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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널 너무나 사랑해서 난 TV를 껐어, 드라마 속 남남북녀

일제 강점기 | 당시 우리 시대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체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일제 침략기 가장 많은 압력을 받으면서도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소설은 시대상황을 잘 담고있으며, 국민들 의식을 개몽하는 역할도 했다.

분단의 시대 | 지금 우리의 시대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체는 무엇일까? 기술에 발달은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새로운 매체를 만들었고, 소설의 기능은 TV 드라마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과거 소설처럼 우리들의 삶을 제3자의 모습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주요 방송사는 밤 10시 황금시간대에 방송사 간판 드라마를 편성한다. 다소 늦은 시간인 밤 10시에 편성되는 드라마에 따라 방송사 9시 뉴스 시청률도 다르게 나온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늦게 잠드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을 반영한 것이 밤 10시인지, 드라마 때문에 늦게 잠드는 생활 패턴이 자리잡게 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는 우리 생활 속 깊숙히 자리잡았다.

분단 60여 년. 그동안 여러 TV 드라마가 분단의 상황을 반영했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의 체제 경쟁이 심화되었을 때, ‘반공 드라마'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며 분단의 현실이었다. 북한을 소재로 다룬 최초의 드라마로 꼽히는 1964년부터 1985년까지 20여 년 동안 반영된 ‘실화극장'이 있다.


실화극장

제목 그대로 실제 있었던 내용을 토대로 ‘극' 형태로 재구성한 드라마다. 드라마가 반영되었던 1964년은 분단과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었으며, 이산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잠잘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전쟁을 겪은 사람이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았던 시대였다. 

드라마 ‘실화극장’의 주인공들의 삶은 분단과 전쟁으로 가슴 아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이기도 했다. '실화극장' 초기 가장 많은 사람들에 눈물샘을 자극한 편은 "아바이 잘가오"가 있다. 이 편은 '신금단 부녀상봉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한국전쟁 때 어린 딸과 가족들을 놓고 월남한 아버지가 나중에 북한에서 달리기 선수가 된 자신의 딸 ‘신금단’을 도쿄 올림픽에서 만난다는 얘기이다. 드라마같은 실화가 드라마화 된 것이다. 


신금단 사건이란?

신금단은 1962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400미터, 800미터 2관왕을 차지했는데 1963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신생국 경기대회’ (GANEPO)에 출전해서도 비공인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초유의 일이었고 기록 또한 경이적이어서 일각에서는 그가 “여자가 아니다.”라는 쑥덕거림까지 나왔다. 그래서 심판진이 “신금단의 몸을 살펴 봤는데 가슴이 평평해서 그렇지, 분명히 여자다.”라고 해명할 정도였다. 그녀가 여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에서도 나왔다. 가네포 대회 직후 “신금단은 내 딸이오.”하는 남자가 한국의 언론에 제 발로 나타났던 것이다. 신문준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함경남도에서 1.4후퇴 때 피난 나온 월남민이었다. 주변의 함경도 사람들과 비슷하게 ‘잠시 피난 내려오겠다’고 집을 떠난 것이 그 뒤로 생이별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13년밖에 안되었을 때니 언제고 만날 희망이야 있었겠지만, 어려서 달음박질 잘하고 선머슴애같은 딸이 갑자기 세계적인 육상 선수로 떠올랐을 때 아버지의 심경은 남달랐으리라. 그러던 중 북한 선수단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의 문을 두드렸다. 1964년 동경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다. 당연히 신금단도 그 일원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IOC는 북한에 'North Korea'라는 국호를 쓸 것을 결정했는데 (한국은 Korea) 북한으로서는 이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DPRK,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고집했지만 IOC 역시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어찌 어찌 북한이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또 하나의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것은 신금단이 출전했던 가네포 경기대회, 즉 신생국 경기대회였다. IOC는 이런 류의 대회가 올림픽의 존립 가치를 위협한다고 여겼고,이 대회에 출전한 이들에 대해 올림픽 참가를 불허한 것이다. 금메달 0순위였던 신금단 또한 거기에 포함돼 있었다. 

