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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내 음악이 통일을 단 3분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

 

 

내 음악이 통일을 단 3분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미래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 솔직담백 인터뷰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NK(North Korea)지식인 연대에서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의 인터뷰가 있었다. 독주회 등에서 보던 연미복차림과 달리 편안해 보이는 니트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김철웅 교수의 모습은 상생 기자단을 잠시 놀라게 했다.(결정적으로 김철웅 교수는 실물이 훨씬 잘생겼다.) “매일 연주회처럼 입을 순 없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김철웅 교수와의 즐거운 인터뷰. ‘탈북 피아니스트’라는 말에 지레 겁먹고 몇 번씩이나 인터뷰 질문을 확인하며 조심스러웠던 취재준비와 달리 인터뷰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김철웅 교수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철웅 교수의 삶과 음악, 그리고 통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화적 궁핍, 그를 남쪽으로 이끌다

 남한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는 김철웅 교수.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북한에서 엘리트 중 엘리트, 명문 중 명문 코스만 밟은 이른바 평양귀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2002년 남한 행을 택한 그의 행보에 김철웅 교수 본인보다 정부 측에서 더 놀랐다고 한다.

 

 생활이 보장되었다는 것이 문화적으로도 보장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남한의 경우, 이미 문화와 음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으니 인식을 못하겠지만, 북한에서 음악은 ‘제도의 우월성, 수령의 위대성, 정책의 홍보성’등을 강조하는 체제 홍보의 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제가 유학을 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 접할수록 오히려 문화적 궁핍, 가난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자유로운 음악, 좀 더 다양한 음악을 체험하고 싶어 남한 행을 택했습니다.

 

 엘리트 유학파,

남한에서 떨리는 첫 독주회를 가지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외에 특정 개인의 이름을 내세울 수 없다. 따라서 독주회 역시, 정부에 이바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개인 독주회도 못 가지는 음악가들도 있다고 한다. 김철웅 교수 역시 입국 후 남한에서 가진 독주회가 처음이었다.

 

 항상 주어진 곡만 연주하다가 막상 내 이름을 내건 첫 독주회를 하려니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레퍼토리를 다 짜고, 저로서도 색다르고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6월에도 독주회를 열었었고, 오는 12월에 또 독주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남북한 장르의 차이는 있어도 국가를 넘어 전 세계 만국공통어인 음악

 음악과 문화적 궁핍으로 남한 행을 택했지만, 요즘도 북한가요 연주를 즐겨한다는 김철웅 교수. 그는 음악 장르의 차이는 있어도, ‘맞다’, ‘틀리다’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전 세계 만국 공통어 같은 언어가 바로 음악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북한의 음악과 한국의 음악이 완전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꽤 많은 기자들에게 ‘북한에도 클래식이 있냐’는 질문을 받아서 오히려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당연히 있는 건데, 북한에 대해서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는 한국어, 미국에는 영어, 이렇게 구분지어지는 '언어'가 아닌 '음악'자체가 하나의 만국공통어잖아요. 해외 공연을 보더라도, 그 나라 말은 잘 모르는 대신 공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을 수 있잖아요. 음악의 역할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남북한의 음악적 차이를 느꼈다면 북한가요는 절가(1,2,3절 등으로 나뉘어부르는 것)와 3절에는 꼭 끝맺음이 있다는 것, 가요에도 사상이 들어간다는 것에 반해, 남한은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철저한 실용음악 중심의 대중가요가 많다는 것이죠. 그러나 장르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한에 와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음악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제 자신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그 때는 경직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편안해지고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어요.

 

 

  

 연습하고 노력하는 음악인이 되라고 가르치는 김철웅 교수

 현재 백제예술대학에서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철웅 교수. 배우는 환경이 달라서인지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와 현재의 대학생을 가르치면서 많은 차이점을 느꼈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악보가 없어 피아노 악보를 일일이 그려서 연습합니다. 클래식 한 곡만 그려도 그 두께가 꽤 되죠. 저렇게 손으로 그려서 배우는 학생들도 있는데, 남한의 경우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배우는데도, 학생들이 열심히 하려하지 않아요. 최소한 지금 대한민국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시간정도 연습하면 되는 과제는 너무 당연한 것인데 이마저도 제대로 안하는 학생들도 많고요.

