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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김정은 체제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 평가와 과제 ③북한의 대외정책


(앞의 기사 "김정은 체제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 평가와 과제 한의 국가전략"에서 이어집니다. )

▲ 학술대회 2세션 

▲ 학술대회 2세션 


 이어서 2세션 "북한의 당대회와 북한의 대외정책" 시작합니다. 

 "김정은 체제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 평가와 과제" 2세션"북한의 당 대회와 대외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당대회를 통해 북한 대외정책의 지속성과 변화을 분석하는 자리였습니다. 2세션은 북한 대외정책을 크게 (1)당대회 평가와 북한의 외교 과제 (2)대외안보정책 (3)북한 무역과 대외경제전략의 긴장 세 부분으로 나뉘어서 진행되었습니다.  최춘흠(前상해외국어대학교, 한국평화연구학회 회장) 박사의 진행으로 2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는 변화에 대해서는 돌발적인 변화와 점진적인 변화,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맞을지에 초점을 맞춰 발표해주길 주문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최춘흠(前상해외국어대학교, 한국평화연구학회) 박사


 발표는 (1)이상숙(국립외교원) "북한 대외정책의 지속성과 변화", (2)임상순(총신대) 신대진 (성균관대) "북한 대외안보정책의 지속성과 변화"  (3)탁용달(한국자산관리공사) "북한 무역과 대외경제관계의 지속성과 변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 세션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끝까지 참석해주셨습니다. 북한의 7차 당대회와 대외관계에 대한 궁금증과 그 열기가 참 대단한데요그럼 북한 연구자들의 분석을 차근차근 확인해볼까요?

▲ 2세션 패널 (왼쪽에서부터, 토론을 맡은 김일한(동국대), 김용순, 서보혁(서울대), 발제를 맡은 탁용달(한국자산관리공사), 임상순(총신대), 이상숙(국립외교원), 최춘흠(前상해외국어대학교, 한국평화연구학회)) 


 1) "7차 당대회 평가와 이후 북한 외교의 과제" by- 이상숙(국립외교원)

▲ 이상숙(국립외교원)


 먼저 역대 당 대회 평가를 했습니다. 

 첫번째 1-2차 당대회를 통해 나타난 북한 외교는 정권 기반 창출외교였습니다. 특히 소련 중심의 외교였습니다. 소련에 의한 북한 정권 수립의 박차를 가하고 소련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위한 활동이 주를 이루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공산주의화를 위해 소련의 승인과 지원을 획득하는 활동도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대외정책 기원으로 볼수 있는 1948년 9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 '정부정강'에서 자주, 친선,평화를 제시했습니다. 

 두 번째 제3-4차 당대회의 북한 외교는 사회주의 진영 외교입니다. 50년 3-4차 당대회 이전은 소련과의 관계가 비중이 높았다면 그때부터는 중국과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한국전쟁에서의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고귀한 형제적 원조"라고 칭송하면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의 위력을 강화해야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중소분쟁으로 인한 중소분열에 대비해 북한은 양국과 각각 우호조약을 맺으면서 안보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했습니다.  한편 1956년 종파문제 이후 불거진 중소 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중국인민지원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중소분쟁 국면에서 어느 한 국가에 치우치지 않는 토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세번째5차 당대회비동맹 외교와 자주 노선입니다. 그때는 자주 노선이 들어나는 시기였습니다. 1960년을 복잡하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라고 보고있는데, 경제적으로는 아니지만 당시를 중소분쟁의 심화에 따른 사회주의권의 분열과 1968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인한 한미일 남방삼각동맹의 강화를 일컫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는 이번 7차 당대회에서도 유사하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방력 강화에 대해서는 "우리의 국방력은 매우 크고 비싼대가로 이루어졌다."면서 "국방비지출은 나라와 인구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인정했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네번째로 6차 당대회에 나타난 북한 외교는 "자주,친선,평화"의 이념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국제적 데탕트의 영향으로 북한 외교는 UN외교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국가들과 관계개선에 주력했습니다. 김일성은 제 6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5차 당대외 이후 6차 당대회까지 66개 나라와 새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편 6차 당대회에서는 김일성이 '조선반도를 비핵지대,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이번 7차당대회에서는 전세계 비핵화 이야기를 했는데요~! 실제로 6차 당대회 때 북한이 비핵화위한 실지적인 노력을 했느냐에 대해선 일본과의 교류를 증거로 들어주셨습니다. 

 연구자는 6차 당대회 이후에는 당대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문건으로 보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첫번째로 김일성 시대는 자주외교, 김정일 시대는 대미관계 핵외교를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김정은 시대에 대해서는 대외관계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후퇴되었지만 리수용 외무상을 임명시키고 내각 부총리로서 북한 외교 업무를 총괄하던 강석주를 당비서로 이동 시켰습니다. 그리고 리수용 외무상은 5월 비동맹운동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중동방문, 8월 아세안 5개국 방문에 임했고, 15년만에 무국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회원국 대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으로 외교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제 7차 당대회에서 북한의 대외관계 분야의 핵심 키워드는 '자주 적대' 입니다. 

