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생기자단 5기 최가현 기자입니다.
2012년은 런던하계올림픽이 있는 해이며, 8월은 그 올림픽이 열린 달입니다. 이번 편은 북한과 하계올림픽 편입니다.
북한이 처음 올림픽에 참가 한 것은 1964년 동계올림픽 때이며, 하계올림픽은 8년 후인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처음 참가하였습니다.
뮌헨 올림픽 이후 1984년에 개최된 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88년 24회 서울 올림픽의 두 번을 제외하고 모두 참가해 왔는데요. 이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의 주도로 시작된 보이콧에 의해 동독과 북한을 포함한 14개국. 국가의 정치적 명분을 이유로 이란 등 3개국을 포함해 17개국이 참가하지 않았는데요. 이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미국이 보이콧을 주도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때문에, 모스크바 올림픽과 더불어 ‘반쪽짜리 올림픽’ 이라고 불립니다.
88 올림픽은 양측의 주장에 따른 불참이 그 이유인데요. 1985년 2월 1일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북한선수단의 서울올림픽 출전 문제’에 관한 협의를 가지도록 하자는 제의에 따라 1985년 10월 8일~9일 간 동안 스위스의 로잔에서 제1차 남북한체육회담을 가지게됩니다.
남측은, 올림픽 헌장과 IOC의 의견을 존중해 '일부 종목의 예선 경기를 분산하여 개최하겠다'고 하였고, 북한은 여기서 5가지를 주장하게 됩니다.
① 주최는 남북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공동으로 할 것. ② 명칭을 ‘조선올림픽경기대회’ 또는 ‘조선평양 서울올림픽경기대회’로 할 것, ③ 경기종목은 서울 12개, 평양 11개를 치룰 것, ④ 개폐회식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따로 거행할 것, ⑤ 텔레비전 방영권의 이익은 반반씩 나눌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IOC측에서는 양쪽 주장에 대해 '올림픽 헌장에 정면으로 위배되기에 불가능하나, 일부 종목의 분산 개최는 가능하다.’고 절충하였지만, 북한측에서 거절함에 따라 결실없이 결렬되었고, 이어 진행된 2·3·4차 회담 역시 북측의 공동개최 주장으로 결국 결렬됩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의 5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선수단장이 “공동개최가 아니면 서울올림픽 불참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급함으로써 올림픽에 대한 남북의 대화는 문을 닫고, 결국 북한은 서울 올림픽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번 올림픽부터는 야구와 소프트볼이 제외되어 26개 종목, 302개 세부종목이 진행되었는데요. 북한은 여자 축구, 남녀 역도, 남녀 레슬링, 여자 유도, 여자 사격, 여자 양궁, 남녀 권투, 남녀 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남녀 탁구, 남녀 마라톤의 총 11개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참가선수의 수는 처음에 50명으로 예상되었으나, 남자 다이빙과 여자 권투에 1명 씩, 여자 축구에 4명이 추가되면서 56명의 선수가 메달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좋은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남북의 선수들. 2편에서는 '북한의 스포츠 영웅'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올림픽 열기로 가득한 8월 에서 최가현 기자였습니다.
참고-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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