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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제2연평해전 12주년 기획, 남과 북이 본 연평해전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국민들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뜨거웠던 열기를 되새기며 아쉬움을 달랬을 것입니다. 붉은 물결로 가득했던 12년 전의 6월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쉽사리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기억의 이면에서 전 국민의 함성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던 제2연평해전과 그 전사자들에 대해 떠올리는 분들이 계시는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 거리응원 (출처: 안전행정부)▲제2연평해전 12주년 기념식 (출처: 연합뉴스)

 

 

   제2연평해전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2년 6월 29일에 벌어졌던 해상 전투로,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러 대한민국과 터키의 3·4위전을 앞두고 있어서 전 국민의 기대감과 흥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월드컵으로 집중되어 있던 그 날 오전 10시경, 북한 경비정 두 척이 남하하여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을 침범하였습니다. 이에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던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북한군이 기습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3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 경비정은 퇴각하였고, 우리 해군은 전사자 6명(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과 부상자 19명이라는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막아내고 두 척의 경비정을 격퇴시킴으로써 NLL을 지켜낸 우리나라 해군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당시 한일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크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북한군이 계획한 공격이라기보다는 우발적 도발이다'라는 논란, 승전의 의미를 담은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기 이전까지 사용된 '서해교전'이라는 명칭, 천안함 46용사의 장례식에 비해 조촐히 치러졌던 장례식 등과 같이 그 희생의 가치가 다소 저하되는 면모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2010년 최순조 작가의 소설 <연평해전>을 원작으로 한 제2연평해전의 영화화 소식으로 최근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작 중단과 주연배우 하차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김학순 감독의 영화 <NLL 연평해전>은 크라우드 펀딩과 출연진 및 제작진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다시 한 번 진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본 연평해전> 포스터 (출처: Story K)

  지난 6월 28일에는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가 주관하고 안전행정부가 후원하는 토크콘서트 <남과 북이 본 연평해전>이 제2연평해전 12주년을 기념하여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토크콘서트에서는 이희완 소령, 이소연 대표, 최순조 작가가 각각 긴박했던 당시 연평해전, 북한에서 본 연평해전,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연평해전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점에서 제2연평해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첫 번째 토크는 연평해전 생존자 이희완 소령의 '긴박했던 당시 연평해전'이라는 주제로 시작하였습니다. 이희완 소령은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 중위로 참수리 357호정의 부정장이었으며, 교전 중에 전사한 정장 故 윤영하 소령을 대신하여 작전을 지휘하다가 포탄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 소령은 현재 대전의 합동군사대학교에서 교육통제담당으로 근무하며 국가안보와 관련해 강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령은 자신이 대한민국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며 전투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희완▲제2연평해전 생존자 이희완 소령

  부정장으로서 그의 임무 중에는 포탄 사격 명령을 내리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북한이 공격하기 전에는 명령을 대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북한 측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쏴!"라고 하는 한마디의 명령으로 즉각 대응사격을 하게 되는데, 그 명령을 내리기 직전까지의 긴장된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85mm의 큰 포탄이 날아와 조타실이 첫 공격을 받았을 때 그 소리와 진동이 얼마나 컸는지, 이어지는 공격으로 인해 헤드셋을 통해 얼마나 많은 보고들이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12년 전에 일어났던 해상에서의 전투를 청중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이 소령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 해상에서의 3·8선인 NLL을 지켰다"고 말하며 진정으로 애국하는 해군 장교로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소연▲북한 4군단 여군출신 이소연 대표최순조, 연평해전▲소설 <연평해전> 저자 최순조 작가


  두 번째로 북한 4군단 사령부 출신인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의 '북한에서 본 연평해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소연 대표는 2008년 탈북 하였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제1, 2차 연평해전 당시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통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탈북을 하고 난 후, 대한민국에서는 연평해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북한군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 이었다'던 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는 아니었을 것이다'였다고 합니다. 이에 이 대표는 연평해전은 북한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획되어 시작된 전투라고 말했습니다. 

  90년대 중반 북한은 경제상황의 악화로 UN과 우리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소연 대표가 북한에서 여군으로 근무하던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은 "남조선은 생지옥이고, 몇 안 되는 부자들이 남조선 주민들을 못살게 굴고 있으니 우리가 적화통일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는데, 이런 가난한 남조선에서 쌀을 대량 지원해준다고 하면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당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던 개성공단을 피해 서해 해상에서 무력충돌을 감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북한에서 30여 년을 지냈던 그녀가 본 연평해전은 북한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의도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2002년 월드컵은 기억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영화 <NLL 연평해전>의 원작소설인 <연평해전>의 저자 최순조 작가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최순조 작가의 원래 직업은 엔지니어였으나,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이 잊혀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설 <연평해전>의 '작가에 말'에 따르면, 그는 연평도 해군고속정전진기지에서 1983년과 84년에 근무했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해군 장병들을 위해 오랜 노력 끝에 소설을 집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최 작가는 앞선 강연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국토를 방위하다 목숨을 던진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들에게 무관심한 나라와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강연시간이 많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제2연평해전 당시의 상황을 남과 북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002년 하면 머릿속에 월드컵 경기와 그 열기만을 떠올리던 것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내걸고 경기에 임하는 태극전사들을 위해 목청껏 응원하고는 합니다.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힘을 실어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진정한' 태극전사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2연평해전을 통해 바라본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대 세습 체제 공고화를 위해 가해오는 도발은 최근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를 들면, 오는 9월에 개최되는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가 의사를 밝히며 그간 경색되었던 남북 관계에 평화적인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무색하게 북한은 지난 6월 26일 방사포 발사 실험에 이어 사흘 만인 29일에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을 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해온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초반에 우리나라 국민들을 비롯해 국제사회 내에 긴장감과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잦은 도발은 이러한 국민들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다소 무디게 만든 측면도 있어 우리나라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국가라는 인식 재고에 대한 필요성도 느껴집니다. 

  앞서 소개한 토크콘서트에서 이소연 대표가 "북한 체제의 실상은 정확히 파악하되, 북한 주민은 안고 가야한다"고 청중들에게 거듭 당부하던 것이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잘못된 3대 세습 체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비판해야 하지만, 같은 민족으로 태어난 북한 주민들이나 탈북 이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마음만큼은 열려있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크게 분노하고 원망했던 제1, 2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들은 젊은 세대의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낮은 인식에 영향을 미친 바가 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북한 주민들이 당장이라도 원하는 소박한 소원은 흰 쌀밥에 고깃국 먹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은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이 살아가는 삶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함께 해온 한민족인 북한 주민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겨누어 그들을 탓하기보다,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이룩하여 다시는 제2연평해전 등의 사건처럼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상 제7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의 이초원 기자였습니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제2연평해전 (두산백과)

동아일보, [46용사 잊지 않겠습니다] 제2연평해전과 확 달라진 예우 http://news.donga.com/3/all/20100430/27986387/1

영화 NLL연평해전 공식홈페이지 http://www.nll2002.com/

최순조, 연평해전, 지성의 샘, 2008.


사진출처

http://www.mospa.go.kr/frt/bbs/type010/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8&nttId=4228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986642

 http://www.storyk.co.kr/bbs/list.html?table=bbs_15&idxno=1264&page=1&total=5&sc_area=&sc_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