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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만주에서 만난 진정한 독립운동

 안녕하세요? 어느덧 여름도 무르익어 가는데요. 여름하면 휴가와 여행을 떠올리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번 여름동안 많은 여행이 계획되어 있고,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여행보다도 좋은 여행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그에 관련된 경험을 했기에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얼마전 통일미래리더캠프를 다녀오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낀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통일미래리더캠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총 3차에 걸쳐서 중,고학생 100명과 대학생 200명을 각각 100명씩 3차로 나누어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을 탐방하게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통해 뽑힌 통일미래리더들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탐방하며 북한을 조망하고 고구려 유적지와 독립운동지역을  탐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연변등 조선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탐방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바로 일송정입니다. 일송정은 중국의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룽징 시에서 서쪽으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원래 산 정상에 우뚝 선 한 그루의 소나무 모양이 정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곳은 룽징 8경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이 곳에서 심신을 단련했다고 하는데, 이는 산 정상에 독야청청한 모습으로 우뚝 선 일송정의 모습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제는 독립투사들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이 소나무를 1938년 결국 없애버리게 됩니다. 그 이후 우여곡절끝에 1991년 3월 룽징 시 정부는 한국 각계 인사들의 후원으로 옛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어 복원하고 정자를 신축하여 그 해 9월에 준공하게 됩니다. 현재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다시금 일송정의 모습을 기대하며 자라고 있으며 정자 하나가 우리의 쉼터를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독립용사들의 중심지였던 일송정에 오르고 보니 정말로 감격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대성중학교입니다. 현재 룡정중학교는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자치구 용정에 있는 학교입니다.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윤동주(1917~1945)의 모교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재학중 시를 지어 윤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하였으며, 자필 시집인 '하늘과 별과 시'를 펴냈습니다. 그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릿쿄 대학과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합니다. 그러던 중 1943년 여름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44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언도 받은 후 1945년에 감옥에서 옥사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로서 수 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하게 됩니다.


 

 목숨을 내걸어 독립을 위해 힘썼던 그들이 있었기에 강대국간의 협정 속에서 한국이 독립을 할 수 있었으며, 독립 이후 안타깝게도 바로 분단이 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였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다시금 목숨을 걸고 통일운동을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총칼을 들고 무력운동을 하여야만 목숨을 내건 운동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정신을 쏟아서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 항아리를 비롯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탐방중에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청산리 대첩의 현장을 지나갔습니다. 보통 청산리 대첩이라고 생각하면 단순히 청산리라는 곳에서 대승을 거둔 독립운동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청산리대첩은 사실 여러 곳에서 행해졌던 독립운동 및 전쟁을 부르는 총칭이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김좌진 장군이 거둔 대승입니다. 사실 별다른 유적이 존재하지 않은데다 일정상 둘러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근처를 둘러본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청산리대첩의 중심현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청산리를 둘러보면서 다시금 독립운동에 대해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둘러볼 곳은 바로 뤼순 감옥입니다. 뤼순 감옥은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 선생님이 생을 마감한 곳으로 유명한 감옥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독립을 행하였던 분들이 수용되었고,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합니다. 밖에서 보았을 때에는 사실 그리 큰 곳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여러가지 시설이 존재했으며 감시와 처형, 노동을 위한 시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며, 특히 처형을 위한 시설이 너무도 잘 되어있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는 많은 정치범을 수용하고 처형하였으며, 교수형을 한 뒤에 나무통째로 묻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훗날에는 그나마 아까워서 그냥 바로 묻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세 종류의 시, 특히 조국을 위해 남긴 시를 읽어보면서 제 가슴 또한 뜨거워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내에서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평가 또한 아시아의 최고의 협객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압록강단교에서의 6.25 전쟁을 다시금 상기시켜본다거나, 사실 많은 일정이 제겐 색다른 경험이었으나 역시 독립운동의 유적지가 가장 색다르게 와닿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물론 독립운동의 유적지는 많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탐방을 통해 본 고구려 유적지나 백두산 천지의 모습도 감동적이었지만,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보고 이렇게 힘을 합쳤던 우리 민족이 서로 떨어져 있는 안타까운 분단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더욱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독립운동을 불과 수십년 전의 우리는 남한 북한이라는 분열없이 한민족으로써 독립을 염원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독립이 지금의 분단된 조국일까요? 이제는 다시금 힘을 합쳐서 통일된 조국을 향해 나아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독립운동의 얼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아가 통일에 대한 교육의 장소로 삼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분단된지 불과 백여년도 되지 않은 우리는, 언제나 한 몸,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러한 조국을 찾기위한 싸움이었던 독립운동. 온 국민이 원했던 진정한 독립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통일부와 함께 한 발, 한 발 이루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