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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통일은 왜 해야 할까?'에 대한 참신한 대답, 바로 여기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8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김주헌, 안정아 기자입니다. '통일은 왜 해야 할까?' 통일하면 생각나는 가장 대표적인 질문이지요. 이에 일반적인 대답으로는 '그냥'이라든지,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니까' 등이 있어요. 하지만 '그냥'은 고사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니까'라는 대답도 '통일하면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어렵잖아'라는 반박에 금방 막히고 맙니다. 그렇다면 '통일은 왜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막히지 않는 참신한 대답은 뭘까요? 그 대답은 2016년 1월 30일 8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의 동계워크숍에서 열린 특강 <통일의 인문학적 이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시죠? 그럼 지금 찾으러 가봅시다! Go! Go!

( ※ 8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의 지난 동계워크샵이 궁금하신 분들은 를 클릭해주세요! ) 


△ <통일의 인문학적 이해> 특강을 해주신 통일교육원의 김진환 교수


  8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의 동계워크샵에서는 통일교육원의 김진환 교수의 특강 <통일의 인문학적 이해>가 진행되었습니다. 김진환 교수는 먼저 탈북민을 바라보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인문학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로 특강을 시작하였습니다. 탈북민의 정체성은 정치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자유대한을 찾아온 탈북민’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시선으로 본 탈북민에 대한 개념은 90년대까지 변함이 없었으며 이에 탈북민들은 주로 안보강연에서 등장하였습니다. 반면에 탈북민을 향한 경제적 시선은 이들을 '북한의 경제난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온 사람들'로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자, 인문학자가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은 탈북민들을 ‘먼저 온 통일로 생각합니다. 이에 탈북민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이산가족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6.25전쟁 때 생긴 이산가족만을 이산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탈북민들 또한 이산가족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산가족 문제는 6.25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성공단을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개성공단은 인문학적 시선을 통해서 보면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통일마을’입니다. 개성공단은 남북 분단 이후로 12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곳으로 먼저 통일을 이룩한 동독과 서독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문학적 시선으로 통일을 바라보면 기존의 시각과는 달리 사람이 보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사람입니다. 김진환 교수는 ‘개성공단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남북간의 다른 문화, 예컨대 독보회라든지, 다른 위생관념이라든지,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부르지만 우리사회는 병신이라는 말을 모욕적인 것을 여겨 용인하지 못하는 현실 등이 나오는데 이것이 남북한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김 교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통일로 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개념 ‘통일’이 무엇인지 살퍼볼 때입니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익숙한 정의는 통일이란 단순히 정치, 경제 ‘제도’의 통일입니다. 그러나 통일이란 제도의 통일 뿐 아니라 사람의 통일이라고 새롭게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여기서 사람의 통일이란 "민족 구성원(남, 북한, 해외 동포까지 포함한)의 자유로운 만남과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치관(머리), 정서(가슴), 생활 문화(팔다리)의 차이를 존중하는 가운데 ‘새로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족 구성원의 자유로운 만남과 소통은 사람의 통일의 출발점이고 서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치유이며, 내 생각과 정서, 문화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은 왜 해야 할까요? 김 교수는 이에 통일은 ‘윤리적 인간’의 의무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에게 익숙한 대답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 나아가 동북아시아 국가들에도 ‘경제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대답에는 '남북 경제협력이 밥 먹여 주느냐?'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에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먹여 주지 않을까요?'라는 대답이나 더 나아가 '밥 먹여 주도록 같이 노력해봅시다'라는 대답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남북 경제협력의 지향은 성장지상주의가 아닌 생태주의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익숙한 대답’에 대한 미래세대의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하루 앞도 모르는데, 통일이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지, 경제적 어려움을 안겨줄지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요? 저는 아직 확신이 안 섭니다”라든가 “독일을 보면 통일 이후 서독 사람들이 동독 경제를 살려내느라 지금까지도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하던데요? 북한은 과거 동독보다 더 못 살지 않나요? 사회주의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하던데요”라는 대답을 합니다. 이는 미래세대에게 ‘쉽게 체감되지 않는’ 경제적 이익을 소개하는 방식이 미래세대의 통일의식을 얼마나 높여주고 있는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익숙한 대답을 돌아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통일에 반대하는 이들은 ‘주로’ 어떤 이유 때문에 반대하는지, 통일은 찬성하는 이들은 ‘주로’ 어떤 이유를 제시하는지 먼저 살펴보고 여기서 통일 반대론과 통일 찬성론의 ‘공통점’을 도출해내야 합니다. 그 결과로 경제적 동기, 곧 ‘지금보다 좀 더 경제적으로 나은 삶’에 대한 기대만으로 만들어지는 통일 열망은 통일 과정 또는 통일 이후 장밋빛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특강을 경청하는 8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원들


