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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탈북학술단체 'NK 지식인 연대' 김흥광 대표를 만나다

 


 

[NK 지식인 연대 김흥광 대표 인터뷰]

 

 

컴퓨터 공학 교수 출신 탈북자

탈북 학술 단체 NK 지식인 연대 김흥광 대표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맡겨야 합니다."

 

 

 

"결코 성공한 게 아니죠. 중심부로 하도 안 끼워주니까 변두리에서라도 탈북 지식인들의 생각을 모아보려고 지식인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데 지원은 일절 없고…최소한 이것에 대해 손뼉이라도 쳐줬으면 좋겠습니다."

 

 

 

탈북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했냐고 묻는 질문에 김흥광(50) NK 연대 지식인 대표는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5평 남짓한 김흥광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양복을 갖춰 입고 최신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책장에는 컴퓨터 관련 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교수 연구실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북한의 김책 공업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공학 박사로 공산대학에서 교수를 지내던 그가 탈북한 것은 2004년 2월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라는 본질이 변질되고 백성들이 도탄 속에 빠지는 것에 대한 혐오증이 생겼다"고 했다.

 

 

 

"(탈북에 대한)기회 비용 타산을 해보니 탈북하는 게 옳겠다 싶어서 탈북했어요." 담담하게 대답한 그는 자세한 탈북 경위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다.

 

 

 

남한에 입국한 이후 1년간 한신대 정보 통신 공학과에 출강하던 그는 2005년부터 통일부 산하에서 탈북자 정착 지원 활동을 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탈북자 학술단체인 'NK지식인 연대'를 창립했다.


 

 

 

-교수라면 북한에서도 엘리트 아닙니까?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생각하는 대학 교수와 북한의 대학 교수는 다릅니다. 북한에서 대학 교수는 한국의 대학 교수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것이 아닌 하나의 정신 노동자로 봅니다. 한국의 대학 교수처럼 사회 지도층, 로열층, 고소득층이 아니라, 노동자인데 정신으로 노동하는 거죠. 물론 사회적으로 취약 계층은 아니지만 일반 노동자가 겪는 굶주림이나 극빈은 함께 겪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95년도 이후 가장 많이 죽은 사람이 3비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3비는 선비, 꽃제비, 청제비입니다. 꽃제비는 어린이, 청제비는 청소년 및 어린 처녀들, 그리고 선비에 교수 포함한 전문직이 들어가는 거죠."


▶고난의 행군: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약 50만 명 주민들이 아사하는 등 경제난이 가중되자 김일성의 항일 활동 시기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시켜 위기를 극복하려고 채택한 구호이자 그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북한 내 전문직이었던 사람들이 남한에서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북한에서 지식인이었던 사람 중 남한에 와서도 각급 대학원에서 석ㆍ박사를 받은 사람들, 수료 중인 사람들 모두 합해서 43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학원을 졸업해도 써 주지를 않아요. 내가 북한이탈주민 후원회를 하면서 지켜 본 결과 가장 적응이 어려운 계층이 전문직 계층이었어요.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상응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남한 사회에 실망을 하게 됐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며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일도 아닌 일을 찾아 전전긍긍하며 사는 경우가 많죠. 임시로 출강하는 것을 보따리 장수라고 하는데 그것도 일부입니다."

 

 

 

-박탈감이 크겠네요.

 

 

 

"그래서 NK 지식인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내 안위를 생각했으면 북한이탈주민 후원에서 안 나왔겠지요. 한국 사회 전체가 지난 12년 동안의 반공 교육 때문인지 북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잠재적인 거부 반응이 있어요. 그러한 거부 반응이 없었더라면 능력을 편하게 발휘하겠는데, 그렇지가 못해요. 탈북한 지식인 중에 남한에서 공무원으로 채용된 사람도 얼마 안돼요. 현재 중요치 않은 기타 부서에 4명에서 5명 정도가 있습니다. 경기도청 산하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 중앙 부처에는 하나도 없어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채용 내지는 사회적으로 포용하는 것에 경계를 두고 있습니다. 남한이 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북한 사람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저희는 내부로 진입하는데 장벽이 있어 결국 사회 변두리에 있게 됩니다. 

 


 

 

-지식인 연대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남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하고 있고 북한의 실상을 알려주는 계간 학지를 만들고, 잡지를 만들고, 북한이탈주민 구출 사업도 합니다. 또 북한에 대한 전문 연구 영역에서 연구도 하고《주간 북한 뉴스》라는 뉴스레터를 만들어서 6천 명의 네티즌에게 서비스 하고 있습니다. 현재 20여 명의 전문직들이 상근하고 있어요. 여기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주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우쳐 주는 사업들을 하고 있죠."

 

 

 

-약 2년간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무엇입니까?

