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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수감자의 입으로 들어보는 <북한 개천 수용소>

 

 

수감자의 입으로 들어보는 "북한 개천 수용소"

 

 

 

 

안녕하세요. 통일부 4기 상생기자단 마스코트 노민영, 지혜연 기자입니다. ^-^

 

지난 5월 27일 금요일 오후 7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북한인권학생연대가 주최한 ‘7기 대학생 북한전문가아카데미’에서 정치범수용소를 경험한 신동혁씨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신동혁씨는 14호 정치범 수용소인 ‘개천 관리소’에서 수용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개천 수용소는 ‘종신구역’으로 불리는데, ‘종신구역’이란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개천 수용소는 대동강 상류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 이 수용소의 수감자는 약  5만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더 많은 수감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천 수용소’는 많은 정치범수용소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 신동혁씨가 이 곳을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오신 후 그동안 어두웠던 개천 수용소의 실상을 증언해주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정치범 수용소는 과연 어떤 곳일까요? 또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인권 유린의 실태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정치범 수용소는 한국에서 불리는 말이고, 북한에서는 ‘정치범 관리소’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정치범 수용소는 한국의 교도소처럼 시멘트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건물이 아닙니다. 물론 북한에도 있지만,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 건물을 ‘교화소’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정치범 수용소와는 달리 ‘교화소’는 짧은 수감생활을 할 경우에 들어가게 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신동혁씨 “개천 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

 

 

개천관리소의 형태를 설명하고 있는 신동혁씨

 

신동혁 씨가 있었던 개천 수용소는 평양에서 60km 밖에 떨어져 있고 주로 '14호 정치범 관리소'라고 불렸습니다. 이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14번째 정치범 수용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관리소 이름을 보면 북한에 몇 개의 수용소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용소의 형태는 일반 교도소와는 달리 한국으로 따지면 하나의 '군(郡) 정도의 크기'이며, 산등성이를 둘러싸고 그 주위를 전기철조망으로 두른다고 합니다. 즉 관리소라고 해도 하나의 마을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전기가 부족한데 어떻게 전기 철조망을 둘까요? 그건 개천 수용소 앞으로 흐르는 대동강 물을 수력발전식으로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해내고 여기서 만든 전기로 고압 철조망을 만들어 많은 수감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도망치지 못하게 함정이나 지뢰를 만들어놓고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시킨다고 합니다.

 

 

 

신동혁씨 "그 곳은 인간이 아닌 '노예'만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던 신동혁씨는 "그 곳에서의 생활은 인간이 아닌 '노예'와 같은 삶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개천 수용소에는 신동혁씨 처럼 그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부에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외부에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입고 있는 옷을 벗긴 후 죄수복으로 갈아입힌 후에 여러가지 조사를 거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동혁씨처럼 수용소안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경우 바깥 생활이 어떤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죠. 바로 북한 정권에서는 외부 생활에 대해서 발설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를 막은 것입니다.

 

 

 

글 어스에서 찾은 '개천 수용소'의 위치

 

 

 

 

 

구글 어스에서 찾은 '개천 수용소'의 모습

 

 

정치범 수용소에서 기상 시간은 새벽 4시이며, 시계는 없지만 매 시간마다 종을 울려 시간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4시이면 종을 네 번 치고, 4시 반이면 30분 후에 세번 종을 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면 관리소 안에 있는 피복 공장, 과수원, 농장,  탄광 등 각자가 많은 작업반으로 일을 하러 간다고 합니다. 즉, 이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로지 이들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밥은 제대로 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숟가락으로 3~4 스푼 정도 되는 만큼의 옥수수와 소금에 절인 배추국을 주고 일을 시킨다고 하니, 거의 강제노동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신동혁씨는 "땅에 떨어져 있는 음식도 간수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먹을 수 있으며, 지나가는 쥐를 잡아 먹는 것 또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감자들에게 전혀 건강한 식생활을 지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 정치범 수용소 모습(연합뉴스 2010년 1월 20일자)

 

 

 

            ▲ 정치범 수용소 모습(중앙일보 2011년 4월 27일자 김진희기자)

 

 

 

그렇다면 교육은 어떨까요?