한세대학교에 있을 당시, 연주는 못하지만 음악성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한때는 음악을 포기하려고 했던 녀석이 후에 독일로 유학까지 가는 것을 보며 뿌듯했습니다. 이처럼 노력은 중요합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시험만 잘 보는 학생이 아닌, 평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들에게 점수를 잘 주려고 하다 보니 아마 제 과목에서 F가 제일 많이 나오지 않나 싶어요.

 

 

‘희망의 선율’, ‘미래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불리고 싶어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김철웅 교수를 가리켜 혹자는 ‘꿈의 피아니스트’, ‘희망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그의 이름 앞에 가장 많이 놓이는 수식어는 바로 ‘탈북 피아니스트’. 처음엔 ‘탈북’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이것이 통일 미래의 주역이 될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김철웅 교수는 본인을 다섯 글자로 표현하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민하다 ‘희망의 선율’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제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탈북’이라는 호칭은 꼭 제 앞에 나오더라고요. 한때는 싫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내 정체성이다’는 것을 깨달았죠. 세계 공연을 다니면서 말이 안 통해도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이것이 음악의 힘이다, 나도 음악으로써 통일에 이바지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남북한 사람이 처음 만나서 ‘아리랑’을 부르는 것처럼, 남한 사람에겐 촌스럽지 않고 북한사람에겐 낯설지 않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연결시켜주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게 저의 꿈입니다. 제 음악을 듣고 통일이 단 3분만이라도 앞당겨 진다면 하는 바람에서 ‘미래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불리고 싶어요.

 

 

통일이라는 벼농사를 잘 짓기 위해선 ‘모’와도 같은 북한이탈주민을 배려해야

 김철웅 교수가 입국했을 2002년 당시에 비해 현재는 1만 6천여 명이라는 많은 수의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입국한 상태이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온 미래’인 그들을 배려하고 관심 가져야 통일 미래가 하루 빨리 올 수 있다고 말하는 김철웅 교수.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정든 지역을 잘 떠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아예 둥지를 떠나는 탈북은 오죽할까요. 그러나 이런 현실자체를 가슴아파하기는커녕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민족적 숙원인 통일을 위하여 이 사람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어느 한 기준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을 벼농사에 비한다면 북한이탈주민들은 그 벼를 꽂을 모와도 같은데, 모가 잘 자라야 벼가 확실히 자랄 수 있도록 적당한 양의 ‘배려와 관심’이라는 비료가 꼭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라도나 경상도지역 사람을 보고 그들을 구분 지으려 하지 않듯이, ‘타 지역에서 온 사투리 쓰는 사람’ 정도로 편하게 인식하고 대해야 통일이라는 벼농사가 ‘먼저 온 미래’라고 불리는 그들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가 바라는 통일 미래, 통일 한국

 북한이탈주민은 두만강을 넘는 순간 통일에 대한 사명을 지고 있다는 김철웅 교수. 그는 북한이탈주민은 통일 미래의 희망이자 꿈이기에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장 중국만 가도 북한 사람들은 무시 받지만 남한 사람은 ‘사장님’소리를 듣습니다. 이건 그 사람 지갑 속 액수때문이 아닌 ‘잘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남한 사람은 항상 조국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북한이탈주민은 두만강을 넘어 통일에 대한 사명을 지고 온 이 땅에서 자신이 통일의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길 바랍니다.

 

 

 김철웅 교수의 말처럼 이미 남한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 사람들처럼 ‘사투리를 쓴다’는 것 외에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음에도 나 역시 내가 만든 편견의 틀 속에 그들을 집어넣고 외계인 보듯 생각하진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생 기자단에게, 북한이탈주민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건강한 조국’을 가진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게 해준 김철웅 교수. 무대 위에서는 섬세한 피아니스트로, 교단 위에서는 열정적인 스승인 그의 밝고 활기찬 모습에서 ‘통일 미래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취재  홍준영 기자 punkeest@nate.com       

사진  이윤호 기자 bobos091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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