 

 

 

"작년 11월 30일 북한 화폐 개혁이 실패한 소식을 처음으로 국제 사회에 알렸던 일입니다. 우리가 처음이었어요. 또 최근에는 남한 동요로 삼대 세습을 비꼰 곰 세 마리 동요가 북한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우리도 할 수 있구나,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


▶곰 세 마리 동요: 남한 동요 '곰 세 마리'의 가사를 패러디 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꼬는 노래. "한 집에 있는 곰 세 마리가 다 해먹고 있어/ 할배곰(김일성)/ 아빠곰(김정일)/ 새끼곰(김정은)/ 할배곰은 뚱뚱해/ 아빠곰도 뚱뚱해/ 새끼곰은 미련해" 라고 바꿔 적은 쪽지가 최근 회령시 오산덕중학교 교실과 화장실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탈북 어린이들을 위한 대안 학교의 개교 준비로 바빴다. 정식 개교를 준비하고 있는 '삼흥 학교'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미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계신데 학교 설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재 있는 북한이탈주민 학교들은 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패스를 위한 학교들인데 북한이탈주민들이 제일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중국으로 대량 탈북이 일어난 게 15년 정도의 일이니까 지금부터 들어오는 어린애들이 문제가 되는거죠. 지금 중국에서 들어오는 여성들의 자녀 일부가 중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와서 정규 취업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필요할 때 애를 보러 가야 하니까. 애를 데려오고 나서도 문제죠. 중국에서 낳은 아이들이니까 애들이 중국어밖에 몰라요. 그런데 탈북 여성에게 중국에서 낳은 애들 다 잊어버려라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죠. 어머니들한테 자식은 전부잖아요? 자식들 데려오면 중국어밖에 모르고, 데려와서도 애 돌보느라 일 제대로 못하고…. 그걸 해결해 주지 않고는 탈북 여성들 취업률 절대로 못 올리죠. 실제로 현재 탈북 여성들 가운데 10%밖에 일하지 못해요. 그래서 나는 작은 힘이나마 9개의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려고 하고 정 사정이 어려운 애들은 주중에 아예 데리고 맡아 먹여주고 키워주는 그룹 홈 제도도 운영하려고 합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교육이 정말 중요한데.

 

 

 

"통일 이후 북한을 건설해야 할 동량지재들이 교육 경쟁력에서 완전히 뒤처지고 있어요. 현재 탈북자 여성들 가운데 차라리 북한에 애를 두고 올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요. 여기 부모들은 애들을 다 학원에 보내요. 그런데 탈북자 아이들은 학원을 못 가요. 돈도 없고 정보도 없기 때문에 어딜 가야 할지도 몰라요. 애들은 방과 후에 다 놀고 있어요. 중학교 저학년까지는 부모들이나 학원이 다 거들어줘야 되는데 탈북자들은 두 가지 다 안 되요. 애들이 빈 집에 혼자 앉아서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지치겠어요. 부모를 대신해서 따뜻하게 돌봐주고 공부시킬 곳이 있다면 부모와 자녀 양쪽이 다 좋을 겁니다."

 

 

 

-'삼흥 학교'의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이죠?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보충 교육을 시켜서 제도권 학교로 보내는 것입니다. 즉 디딤돌을 놓는 역할이지요. 방과 후에는 논술, 영어, 피아노, 아코디언, 미술, 컴퓨터, 태권도 이런 것들을 가르치기 위한 공부방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방과 후에는 거기서 공부하도록 할 겁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현재 빔 프로젝터와 같은 교육 기자재가 전반적으로 열악한 상황임에도 교육 설비를 마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 외에도 학생들이 먹고, 쓰고, 자는 데 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일일이 돈 주고 사자니 너무 힘이 들어요. 학교 운영에 필요한 교재비, 준비물비 등 운영 비용 등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교육 부문에서도 많이 부족하구요. 때문에 교육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영어, 컴퓨터, 논술, 피아노 등 과 같은 부분에서 재능 기부를 해주었으면 좋겠고,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분은 안 쓰시는 물건을 기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대학생 자원 봉사자가 많이 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북한이탈주민 문제, 더 나아가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동독과 서독을 보세요. 동독 사람들이 서독을 택했다는 것, 동독이 서독의 사회 체제에 동경을 하고 그런 체제를 동독이 가져 오기 위해서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 베를린 장벽도 허물었고. 국제 사회도 지지를 해주었잖아요. 그러나 현재 여기 온 2만 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일자리를 잘 못 구하고 안 좋은 일 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소식을 듣고 어떻게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올 생각을 하겠어요? 여기 온 북한이탈주민 문제부터 우선 해결해서 북쪽에 있는 주민들을 유인해야지요. 북한이탈주민들의 특성에 맞는,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서 취업시키는 그런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북한이탈주민문제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탈주민 사회의 리더, 견인 세력들이 많이 자라나야 합니다. 43명의 대학원 졸업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해야 해요. 정부 기관에서 그들을 받아들여 여러 포지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배워 탈북자 사회를 끌어갈 수 있도록 통일을 대비한 실제적인 노력을 해야지요."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이 더욱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시는 김흥광 대표를 만나보았는데요. 특히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삼흥 학교 개교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는 모습에서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들과, 교육을 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대학생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흥광 대표의 말처럼 북한이탈주민 사회의 리더, 견인 세력이 많이 자라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원만한 정착은 곧 통일을 앞당기는 엄청난 에너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