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문제를 해결할 어떠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어 최근에는 북한이 평양주재 외국 공관에 철수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중 각국의 정권교체가 막 이뤄진 시점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시급하다. 그러므로 대북정책을 구상하기에 앞서, 북한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보통 북한이 폐쇄적인 외교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 역시 강대국들 틈 속에서 국익을 도모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이제부터 적대외교, 협력외교, 동맹외교, 비동맹외교의 네 가지의 분석틀을 가지고 북한의 외교정책을 분석하고자 한다.
적대외교
국가는 기본적으로 타국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나 국가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 강한 힘을 보유함으로써 이러한 불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들이 적대적인 외교정책을 취하는 기본 인식이다. 냉전은 적대외교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났던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의 공산주의 진영은 서로를 불신하며 대립과 해소를 반복했다.
(출처 : http://world.kbs.co.kr/src/images/news/201304/n_20130406_04.jpg)
북한 역시 자신의 국익을 위해 냉전체제 속에서 적대외교를 감행했다. 국익을 추구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1. 무력으로 적을 항복시키는 것, 2. 압력을 통해 적국 스스로 변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북한 역시 핵카드를 사용해 벼랑 끝 전술을 보이는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정책은 대부분 군사력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대외교가 그동안 북한의 중심적인 외교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협력외교
국가 간 협력은 우호국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화해가 아닌 명목상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냉전 당시 양 진영의 기본적 노선은 적대외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 간의 전면전이 발발하지 않았던 것은 미·소 양국의 전쟁회피 노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공멸하지 않기 위해 부분적 협력을 이루어냈다.
악의 축 발언을 풍자한 만화
(출처 : http://www.sott.net/image/image/4831/medium/AxisOfEvil-x.gif)
북한 역시 제한적으로 한국이나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언급하며 대미관계가 악화되었다. 이에 북한은 신속히 ‘테러에 대한 재정지원 금지 국제협약’, ‘인질반대 국제협약’에 가입했고 이외의 5개 반테러 협약에 가입의사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는 2002년 9월 17일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협력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성사시킨 주요 동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보면 북한의 협력은 경제적 이익에 따른 제한적 협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맹외교
국가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도 있지만, 또한 동맹을 통해 힘을 결집시키는 방법도 있다. 특히 약소국의 경우 강대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1. 적국보다 힘의 우위에 놓일 수 있다., 2. 동맹을 통해 적국을 억지할 수 있다., 3. 전시에 홀로 싸우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북중동맹조약 51주년 축하 연회의 모습
(출처 : http://www.anewsa.com/news_images/2012/07/11/mark/20120711120340.jpg)
냉전 속에서 남과 북은 각 진영의 강대국과 동맹을 맺었다. 한국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북한은 중국, 소련과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따라서 북한은 냉전 당시 강대국과의 동맹 틀 속에서 외교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된 후 소련을 뒤이은 러시아가 민주화되면서 이념적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1990년대 중반 북한과 러시아의 동맹조약은 폐기되었다. 반면 탈냉전 속에서 북한은 철저히 고립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북한은 중국과의 동맹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높은 경제적 의존도는 이러한 대중 동맹외교를 앞으로도 더욱 강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동맹외교
비동맹은 동맹외교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보통 중립과 비동맹의 구분이 모호할 수 있는데, 중립은 다른 국가들의 조약에 의해 보장받는 법적 지위이다. 반면 비동맹은 스스로 정하는 정책방향이며 특정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 비동맹운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냉전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있었고,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끼리 인종적, 문화적 동질감을 더 강하게 느꼈다.
*비동맹이 제시하는 평화 5원칙은 다음과 같다. 1.영토보전과 주권에 대한 상호존중 2.불가침 3.내정불간섭 4.동등한 상호이익 5.평화공존 |
북한은 1975년 페루에서 개최된 비동맹 외상회의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이후 1960년대 들어 자주외교노선을 주장하면서 중국, 소련에의 동맹외교보다 비동맹외교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중소분쟁이 일어난 가운데 북한이 취한 외교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두 동맹국으로부터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중국과 소련 가운데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친 것이다. 중국과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으며 북한은 이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mejunate@nate.com
구희상
[참고자료]
http://terms.naver.com/entry.nhn?cid=505&docId=68701&mobile&categoryId=505
http://terms.naver.com/entry.nhn?cid=505&docId=727691&mobile&categoryId=505
http://terms.naver.com/entry.nhn?cid=504&docId=727506&mobile&categoryId=504
김계동, 2002, “외교정책의 유형: 북한 외교정책의 분석틀”, 『북한의 외교정책』, (서울, 백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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