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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통일한국의 의료와 발전방향 :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개소식 (하)

2부에서는 네 차례의 발표와 패널토론이 있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북한 의사가 바라본 북한의료의 현실과 통일 대비한 의학 연구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최희란 교수(새터민 의사)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최희란 교수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평양의대에서 임상의학부를 졸업하고, 청진의대 중박사관을 졸업하였습니다. 청진시 내과 의료에서 진료를 담당하고, 의료연구사로도 연구하다가 한국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서 절차를 다 밟으시고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북한 의료의 현실

최희란 교수는 북한의 병원은 의료 설비와 비품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입원을 해야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병원의 수술장 또한 남한과 대비해볼 때 한 눈에 차이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침상부족으로 타일 바닥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들도 볼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법 또한 남한에서는 잘 돼있지만, 북한에서는 잘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농촌의 한 진료소에서는 저녁에 등불을 켜고 진료를 해야합니다. 북한에서는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에서는 쌍침이라고 해서 한 침대에 두 명의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는 모습도 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진료를 위해서는 교환 병서를 가지고 도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뒤, 최소 일주일은 걸려 이행증을 받고, 파송증을 받아 접수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진료를 드디어 받을 수 있다는군요.

파송제도란?

주민이 4차 의료체계의 가장 말단인 호담당 의사(준의사)에게서 1차 진료를 받고 진료하기 어려운 경우 교환병력서를 발급하여 시 군 단위 인민병원에서 2차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2차 진료기관에서 치료가 어려울 경우에는 그 위 상급병원으로 파송 할 수 있다.

 북한의 큰 공장에서는 공장 진료소를 가지고 있어 직장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시.군 단위의 병원이 있다고 합니다. 최희란 교수는 이어 병원의 일과와 교육/자격제도를 소개하였습니다.


“병원 일과는 8시에 출근하여 8시~9시에 아침조회를 합니다. 9시부터 6시까지 진료를 합니다. 오후 6시에서 6시 30분까지는 과별 총회를 합니다. 1시~2시는 점심시간입니다.”

[주간대학]

의학대학

의사, 약제사

의학전문학교

준의사

보건간부학교

준의

→ 구강학부가 없는 곳에서는 통신대학생이나 의학전문학교, 보건간부학교 출신의 인력들이 의학대학을 나온 구강의사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고, 의학전문학교와 보건간부학교에서는 통신대학을 다니면서 보건의료인력으로 대체된다고 합니다. 통신대학교의 1학기는 학교에서는 수업을 받지 않고 과제만 하며, 1년에 2번 등교하고 시험에서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 최희란 교수는 북한과 남한의 진료환경 차이를 언급했습니다. 

이제 북한에서 이런 진료 환경에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북한과 남한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진료 환경은 환자가 오면 접수를 하게 되는데 접수는 환자의 호소에 따라 담당의사의 가정력, 시진, 촉진, 타진에 따라 예비 진단을 합니다. 그리고 확진 진단기과에도 간 후에 그 다음 환자에 대한 처방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남한의 한 의사는 컴퓨터를 치기 시작합니다. 진찰하기 전에 엑스레이, 초음파, 보조 의료로 인한 치료로 진단을 합니다. 그 다음에 엄청나게 많은 처방이 이루어집니다. 북한은 눈으로 귀로 진단을 하는데 남한은 보조 의료로 인한 진료를 합니다. 남한은 70명 이상을 보는 것을 기본 과제로 생각합니다. 이게 참 이상합니다. 북한에서는 적은 인원을 진단하는데 말입니다. 이게 장비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권이종과 아스피린을 기본으로 처방하는데 비해, 한국은 훨씬 더 많은 처방을 합니다. 그리고 환자를 진찰하고나면 전혀 들어보지 못하던 질병을 듣게 됩니다. 특히 해리장애, 성주체성장애는 북한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질병입니다. 그리고 남한분들은 사회생활을 많이 하다보니까 결혼을 늦게 하는데 남한의 고령 신부에게서 나타나는 질병 또한 북한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입니다. 난치병은 절대 못 고치는 병으로 생각하고 발판을 가리고 다녀야 하는데, 남한은 무좀도 6개월만 내복약만 먹으면 말끔히 치료가 되었습니다.