북한은 여기에 격노했다. “못해 묵갔어 철수하자우.” 기껏 동경까지 왔던 선수단은 다시 보따리를 싼다. 이 소식에 하늘이 무너진 듯 낭패감을 경험한 이가 있었다. 바로 신금단의 아버지 신문준이었다. 그는 신금단을 만나러 동경에 와 있었다. 재일 올림픽 후원회장 이유천은 동경올림픽 위원회 사무차장 무라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무라이는 북한 선수단에게 사정을 전달했다. “금단이가 만나갔다면 만나게 해 주갔소.” 

한국 취재진이 북한 선수단에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때 카메라를 뺏겠다고 달려들던 험악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던 데다가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IOC에 항의하여 선수단을 철수하는 입장이라 그 만남 자체가 기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장소는 일본 동경의 ‘조선 회관’ 조련(조총련) 계열의 젊은이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는 가운데 신문준은 딸 신금단을 만난다. 오후 4시 55분. 북한 올림픽 선수단장 김종항, 조련 의장 한덕수 등이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처음에 부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울었다. 그 서러운 상봉에 올림픽 조직위 일본인 관계자들도 눈물을 흘렸고 지켜보던 북한 선수단도 하늘색 단복이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자리의 부녀에도 휴전선이 그어져 있었음은 동아일보 1964년 10월 10일자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자유대한에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한 아버지와 “15년 내에 통일이 될 테니 그때는 온 가족이 모여서 살 테니 양심적으로 사시오.”라고 답한 딸. 그들이 정말 이렇게 얘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사가 윤색됐다 하더라도 그 시절의 현실을 반영한 일일 것이다. 7분여 만난 뒤 신금단은 건장한 재일 조련 청년들과 저쪽으로 사라졌고 미칠 것 같은 아버지는 북한 선수단이 타고 갈 기차가 기다리는 역으로 향했다. 신금단은 그 역장실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잠깐의 해후 후 신금단은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기고 아버지와 이별한다.


“아바이 잘 가오.” 

출처 : 산하의 썸데이서울

시대는 흐르고 흘러, 검은물에서 파란물로 컬러풀한 TV 화면만큼 표현하고 싶은 목소리도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도 풍부해졌다. 그리고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반공 교육 위주의 북한 소재 드라마는 이제 새로운 장르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다. 


남남북녀의 러브스토리

세상사 살아가는 이야기에 남녀 간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있을까? 특히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 드라마에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누리꾼들은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와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한·미·일 드라마 비교

미국 의학드라마 : 일단 환자를 치료한다
미국 수사드라마 :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를 한다

일본 의학드라마 :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일본 수사드라마 :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한국 의학드라마 : 환자를 치료하면서 연애를 한다
한국 수사드라마 : 수사하면서 연애를 한다

누리꾼의 한미일 드라마 비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된 웃음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 드라마에 ‘사랑' 이야기가 빠짐없이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남녀 간 사랑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1979년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레만호에 지다'는 반공시대 남북 간 사랑이야기를 담고있는 초기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스위스 외교관이 레만호에서 북한의 옛 애인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반영된 KBS ‘스파이 명월'과 MBC ‘더킹투하츠’, TV 조선의 ‘한반도' 모두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예슬, 에릭 주연의 ‘스파이 명월’은 북한 스파이(한예슬 역)와 한류스타(에릭 역)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이승기, 하지원 주연의 ‘더킹2Hearts’는 한국에 아직도 왕(이승기 역)이 존재한다는 가상을 배경으로 북한의 특수요원(하지원 역)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황정민, 김정은 주연의 ‘한반도' 역시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KBS 드라마 '스파이명월'의 인물 관계도

드라마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속에서도 사랑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 중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쉬리'는 북한 특수요원과 남한 특수요원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있고,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코리아'에도 남북 탁구 국가대표 간 남녀의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 있다.  

남녀간 사랑이야기에 필수 불가결 요소는 ‘장애물’이다. 그 장애물이 때로는 국경이 될 수 있고,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삼각관계 또는 혈연관계와 같은 설정을 통해 장애물이 설정되기도 한다.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유도 ‘분단'이라는 장애적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에는 우리 사회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단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단'이 곧 우리사회의 ‘장애물'이라는 사실은 비단 드라마 속 사랑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일제침략기 만들어진 소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했던 그 당시 시대적 장애물을 표현했다면, 분단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드라마는 ‘분단'이라는 시대적 장애물을 표현했다. 다만 당시와 다른것은 일제침략기 우리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비극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리 비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분단에 무뎌졌다는 사실이 분단된 상태라는 사실보다 더 비극적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