 자주외교와 적대외교를 핵심적으로 주창함으로써 대결 국면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교의 기본 원칙을 '자주,평화,친선'로 표현하면서, 1980년 6차 당대회의 '자주,친선,평화'의 순서를 변경했습니다. 이것은 탈냉정의 영향으로 북한의 대외 위협 인식이 확대된 상황에서 적대국가와의 평화를 우위에 둔 것으로 평가됩니다. 

북한의 외교 과제로서 가장 큰 과제는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하느냐" 입니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으로 인하여 러시아와 중국 역시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제재에 참여하면서 이들 국가와 관계가 어려워진 것이 김정은 시대 외교의 뼈아픈 지점인데요~! 이를 극복하고 지난 2015년에 강화되었던 극동개발부와 북한의 경제협력을 어떻게 재추진과 확대를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지점입니다. 한편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핵개발 지속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재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입니다. 


 결론으로 간단히 요약을 해보면~!! 북한 외교의 지속성에서 살펴보면 첫 번째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힘의 논리를 가지고 국제정세를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 국제사회를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다. 세 번째는 여전히 비동맹 외교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네 번째 제국주의와 대결을 위해 자주세력 협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 외교의 변화를 살펴보면  첫 번째 북한 스스로 자주성 강화되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유는 핵보유국으로서 위상을 정립했기 때문에 자주 혁명 세력 국가들 사이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외교대상은 점차 확대하고 있다.  세 번째 사회주의 승리에 대한 것은 감소하고 있다. 이전엔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탈냉전을 기점으로 수세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7차 당대회의 외교 특징은 핵심 키워드는 '자주 적대' 이다. 여전히 외부와의 대결이나 제재 강화를 염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두 번째는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여 비확산에 초점을 두었다. 세번째는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한 강한 반발을 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개별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이전 당대회에는 각 국가들과의 협력에 대한 부분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대외적 성과가 부족한 상황에서 각 개별국가와의 교류나 협력 부분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지막은 미국에 대한 비판 강도 적었고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하고 있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2) "7차 당대회를 통해 본 북한 대외안보정책 변화와 그 함의"  by - 임상순(총신대), 신대진(성균관대)


▲ 임상순(총신대)

 6차 당대회 이후로 36년이라는 긴 공백기간이 있었습니다. 임상순 박사는 당대회를 통해 본 북한 대외안보정책 변화와 그 함의를 찾기 위해 것의 연속성을 찾기 위해 로즈노의 이론을 이용했습니다. 로즈노가 제시한 5가지 외교정책 변수 즉, 개인, 역할, 정부,사회, 체계변수 중에서 체계변수를 중심으로 활용했습니다. 로즈노의 체계변수외부 환경의 비인간적 측면 또는 정책결정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 들 중 외부에서 발생한 것 또는 외부에서 기인한 것을 의미한다. 여섯 번의 당대회 중심요소는 체계에 있을 것입니다. 

 당대회의 연속성을 잇는 중요 지점을 외부적 요소에서 찾았으며 이를 토대로 1~6차 당대회를 집어주었습니다.  1-2차 당대회는 소련의존형 대외 안보정책 시기였고, 3-4차는 소련과 중국 의존형 대외 안보정책 시기, 5차는 소련과 중국이 빠지는 자주적 동맹형 안보정책 시기로 변화합니다. 

 1-2차 소련 의존형 시기는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1차는 남북 분단과 소련군의 북한 점령때문이었고 2차는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한반도 문제 유엔 상정때문이었습니다. 국가건설 전이었고 같은 사회주의 동맹국이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3차는 1956년 한국전쟁 이후 중국군이 있을 때 였는데, 전후 복구와 안보적 차원에서 소련과 중국에 의존하는 시기입니다. 4차에서는 북한이 5.16쿠데타가 나자마자, 소련과 중국 각각과 군사동맹을 맺습니다. 5차 6차는 80년대 이때가 되면 자주 안보를 갖출 수 있다며 국방태세를 갖추자라고 합니다. 여기에 원인은 첫째 중소분쟁입니다. 중국과 소련의 분쟁의 심화 속에서 더 이상 그들에게서만 안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주노선. 체계변수로서 북한의 대외안보정책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 신대진(성균관대학교)

 다음으로는 신대진 박사의 그렇다면 7차 당대회에 나타난 안보정책의 지속과 변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신대진 박사는 7차 당대회에서는 '핵과 미사일의 전사회적 승리'를 언급하며 '자주형' 국가로 나아갔다고 평가했습니다.  

