 있는 김구 선생님의 흉상과 친필로 씌여진 '독립정신' 친필액자처럼 김구선생님의 대한민국 독립, 통일에 대한 의지와 그토록 바라던 광명은 무엇이었을까요?

상해를 오면 한국 관광객들이라면 꼭 찾고있지만, 웬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기만 했던 상해 임시정부 청사.

우리말이 어눌한 현지 관리인의 기계음같았던 상해 임시정부 활약상.

이곳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웬지 모르게 무거웠습니다. 청사 바로 앞 길 건너편의 건물들은 나날이 발전해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고, 청사가 있는 이 지역도 곧 개발이 예상되며, 주택가와 인접하고 있어 매우 낙후되어 앞으로의 존폐여부도 위태롭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니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의 강력한 요청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임시정부 청사가 어쩐지 우리의 통일과도 매우 닮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통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를 그렇게 잊어가듯이 통일의 문제에도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통일세대들이 조금이나마 그 중요성을 알아가고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서 이룬 독립의 의지대로 통일의 의지가 모인다면 우리의 역사 속 통일처럼 앞으로의 통일 또한 이룰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독립투사들 처럼 통일세대들이 앞으로의 통일투사가 되어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 최빛나 기자였습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임시정부와 김구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