전문용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주관적이고 남한은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진료증이 없어도 대학만 나오면 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진료증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데, 저희는 북한이탈주민으로 와서 다시 공부를 해서 진료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기억세포가 다 마비된 것만 같습니다. 단기간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서 진료증을 받아야 하는데, 몇 개월만 지나면 식량이 끊기게 되는데, 그게 너무 어렵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통일의학센터는 이 모든 사업을 주도하게 될 핵심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남북 의학 교류 협력 경험과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으로 황상익 교수(서울의대 인문의학교실)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제가 발표를 하게 된 것은 서울의대에 재직한 덕과 어깨동무어린이병원 덕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얻었던 교훈을 기억해보니, 어떤 인간관계에서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남북한에 어떤 사업을 하더라고 신뢰가 없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피지기는 전쟁에서만 통용하는 말이 아니라 평화적인 교류와 통합에서도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근사하고 세밀한 계획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지피지기와 역지사지와 신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머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공감할 수 없는 점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제 3세계를 지원하는 것과는 달리 훨씬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쩌면 경제적 지표 차이보다 의식의 차이가 더 클 수 있습니다.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은 2004년 6월 14일에 준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세계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자고 한 일이었는데, 남북관계가 워낙 큰 일이다보니깐 남북한의 일을 주로 했습니다. 남북한의 어린이들이 좋은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키가 같아야 하지 않을까?’ 했었습니다. 남북한의 어린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기위해서는 신체적인 차이부터 줄여나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규모는 작아도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세웠습니다. 병원 설립 때부터 필요한 시설들을 협의를 통해서 마련했습니다. 좌측에는 콩우유 생산기관을 세워 영양을 채워주고 우측에는 병원시설을 마련하였습니다. 어깨동무어린이병원 운영이 잘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하게됐는데요. 정말 미안했습니다. 신뢰에 바탕을 두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보고서만 보고도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신뢰의 환경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장교리인민병원은 평양시에 있는 시골마을인데, 병원이 아니라 진료소가 폐건물수준이라서 남한이 다시 세웠습니다. 어깨동무어린이 병원보다 더 작은 병원이었습니다. 진료소인데도 건물이 북한 내에서는 크기 때문에 인민병원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후 2008년에 평양의학대학병원 어깨동무소아병동을 준공하였는데, 북한에서 먼저 의뢰를 하여서 준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협력과 교류가 다시 재개되어야 통일의학센터의 목적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는 [남북한 의사양성과정, 의학용어의 차이와 공동의학사전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의대 가정의학교실을 담당하는 박상민 교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새터민 의사들은 용어와 남한 병원에서의 재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을 받았다가 후기사회주의의 장마당으로,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까지의 차이로 인한 체제적응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의 남북의학 교육과정 차이는 통일이후의 어려움을 미리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교수는 이런 어려움은 빨리 캐치하고 대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질병이 남한에는 너무 많고, 영어도 너무 많습니다. 따라서 박 교수는 남북 의학용어 정리사업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용어 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한 의학용어를 출판했지만, 주로 남한의 의학용어를 주되게 사용했습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 의사의 검토와 피드백을 함께 받으면서 개선할 것을 제안하며, 영어와 함께 북한 의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라틴어를 함께 쓰는 외래어 포함한 용어집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네 번째로는 [의료와 문화의 통합적 관점에서의 접근 : 정신심리학적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김석주 교수(의학과 담당교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35.2%가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 (남한 주민의 3배)고 응답했으며, 북한이탈주민 미취업 사유 1위는 바로 건강(35.5%)입니다. 질병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정착 7년 후 북한이탈주민 소득의 차이가 2배가 날 정도로 이탈주민의 건강문제는 심각합니다.

