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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혹시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시를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탈북시인 장진성 씨가 인터넷에 올렸다가 누군가 그것을 UCC 동영상으로 재구성하여 2007년 2월 초 한 주간 인터넷 동영상 1위, 판도라 TV랭킹에서도 1위가 된, 북한의 참혹한 실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2008년,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포함한 탈북민 장진성 씨의 시 72편이『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시인에 대한 소개를 잠깐 하자면, 장진성 씨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노동당 작가로 근무하던 분입니다. 20대에 김정일과 함께 사진을 찍을 만큼 남 부러울 것 없이 출세가도를 달리던 인생이었지만 북한의 현실을 알고 난 후에, 양심적인 이유로 탈북을 하게 되어 2004년 남한에 입국하게 되었지요.

 두만강을 넘을 때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만한 흔적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장진성 씨는 남한으로 가서, 300만 아사라는 북한의 현실을 폭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자신이 쓴 글을 품고 강을 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 시집은 우리가 그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그대로 남았더라면 300만의 인민들이 굶어죽었든 어쨌든 본인만은 호의호식하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보장된 삶을 버리고 남한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을 때, 그것도 잡혔을 때의 신분노출을 각오하고 자신의 시를 품고 탈북을 감행했을 때, 그의 시 속에 담긴 현실을 우리가 어떤 무게로 다루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시집『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일반적인 다른 시집들과는 조금 다른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움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시집과는 달리, 현실을 그대로 기술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호승 시인은 이 시집을 두고 "서정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존재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일깨워 줄 뿐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감상에 젖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도, 구체적인 현실을 적어 내려가는 시인을 두고, 정호승 씨는 또한 '이 시집에 나타난 구체의 힘 앞에서 그 동안 내가 쓴 시의 구체는 참으로 초라하다. 이 시집은 장진성 씨가 겪은 체험의 구체적 힘만으로도 읽는 이의 가슴을 벼랑 끝에 세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이 시집을 보면 이 말의 뜻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집을 읽어내려가노라면, 정작 시인에게는 말라붙은 듯한 눈물이 우리의 눈에서는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 현실을 직접 목도한 사람입니다. 그 현장 속에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한 방울의 눈물조차도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전달할 뿐. 그러나 읽는 우리의 눈에서는 시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시의 아름다운 언어가 주는 눈물이 아닌, 현실이 주는 눈물입니다. 현실 그 자체가 이미 눈물을 흘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서정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존재한다'

'이 시집은 장진성 씨가 겪은 체험의 구체적 힘만으로도 읽는 이의 가슴을 벼랑 끝에 세운다'   -정호승 시인-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시부터 한 번 볼까요? 전문을 옮길 수는 없지만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어머니가 시장에서 자신의 딸을 백 원에 팔고 있습니다. 모두들 이 장면을 보고, 이 여인을 욕합니다. 그러나 팔려가는 딸아이는 어머니를 원망하기 이전에 이렇게 외칩니다. 엄마는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군인이 백 원을 주자, 어머니는 달려가서 빵을 사와 이별하는 딸아이의 입에 넣어줍니다. 그러니, 딸을 백 원에 파는 것은 딸을 위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죽을 병에 걸린 자신 옆에서 죽어갈 것이므로. 세상 천지에 딸을 파는 것이 딸을 향한 마지막 모성일 수 있는 나라가 북한 외에 또 어디가 있을까요? 아래에서 일부만 인용해 봅니다.

 

그는 초췌했다/-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그 종이를 목에 건 채/어린 딸 옆에 세운 채/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중략)

그는 어머니였다/딸을 판 백 원으로/밀가루빵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中

 시집에 나오는 또 다른 시 중, '아이의 꿈'이라는 시도 있는데요,일부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략)

꿈 속에서/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총을 쏘는 군대도 무서워 안했을까

꿈 속에서/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손에 그걸 꼭 쥐고 죽었을까

그 꿈은/죽으면서도 놓지 않은 그 꿈은/작은 옥수수 하나

"아이의 꿈"中

 

 이 시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당시 북한은 자신의 손으로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가을에는 군대들이 무장을 하고 농장을 지키며 다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배급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00만이 굶어죽었고, 이것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김정일이 농작물을 훔치는 자는 현장에서 사살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는데요, 그러나 '사흘 굶어 남의 집 담 안 넘는 사람 없다'는 우리 속담처럼 배고픈 사람 눈에는 그 무엇도 보이질 않습니다. 당장 배가 고프니 그러다간 총 맞아 죽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옥수수 한 알을 훔쳤고, 그 결과 총살 당한 것입니다. 총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아이가 갖고 싶었던 것은 고작 옥수수 한 알이었습니다.

 비슷한 시 한 편을 더 볼까요? 역시 일부만 인용합니다.

(상략)

쌀 한 가마니 훔친 죄로/총탄 90발 맞고 죽은 죄인

그 사람의 직업은/농사꾼

"사형수""中

 '그 사람의 직업은 농사꾼'이라는 마지막 표현이 여운을 남깁니다. 직업이 농사꾼인데 왜 쌀을 훔쳐야 했으며, 도대체 누구의 쌀을 훔쳤던 것일까요? 농사꾼이 쌀을 훔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북한에서는 스스로 지은 농사라 하더라도 수확한 농작물은 일단 국가의 것입니다. 국가가 거둬간 후에 다시 배급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지은 농작물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몰래 감춰놓는 것은 국가의 것을 도둑질하는 중죄로 취급됩니다. 그러나 거둬가 놓고 배급을 주지 않으니 자신의 것을 '훔칠' 도리밖에, 농사꾼에게 달리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요?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조차도 총탄 90발을 맞고 죽을 죄로 취급받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또한, 단지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권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는 시 역시도 있습니다. 300만 아사라는 사건이 자연재해와 같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인해 일어났다면 모를까, 북한의 300만 아사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정권은 몇십만을 살릴 수 있는 돈으로 김일성의 무덤을 지었습니다. 바로 이런 현실이 시인을 탈북까지 이끌기도 했겠지요. 또한, 시인은 이런 참혹한 현실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남한 주민들의 관심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상략)

지금도 이국땅 만리에서/남의 말에 억눌려/방황하고 멸시받고/온갖 학대 다 당하는/그 우리말이 바로

남한 사람들이여/당신들의 국어라고 생각해 보시라

"우리말"中

 시인이 강을 건너면서 세상에 폭로하고자 했던 진실, 잊혀진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진실. 그것이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통해 우리 곁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이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