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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우리에게 '간첩'은 어떤 의미인가, 영화 '간첩 리철진'을 보고

여러분들은 15년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 하시나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무려 15년 전 개봉(1999)했지만 지금 봐도 마냥 촌스럽지만은 않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시각에선 촌스러워 보이는 포스터는 어쩔 수 없네요.

바로 <간첩 리철진>입니다. 지금은 실력파 중견 배우로 자리 잡은 유오성씨가 주연을, 장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입니다. 

99년 영화 개봉 당시에는 제가 영화 관람 등급으로 인해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때의 독특한 영화 포스터는 아직도 제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 포스터!

▲간첩이라는 파격적인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것이나 배우의 비장한 표정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작은 돼지가 함께 등장한 포스터. 무엇인가 이질적인 느낌의 배치는 당시 어렸던 저의 호기심을 마구마구 자극했습니다. 

주연배 유오성 씨가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포스터만 봐도 돼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시나요? 이 작품은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남파된 북한의 간첩이 ‘슈퍼돼지’를 노린다는 콘셉트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사실 이러한 컨셉은 당시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같은 역사적 흐름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논란 아닌 논란도 불러 일으키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소재였습니다. 굶주린 북한의 동포들을 구하겠다는 투철한 이념으로 무장한 간첩 리철진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4인조 택시 강도단에게 가져온 공작금 모두를 빼앗기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동안 비장하고 어두운 이미지의 간첩 이미지를 깨부수고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모습, 1999년 당시로 보자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간첩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는 리철진의 모습을 통해 사상, 생활습관 등의 차이는 있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인간적인 간첩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간첩’의 이미지를 새로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북한 사람’의 이미지에 중점을 두었다고 생각됩니다.

제목만으로는 ‘간첩’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인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들에게서 씁쓸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바로 블랙코미디 장르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북한과 관련한 영화 중에서 최초로 블랙코미디를 시도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다시 영화의 내용을 조금만 더 설명 해드릴까요? 리철진은 슈퍼돼지의 유전자 샘플을 천신만고 끝에 손에 넣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에 돼지를 지원한다는 공식적인 제의를 함으로써 리철진의 임무 자체가 무의미하게 변해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투철한 사명감과 지나친 비장함으로 무장했던 리철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 과연 간첩 리철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

한반도 분단 현실이 만들어낸 존재, 간첩의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인 운명! 딱딱하고 어두운 북한과 간첩을 소재로 한 '장진 감독표' 허무개그! 간첩의 존재가 없어도 되는 통일된 한국을 상상하며 영화 <간첩 리철진>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