 6차 대회 이후 안보정책 전개 양상을 김정일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선 김정일 시기를 1991년부터 2011년까지로 규정했습니다. 2011년까지는 안보적인 책임자라는 이유였다고 생각해서 설정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 안보적인 조건, 첫번째로는 국가안보와 정권안보가 있었다. 이를 총 4가지로 나눈면 1)동맹국 상실-선진무기체계의 공급원 상실이며, 이때부터 핵미살일에 대한 선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2) 미중관계와 북중동맹. 동맹국가로서 중국이 강한데 왜 핵실험을 했는가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의문점은 지금까지 중국과 소련에 대한 동맹국으로서의 신뢰성 하락, 핵미사일로 정권안보 차원에서 정권 정당성을 받기위한 전략으로서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안보적 위협이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하지만 부시정권 이후 오바마 이후 북미관계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전략이 추가된 것 같다. 네번째는 정권안보, 두 가지 의미인데 하나는 사회주의 정권이지만 부자세습을 했다는 것과 두번째는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것입니다. 

 김정은 시기는 2011년 12월 31일부터 현재까지는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에 대한 민감도가 강했다고 신대진 박사는 평가합니다. 김정은은 군부로부터의 지지가 중요하고 인민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받는 지지가 필요했습니다. 군부로부터 지지 확보에 가장 확실한 전략은 선군정치의 계승이며, 인민대중에 대한 것은 핵-경제 병진노선이었습니다. 자주형 안보정책으로서 7차 당대회를 보면 북한은 안보상황인식으로 '사회주의를 단독으로 수호해야'한다는 것을 유념해 봐야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동맹이아니라 자주국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에서 북한은 자주국으로서의 체제 생존의 큰 줄기를 절대 외교선상에서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론으로 당대회를 통해 본 북한의 대외안보정책은 1-2차 소련 중심, 3-4차 중국 소련 5-6차 자주적 7차 완전 자주형, 핵과 미사일은 안보 외적 가치로 확대되었습니다. 한편 신대진 박사는 북한은 어떠한 인센티브를 주더라도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며 발표를 마쳤습니다. 


3) 토론

ㄱ. 서보혁 "체계변수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 서보혁(서울대)

 서보혁 교수는 토론에서 임상순-신대진 박사의 발제에서 체계변수의 구체적인 것들을 밝혀내야한다고 했습니다.  

 체제생존이 모든 국가에서 일반적인 최소목표이지만 그것이 굉장히 북한의 경우에는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국제지형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북한이 어떻게 대응했느냐를 고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리 있는 행위가자가 반응하는 양자관계나 인식 또는 지도자의 인식이나 관료정책 등에 있어서 말입니다. 기본적인 체계 변수가 있겠지만 양자관계 대내적인 요인 등을 바라보는 등의 디테일하게 따져야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의 변화에 대하여 대중 독자들이 볼때, 대내 개혁과 보수와 같이 지도집중과 자율. 협력과 갈등 등 전체를 묶어주는 흐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 북한의 당대회와 주대상의 변화를 잡을 수 있다고 보는데, 이를 외교정책 목표와 연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선행연구 검토가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국토통일원에 노동당 대회 자료집이 나와있는데, 이를 참고하여 '누가, 어떤, 어떤 제목으로 발언을 했고 언제 말한 것'인지 각주처리가 되어 있었으며 좋겠습니다.  

 김용순 체계변수보다는 개인변수에 가깝습니다. 이에 대한 개인변수들이 조금 더 명확하게 제시되는 작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의를 확대하고 체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해보길 기대한다며 토론을 마쳤습니다. 



ㄴ. 김일한 "현재 북한은 경제분야 숨기고 있는 부분이 많아- " 

▲ 김일한(동국대)

 북한 대외경제 변화는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격렬하고 뚜렷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사회주의 원조 경제에서 1980년대 자립경제 이후는 거의 완전 자립경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점은 1990년대 대외경제관계를 볼 수밖에 없는데, 90년대에 만들어진 대외관계법을 살펴보면 그러합니다. 대외관계법은 세세한 법조항으로는 500여개가 넘는 상황이고 정말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북한은 경제규모 성장을 2007년 대비 2012년 무역 총액 거의 2배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숨기려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성장률은 밖으로 명확히 드러난 데이터입니다. 분명 북한은 7차 당대회에서 경제규모 성장을 드러낼지말지 치열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업총화나 결정서 부분에서 그런한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왜 자랑하지 않고 과거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 상태를 설명하지 않는 것인지 분석해내야 합니다. 한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있는데, 전략과 계획을 과도하게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 ⓒ로동신문 7차 당대회를 개회하는 김정은 당 위원장의 모습 

 이번 7차 당대회에서 나타난 대외경제구조 분야 중 주목할 지점은, 신용/가공무역/기술무역 이 3가지 키워드와 5개년 경제개발이 어떻게 조화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북한에서도 사회주의책임기업과 관련하여 국영기업의 자율성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합니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뺐으면 정말 시장친화적이라는걸 알 수 있었을텐데, 국가주도적 발전전략에 조금 더 방점을 두고 있었다면 대외적인 부분과 함께 신용/가공/기술무역 구조의 다변화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北 7차 당 대회 특집 기획 연재>                                                       

1. 김정은 체제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 평가와 과제 ①당대회란? ☞클릭

2. 김정은 체제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 평가와 과제 ②북한의 국가전략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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