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에 그려진 6.25의 상흔 그리고 가족

 

  다들 교과서를 통해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 박완서의 자전적 요소가 섞인 연작 소설이며, 6.25 전쟁이 가족과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6.25가 일어난 뒤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시절을 직접 겪었던 많은 이들에게 6.25는 현재진행형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리고 삶이 계속되는 동안 그 상처에 아파하며 살아가야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엄마의 말뚝>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 박완서의 삶의 주요한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작가 박완서출처 : NAVER 지식백과

 

 

 

 

 

 

 

 

 

 

 

 

‘나’는 오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중년의 주부입니다. 

 

화자 '나'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흔이 다 된 어머니가 눈길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것입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수술이 진행됩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홀로 어머니를 간호합니다.

 

 

 

어머니

 

그런데 한밤 중 어머니는 환각을 보는 듯 절규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다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다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어머니의 적은 저승사자가 아니었다.

"군관 동무, 군관 선생님, 우리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나는 벽까지 떠다 밀린 채 어머니의 광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죽은 오빠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오빠

 

'나'에게는 정신적 지주였던 효성스러운 오빠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성품을 가진 그는 가족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6.25 전쟁 중 인민군 보위군관의 총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오빠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혼수상태에서도 바로 그때의 기억을, 그 처절한 순간을 떠올리고 있던 것입니다.

 

.

.

.

잠시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께서는 죽고난뒤 '화장(火葬)'을 해달라고 부탁 합니다.

북쪽의 고향을 바라보고 있는 바다, 바로 오빠의 시신을 뿌린 그 바다에 가고싶었던 것입니다.

 

 

 

조카

 

죽은 오빠의 아들, 즉 '나'의 조카는 아버지처럼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할머니의 유언을 거부합니다.

 

"어렵다곤 안했어요, 싫다고 했지. 할머니도 아버지처럼 화장해서 그 뼛가루를 고향이 바라다 뵈는 바다에 뿌리라구요?

고모, 제발 다시 그런 유난 떨 생각 말아요.

내가 싫은 건 할머니나 고모의 그런 유난스러운 한풀이를 지금 이 시점에서되풀이하는 거란 말예요." 

 

.

.

.

 

그렇게 어머니는 결국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엄마, 이제 그만 한 풀어. 그까짓 육신 아무데 묻히면 어때!

난 어떡하든지 엄마 소원 풀어주고 싶었지만 쟤들이 싫다는 걸 어떡해?

우리가 무슨 수로 쟤들을 이기겠어.  실상 쟤들이 옳을지도 모르잖아.'

 

 

 

 

 

 

 

어머니 :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

 

         어머니는 6.25 전쟁을 전면적으로 경험했습니다.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아니 죽음 뒤에도 그 기억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혼수상태에서도 아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 받습니다.

 

 

 

: 기억 망각 세대 (중간 세대)

 

'나'는 어린시절 6.25 전쟁을 경험했기에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도,

삶의 풍파와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기억을 망각하기도 하는 중간세대입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오빠의 기억으로 인해 몸부림을 치고 소란을 피울 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뺨을 치고 괴로워합니다.

오빠의 기억을 끈질기게 붙잡고 사는 어머니의 모습에 넌더리를 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 엄마를 때려서 제압하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고, 그 공포의 기저는 전쟁이 남긴 상처입니다.

그 상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감각과 오빠의 죽음에 대한 기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끝내 그 시절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나중에 젊은이들과 어울린 그 노인의 손자는 저런 늙은이가 다 죽어야 통일이 된다고 모진 말을 했다.

우리 집 상주도 차마 드러내 놓고 맞장구를 치진 않았지만, 빙긋이 웃으며 의미 있는 눈길을 주고 받는데

내 눈엔 '그래, 저런 풍쟁이들이 죽어야 뭔 일이 되고말구' 하는 동감의 표시로 보여 눈꼴사나웠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그래 잘들 해봐라, 한을 품은 세대가 속속 죽어가니 너희끼리 잘들 해보라고 뇌까렸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조카 : 망각하는 세대

 

조카는 할머니와 고모가 6.25 전쟁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접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았기에,

과거의 기억과 흔적으로 평생을 아파하는 할머니와 고모의 몸부림을 감당하기가 버겁게 느껴집니다.

 

때문에 아버지가 뿌려진 바다에 자신을 보내달라는 할머니의 유언보다는

남들이 하는 대로 평범한 장례를 치르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

.

.

 

작가 박완서는 전쟁서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엄마의 말뚝>은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린 상황 속에서 가족이 어떠한 비극을 겪었는지, 개인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언뜻 보면 한 개인의 가정사만을 다룬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전쟁을 기억 하는 어머니, 기억과 망각 사이에 있는 나, 망각의 세대인 조카'와 같이 전쟁 후 가족간 세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이 집단의 기억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즉 전쟁으로 인해 가정이 결손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틈에 내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토악질하듯이 괴롭게 몸부림 치며, 토악질하듯이 시원해하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서 외친 이발사의 행복을 나도 누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발사의 행복도 대나무 숲으로 하여금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요란한 공명을 얻어냄으로써 완벽했던 것이지

그 스스로의 외침만으로는 미흡했던 게 아닐까? 그런 뜻에서도 나는 내 소설을 활자화하기로 결심했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 <부처님 근처> 31쪽

  여기에서 우리는 박완서가 전쟁과 가정에서의 경험을 소설화함으로써 '자기 치유'를 하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현대사적인 아픔을 치유'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억의 세대, 기억과 망각의 세대, 망각의 세대 중 오늘날 청년들 대부분은 '망각의 세대'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과 같은 문학작품이나 역사의 기록, 전 세대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함께 전쟁의 기억에 아파하며 신음합니다. 소설 속 혼수상태에서도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몸부림 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독자들의 마음을 찢어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전쟁의 기억을 밖으로 꺼내어 공론화해야 합니다. 작가 박완서가 자신의 힘들었던 기억을 온 세상에 글로 외침으로써 공동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던 것 처럼, 우리도 함께 그 시대를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 속에서 '통일'에 대한 바람과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이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통해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기억해야할 것은 무언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 자료 : 박완서 이미지 - NAVER 지식백과/ 인물 캐릭터 - 한컴 오피스 기본 이미지

줄거리 인용 - 박완서, <엄마의 말뚝>, 세계사, 2012. & 박완서, <부처님 근처>, 가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