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이론에서 말하는 분석레벨을 북한의 외교정책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북한이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는 소위 ‘미치광이 이론’에서 벗어나 국제정치 측면의 레벨을 북한에 적용해서 살펴보는 작업은, 우리 또한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분석레벨을 적용하는 일은 어떠한 변수가 외교정책을 형성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즉 이미 나타난 북한의 외교정책이나 외교 현상을 보고, 그것이 어떠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분석 자료로는 『근로자』라는 북한의 대외관계에 관한 정기간행물이 사용되었다.
국제체제 분석레벨(systems level of analysis)
국제체제 분석레벨은 국가를 국제사회의 유일한 행위자로 파악한다. 그리고 국가들은 각자 자신들이 국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한다. 따라서 국제체제 분석레벨에서의 국가는 각자의 목표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다. 이렇게 국제체제 분석레벨에서 본다면 북한 또한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므로 우리는 북한의 행동을 예측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극체제의 상징 G20 정상회의
(출처 : http://www1.pictures.zimbio.com/gi/Barack+Obama+Angela+Merkel+World+Leaders+Attend+orBA2s-3hWqx.jpg
『근로자』에 등장하는 글들을 살펴보면, 북한이 기본적으로 국제체제를 양극체제나 다극체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양극체제가 무너진 후 미국이 일극체제를 지향했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럽 등의 신흥 강국들이 등장해 다극체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이극구조의 세계정세에서는 구소련과 미국이라는 양 초강대국이 국제무대에서 특별한 발언권을 갖고 세계질서 유지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소련이 없어진 오늘날에 있어서는 미국 이외의 복수의 국가 혹은 국가연합이 독자적인 세력이 되어 국제문제 해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세계를 일극화하려는 미국에 도전하고 국제문제 해결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나라가 늘어나 다극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냉전종식 후 세계정세의 중요한 추세로 되고 있다.”
(출처 : http://www.segye.com/content/image/2013/03/31/20130331001863_0.jpg)
그리고 북한은 국제체제가 국내정치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었다. 북한이 칭하는 소위 ‘제국주의자’들이 국제경제레짐을 통해 북한 뿐 아니라 제 3세계 국가들의 경제에 침투해서 이들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낡은 국제경제질서야말로 제국주의자에게는 이익을 가져다주고 발전도상나라들에게는 손해만 주는 극히 불공평한 질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근로자』에 언급되었던 것들만 살펴본다면, 북한은 주고 국제체제 분석레벨을 통해 국제관계를 인식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탈냉전이 시작된 시기부터 국제질서의 변화가 국내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는 언급이 많아졌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이 당시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료정치 분석레벨
“(남한)이 제1선 기지라는 것은 미국방성이 채택한 아세아태평양군사전력의 기본개념으로서 … 미 제7함대와 제3함대 소속의 핵타격 수단으로써 사회주의나라들을 계속 핵공격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얼마전 일본방위청은 1990년도 군사예산으로 또다시 올해의 군사예산보다 6.35% 더 늘어난 4조 1,700억 엔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미국 국방부 본 청사인 펜타곤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c/The_Pentagon_January_2008.jpg/550px-The_Pentagon_January_2008.jpg)
위의 글을 보면 북한은 미국의 국방성과 일본의 방위청 같은 행정기구와 기능, 역할 등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게다가 이 기구들이 그 나라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한 파악하고 있다. 이는 관료조직이 국가 내부의 또 다른 행위자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북한 행정부 내부에서 나타날 법한 부서 내 갈등이나 부서 이기주의 등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북한 행정부 내부의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갈등 상황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국내정치 분석레벨
『근로자』에서 북한은 미국이 경제난이나 군비부담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시장개방을 강요하는 식민지정 정책을 취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내문제가 대외정책에 영향을 주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전쟁 또한 마찬가지로 미국 석유기업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비정책에 있어서는 특정 기업의 이름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침략전쟁을 감행한 목적은 … 미국의 석유독점체들의 이권을 보호하며 (중동)지역의 풍부한 원유매장지를 저들의 통제 밑에 두려는 데 있다.”
“일본의 대독점체들은 나라의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면서 … 현대적인 무기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쯔비시중공업>회사와 <가와사끼중공업>회사를 비로한 일본의 대군수독점체들은…”
걸프전쟁의 모습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d/Gulf_War_Photobox.jpg/488px-Gulf_War_Photobox.jpg)
정책결정자 분석레벨
『근로자』에서는 정책결정자 그룹을 국가와 별개로 간주하는 언급들이 있었다.
“일본지배층의 경우에 있어서 … 자국내 인민들을 기만하면서 노골적으로 군국주의를 재생재무장시킬 수 있었다.”
“(남한의 관료들)그들은 미국에 뽑혀가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 충성을 맹약한 주구들이며 미국무성이나 남한주재 미국대사관의 인선과 승인하에서 정권에 들어앉은 사대매국노들이다.”
위의 언급들을 보면 북한은 일본의 기득권이 국민을 기만하여 군국주의를 다시금 펼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남한의 지배층은 미국에 의해 길들여진 이들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언급은 북한이 정책결정자의 성향이나 배경이 그 국가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외교정책을 결정하게 하는 네 가지 분석레벨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의 폐쇄적 특성상 북한을 이 네 가지 분석레벨만 가지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관계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더 다양한 관심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분석레벨들을 적용함으로써 적어도 『근로자』를 통해서는 북한이 국제체제 분석레벨 상에서 국제관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ejunate@nate.com
구희상
[참고자료]
김용호, "분석레벨의 적용문제", 『북한현대외교론』, 오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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