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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삐라와 대북전단

 지난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워크샵 일정으로 DMZ(비무장지대)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DMZ 박물관에는 DMZ에 사는 동물, 식물들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자료들과 사진, 발굴된 군수물품 등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2층을 돌아보던 중, 강렬한 색깔의 종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림과 함께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으로 인쇄된 그 종이들은 ‘삐라’였습니다.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는 삐라들이 처참했던 지난 한국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분단 70년 역사와 함께해 온 삐라와 그리고 오늘날의 대북전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북전단은 삐라다? !

  삐라는 그 어원이 확실하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미국의 ‘villa’광고 전단을 보고 발음하여 ‘삐라’가 되었다는 설과 ‘전단’의 영어 ‘bill’을 일본식으로 발음하여 ‘삐라’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삐라의 정확한 표현은 ‘전단(傳單)’으로 ‘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이라는 뜻입니다. 신문지 사이에 끼어있는 광고용 전단도 삐라, 북한을 향해 날리는 전단도 삐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북전단을 삐라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삐라가 모두 대북전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대북전단은 누가? 어떻게? 왜?


  대북전단은 북한을 향해 날리는 전단으로, 최근에는 대형 풍선 안에 전단과 함께 영화가 담긴 USB, DVD, 음식, 옷, 돈 등을 함께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몇몇의 탈북민 단체, 민간단체가 북한주민들과 북한 군인들에게 ‘독재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금전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 대북전단을 살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북전단을 실은 대형 풍선은 풍향에 따라 함경도까지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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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와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과 계급운동의 일환으로 삐라를 배포’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 근. 현대사와 삐라의 역사는 뿌리가 꽤 깊은 것 같습니다.

  ‘민중을 계몽시켰던 삐라’의 의미가 변질된 것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되면서, 무력을 사용한 전투와 함께 삐라를 사용한 심리전이 중요하게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은 언어와 문화가 같아서, 심리전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전쟁 동안 비행기를 이용한 엄청난 양의 삐라가 살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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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뿌려진 삐라의 가장 많은 내용은 서로의 체제로 넘어오는 ‘귀순’을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순을 권유하는 삐라의 형태는 ‘안전증명서’로, 그것을 들고 귀순을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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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증명서 이외에도 미군은 공산독재와 소련, 중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삐라, 북한과 중국군은 전쟁을 일으킨 미제국주의와 이승만 괴뢰도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삐라를 뿌렸습니다. 전쟁 중에는 유엔군이 적을 비판하는 내용이 아닌, 남한의 군대와 주민들에게‘최대한 항전하고, 현 위치를 고수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의 삐라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소식을 접하기 어려운 농촌지역에서는 유엔군이 뿌리는 신문형식의 ‘낙하산 뉴스’ 삐라가 전쟁과정을 알리는 매개물이었던 것입니다.

<발행주체별 삐라주제>

 

 

  1980~90년대까지도 남한과 북한은 삐라를 제작하였고, 남한에서 북한으로 보낸 삐라는 산업 발달을 과시하면서 잘살게 됐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때 제작된 삐라들은 대중의 눈길을 한번이라도 더 사로잡기 위해 연예인 얼굴이 들어있는 것이 많은데, 남한과 북한이 모두 활용하였습니다.  

  남북한의 길었던 삐라전쟁은 2000년 6.15정상회담으로 인한 남북한 화해 국면에서 2004년 제2차 장성급회담에서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대북전단과 현 남북관계 그리고 통일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2010년 탈북자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민간단체에서 ‘대북전단 보내기 운동’을 펼치면서 ‘소리 없는 전쟁’, 삐라 전쟁이 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시작됐습니다.

  작년 10월 경기도 연천에서 한 탈북민 단체가 대규모의 대북전단을 살포하자, 이에 북한에서 대공기관총을 발사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임진각에서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려 하자 민통선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대북전단 풍선을 강제로 수거했고, 충돌을 방지하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3월 천안함 5주기를 맞아 탈북민 단체는 대대적인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했고, 북한에서는 대응하리라 엄포를 놓았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분단 70년을 맞은 우리 한반도에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디 고통 받는 북한주민을 돕고 싶은 마음과 남한 주민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 모두가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바다로 흘러가는 여러 강줄기들이었으면 합니다.   

 

참고자료

-'삐라'의 의미, 네이버 국어사전

-韓國言論學報 제52권 1호, 2008.2, 한국전쟁 기간 삐라의 설득커뮤니케이션, 김영희

- "삐라"의 심리학: 선전선동의 화석(化石)과 남북한 관계, 다음 블로그

천안함 5주기 앞두고 남북 '대북전단 충돌' 위험 고조(종합), 연합뉴스

-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거쳐 21세기까지...한반도 ‘삐라’의 역사, 헤럴드 경제뉴스

- 대북 '삐라'의 모든 것…수영복 원미경·최명길로 北 자극. 중앙일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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