  여기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데 그것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이끄는 통일입니다. 김 교수는 "‘경제적 합리성’에서 ‘고통에 대한 감수성’, ‘치유감수성’에 관한 통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즉, "통일 왜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분단과 대결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또 다른 트라우마를 막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는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감소 중 인간에게 더욱 시급한 목표가 고통의 감소라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쾌락은 지연 가능하지만, 인간 실존을 위협하는 고통은 즉각적 해결을 필요로 하므로, 윤리적 차원에서 볼 때 나와 너의 고통을 줄이는 것은 인간 삶에서 쾌락의 추구보다 우선적이고 시급한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보다 자신과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통일 추진의 주된 동력이 될 수는 없을까요?

  1980년대 후반 탈냉전이 본격화되던 시절에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통일하자는 주장이 대중적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6.15 남북공동선언 3항과 4항 ‘순서’에 담긴 뜻을 보면 우리는 통일을 기존 경제문제로만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관이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고 제대로 통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통일을 인문학적 시선으로도 바라봐야 합니다. 개성공업지구를 ‘경제공동체’가 아니라 ‘통일마을’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분단의 대결로 인해 반복되는 희생과 불안, 이산가족의 멈추지 않는 그리움, DMZ 일원 주민들의 불안과 상처 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명파리 사람들 이야기나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아픔 등이 그 예입니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답은 바로 ‘차이’를 존중하고 새로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통일의 주체을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익숙한 시각은 통일의 주체를 그저 남한과 북한의 통일만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남한과 북한 그리고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함께하는 민족통일로서 통일을 보아야 합니다. 또 현재의 ‘제도의 통일’이 통일 과정의 전부라고 보는 시각에서는, 해외에 살고 있으면서 남한이나 북한의 국적을 갖고 있지 않거나, 한반도에 살고 있더라도 남한이나 북한의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참정권이 없기 때문에 통일 과정에서 배제합니다. 그러나, 제도의 통일 못지않게 ‘사람의 통일’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통일인문학의 시각에서 본다면 코리언 디아스포라 역시 국적에 상관없이 통일 과정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왜 통일의 주체일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고통의 현존성’ 때문입니다. 재일조선인의 눈물, 사할린 이산가족, 사라지는 조선족 공동체와 조선족을 대하는 한국인의 편견,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은밀한 적대감’ 등에 의해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민족문화의 보고입니다.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한반도 밖에서 살아오면서 민족 전통을 토대로 삼아 각 지역의 생활환경, 사회제도에 맞춰 독자적인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이에 민족 구성원이 서로의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를 이해하고 차이를 존중하며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통일 과정에도 코리안 디아스포라 역시 한반도 주민 못지 않게 통일의 주역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통일을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본질주의와 통합주의입니다. 먼저 본질주의는 본질을 중시하는 이념으로 이는 본질이 아니면 배제하고 이는 결국 타자와의 갈등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사회의 다문화주의를 '다문화주의’라고 쓰고 ‘동화주의’라고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김 교수는 “통일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통합주의입니다. 여기서 통합이란 끌어안기로 타자와의 공존 지향을 지향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과 ‘민족공통성’을 일례로 들 수 있는데요. 통합주의는 현존 문화나 제도가 가진 차이의 존중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공통성 창출을 지향합니다. 따라서 통일은 본질주의와 통합주의적 시각으로 새로운 공통성 창출해야 합니다. 즉, 통일은 존재했다고 상상되거나 실존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 북, 해외의 민족 구성원이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고 싶은 미래를 향해 새롭게 나아가는 가슴 설레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통일교육원 소속의 김진환 교수의 <통일의 인문학적 이해>에 대한 특강이 끝났습니다. 김 교수의 명강연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저희는 김 교수의 마지막 말로 이번 기사를 끝내려 합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직한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입니다. 통일의 길도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묵묵한 소의 발걸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우리는 마침내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제도적 시각뿐 아니라 사람의 상처에 눈을 돌리는 것인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의 인문학이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