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은?
제게 어떤 집을 짓고 싶냐 물어본다면 언제나 '목조건물'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한옥을 생각하실수 있으신데요, 한옥은 아닙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상쾌한 공기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정말 좋은 건축 재료이기도 합니다.
새집 증후군 때문에 아토피에 걸린 아이들의 방을 목조 인테리어로 바꾸자 아토피 증상이 나아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으실 것 입니다.
때문에 '친환경' '친환경' 외치고 있는 요즘 목조 인테리어다 목조 건축 이다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목조 건축물의 역사를 알아보겠 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일본 나라현에 위치한 호류사(601~607년) 혹은 법륭사 반구사 라고 불리는 절로써
일본 정부에 의해 첫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침략을 당하거나, 전쟁이 일어난 경우가 적기 때문에
목조 건축물들을 오래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참 아쉽죠.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을 보더라도, 현재는 불타 사라진 과거의 목조 건축물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예상이 가니까 말이죠.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현재 삼국시대(4세기~7세기 중엽) 및 통일신라 시대(7세기 후반~10세기 전반) 목조 건축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고려시대 건축물들 입니다.
다섯채의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12~13세기에 지어졌으며, 국보 1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건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 되어 그 가치가 높습니다.
북한에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북한 또한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시대의 목조 건물은 모두 불타 없고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황해도에 성불사 응진전과 심원사 보광전입니다.
<성불사 응진전>
건립 - 1327년(충숙왕 14)
시대 - 고려후기
성격 - 불전
위치 - 황해도 황주군 주남면 정방리(황해북도 봉산군 정방리)
정면 7칸, 측면 3칸인 다포계(多包系) 단층 맞배지붕건물이다.
배흘림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두르고, 이 위에 안팎 모두 1출목(一出目)인 간결한 포작(包作)을 짰다.
바깥두리기둥[外圓柱]에 교두형(翹頭形) 첨차를 놓고 공간포(空間包)를 짜올려 다포계 형식을 취한 반면, 내부 고주(高柱) 위에는 굽받침이 있는 곡주두(曲柱頭), 곡소로[曲小累], 단면이 쌍S자 모양인 첨차 등 주심포계 형식을 취하고 있어 고려 말기의 절충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외부로 나온 첨차의 쇠서[牛舌]는 끝 부분이 둔하게 잘려 있고 아래쪽으로 쳐져 있으며, 첨차에서와 같이 공안(空眼 : 건축물에서 구멍·총혈 등의 총칭)을 깊이 파내는 등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보의 단면은 위가 굵고 아래가 가는 항아리 모양이며, 대들보와 마루보 사이, 마루도리 밑에는 파련(波蓮)을 새긴 부재와 포(包)를 섞어서 만든 대공(臺工)을 세웠다. 또 마루보 위에 ㅅ자 모양 대공을 두어 마루도리를 받치고 있어서 우리나라 목조건축 가운데 오래된 법식(法式)을 따른 귀중한 예이다.
한편, 일제침략기에 이 건물을 수리하면서 발견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1327년(충숙왕 14)에 처음 지어 1530년(중종 25) 에 수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불사 내의 극락전과 함께 한국 목조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이다.
<심원사 보광전>
건립 - 1374년(공민완 2)
시대 - 고려후기
성격 - 불전
위치 - 황해도 황주군 구락면 덕양리(황해북도 연탄군 연탄읍)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은 배흘림을 두었고, 바깥두리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놓고 그 위에 안팎 모두 3출목(三出目)인 공포(?包)를 짜 올렸다. 그러나 다른 다포계 건물과는 달리 기둥 중심에 공포를 그대로 맞추지 않고 측면 귀기둥 위에서부터 같은 간격으로 분할, 배열하였다.
귀공포 위에는 원숭이 모양의 조각을 세워 추녀를 받치고 있어서 특이한데, 강화도 전등사의 대웅전에도 이러한 장식이 있다.
첨차는 메뚜기머리 모양이며 공안(空眼 : 건축물에서 구멍·총혈 등의 총칭)을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첨차의 끝은 몽똑하게 밑으로 처져 있어 다포계 초기의 수법을 보여 준다.
공포 위 한대(限大 : 귀기둥 위에서 도리에 45° 각도로 건 쇠서)와 보뺄목[樑頭 : 기둥을 뚫고 나온 보의 끝머리]도 3분두(三分頭) 형식으로 다듬었다. 마룻보 위에는 기둥대공과 ‘人’자 대공을 겸하도록 간결하게 짰다.
천장은 우물천장이고 바닥은 마루를 깔고 불단(佛壇)을 놓았다. 보광전은 문살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는데, 정면의 문들은 가운뎃칸에 모란과 연꽃을 뚫어 새겨 꽃살문을, 양 옆칸에는 격자무늬를 뚫어 새겨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단청은 18세기에 다시 칠하였으나, 아직도 일부에는 고래단청이 남아 있어 은은하고 무게있는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 건물은 1374년(공민왕 23)에 건립되었는데, 그 시기에 지어진 석왕사(釋王寺)의 호지문(護持門)·응진전(應眞殿), 개성 남대문, 평양 보통문 등과 양식적으로 같은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북한 목조 건축 문화재 보수 시급' 이라는 글귀를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더 빨리 노화됩니다.
사람이 살면 유지 관리를 해주나,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냥 방치하게 되기 때문이죠.
문화재는 사람이 살건, 살지 않건, 유지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급속도로 노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개보수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후손들에게도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물려줄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지 관리가 미흡하게 되면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이 그 빛을 잃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북한 목조 건축 문화재의 보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외구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면, 같은 민족끼리 총대를 겨누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오래 지켜졌을 문화 유산들이,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함께 연기처럼 날아갔습니다.
전쟁은 수 많은 문화재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무섭고도 잔인한 일이기에 평화 통일이 하루빨리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