정치범 수용소 안에서의 초등교육은 6살 때부터 시작되며,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정일, 김일성에 대한 교육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하지 않을까요? 그건 바로 절대로 이 안에서 살아나갈 수 없으며, 이 안에서 죽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김정일 우상화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동혁 씨는 개천 수용소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김정일, 김일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첫 번째 초등교육은 정치범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그리고 각종 작업에 동원되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탄광부터 미싱 기술, 과수원, 농장 다양한 작업이 수감자들에게는 교육이며, 모든 교육을 졸업하는 나이는 17살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교육일까요? 이건 단지 수감자들을 작업에 동원하기 위한 노예와 기계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이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에 따르면 경미한 규정위반에 대해서도 총살형에 처해지게 되어있다.

 

제 1조 1항 "도주시 즉시 총살한다." 2항 "도주 기도시 목격하거나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 2조 1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간수)의 승인 없이 다른 지역으로 무단 이동할 경우 즉시 총살한다."

 

제 3조 1항 "무기류를 도둑질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자는 즉시 총살한다." 2항 "무기류를 도둑질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자를 신고하지 않거나 공모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3항 "관리소내의 모든 식량을 도둑질하거나 감추는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 4조 1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에게 불만을 품거나 구타를 했을 경우 즉시 총살한다." 2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의 지시에 불성실한 자, 불복종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 5조 1항 "외부인을 감추어두거나 보호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2항 "외부의 물품을 소지하거나 감춘 자, 공모한 자,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 7조 1항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에 태만하거나 수행하지 않을 경우 법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간주하고 즉시 총살한다."

 

제 8조 1항 "승인 없이 남녀 간의 신체접촉이 있을 경우 즉시 총살한다."

 

제 9조 1항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죄에 대해 불복종하거나 의견을 갖는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 10조 "관리소의 법과 규정을 어겼을 경우 즉시 총살한다."

 

이상의 관리소 전체 수요자들은 보위지도원을 자신의 진정한 선생님으로 생각하며,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을 철저히 지켜 자신들의 지난 날 저지른 과오를 씻는데 성실한 노동과 규율로 이바지 하여야 한다.

 

 

 신동혁 씨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장 먼저 암기했다는 10대 법과 규정

 

 

 

신동혁씨 "나는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탈출했다"

 

 

철조망을 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신동혁씨

 

 

신동혁씨는 개천 수용소를 탈출을 감행하게 된 계기가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용소에서 태어났던 신동혁씨는 23살이 되던 해 평양에서 끌려온 한 남자의 말을 들으며 평양과 중국 그리고 남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별로 들리지 않았지만, 바깥 세상을 경험했던 그 아저씨는 점점 생활을 하면서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놓치 못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양심이나 우정이라는 일반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점차 그 아저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그런 감정들을 알아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신동혁씨는 그 아저씨와 함께 탈출 계획을 세웁니다. 산 쪽이 철조망이랑 가장 가깝기 때문에 1월 2일 아침, 신동혁씨는 화목(나무)를 하러간다고 하고 탈출을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들키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오후 4시까지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마음을 강하게 먹고 뛰어가다가 도랑에 넘어져 함께 뛰던 아저씨가 앞서게 되고, 그 아저씨는 고압 철조망에 끼게 됩니다. 그 아저씨가 끼면서 철조망이 늘어지게 됐고, 그 공간을 통해 신동혁 씨는 철조망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동혁씨는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거의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의 입장이었다면, 아저씨가 괜찮은지 확인을 하거나 함께 빠져 나오도록 도왔을 텐데.."라는 그의 말 속에는 회한과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이 가득차 보였습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관심 국민과 국제사회 모두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국민과 국제사회의 관심입니다.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정치범수용소는 6개입니다. 원래 20개 였던 정치범 수용소는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6개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범 수용소가 다시 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다시 한 번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 지금 북한에서는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수가 늘고 있습니다. 22년간 수감생활로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이 실상을 알리기 위해 나선 신동혁 씨의 용기에 우리도 보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 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 지혜연, 노민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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