북한의 경우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라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예방의학적 방침에 따른 무상치료와 한의학을 강조하는 체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도 의료인의 태도로 친절운동이 강조되는 것처럼, “정성이 깃들면 돌 위에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의사들이 환자들을 자기 육친의 정으로 돌볼 때 고치지 못할 병이란 없습니다. 자본주의 의사들은 환자들의 심장에다 청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돈주머니에 청진합니다.”라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이른바 정성의학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진료와 처방뿐만 아니라 약초 채집, 총화, 교육 등 진료 외 업무도 많으며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함에 따라 의료인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의사가 되기 전에 공산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의과대학에서는 인문사회의학 교육으로 한자의사사회를 배우는 우리와 달리 김부자 로작(북한)을 배우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어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도 한국의 정신장애에는 생물학적/사회심리학적 원인에 따른 우울, 불안, 알코올 중독 등을 모두 포함하는 반면에 북한은 정신병(환청/망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원인 또한 생물학적 원인에서 찾고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에 있어서도 한국은 정신치료로 접근하는 반면에, 북한은 교육과 훈련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데, 이는 이러한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 차이와 함께 장마당 형성 이전과 이후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탈주민 가운데 남성 55.2%, 여성 27.6% (김연희, 2006)이던 알코올 중독 비율은 남성 39.6%, 여성 15.6% (Jeon 2009)를 거쳐 남성 26.0%, 여성 5.4%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2010)까지 낮아졌습니다.

* 비교 : 남한 남성 8.7% 여성 2.5%


2부 순서로 네 분의 발표를 마치고 패널 토론 시간이 있었습니다.

 

패널 토론에 참여하신분들은 (사진의 순서대로) 조중훈 통일부 인도지원과장, 이금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안규리 서울대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교수, 권용진 서울의대 교수, 윤석준 고려의대 교수, 김지은 의사(새터민 한의사), 김정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연구지원센터장이었습니다.

조중훈 과장은 대북의료지원이 3조 2천여만 원이며, 무상지원이 2.5조로 지원률은 18%라면서, 현 정부 출범 이후 다른 분야 지원이 낮아지면서 60%까지 높아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함께 지원의 효과와 지피지기의 필요성(통계 수치의 정확성 파악 부족), 통일 이후의 의료통합문제 대비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윤석준 교수는 이에 대해 주로 국내 민간 NGO, 국제 민간 NGO,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계획보다는 북한 당국의 제한에 따라 지원한 점이 약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가시적인 효과를 받기 위해서는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원을 해야하며, 센터들이 점차 활성화 되고 여러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목표가 될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임근순 위원은 어깨동무병원 준공을 예로 들며, 다양한 사례를 조사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안규리 교수는 최근 중국 체류중인 북한이탈주민들의 건강수준이 위험하고, 생존권이 위협받을 정도라는 점을 알게됐다며 통일의학센터가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주는 데에 도움을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권용진 교수는 이에 대해 현재의 지원문제와 통일 이후의 시스템 구축은 다른 문제이며, 양자를 구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인프라 문제와 사람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서울의대와 평양의대가 개성을 통해 연구센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지은 의사는 통일의학센터에 누구보다 자신이 고맙다고 말하면서, 북한 의료원들의 한국 의사 인정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남쪽의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 의료원 수준이 한국보다 낮은 것과 그러한 제도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이런 부분도 조금씩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수 센터장은 북한이탈주민의 숫자 분석과 친족 문제, 새 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긴 발표와 토론 과정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명규 교수는 그에게 소감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 비서관으로 10년, 통일부에서 4년, 소련과 중공·북한을 왕래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서 ‘우리의 통일에 장래 유익하도록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박정희 대통령 은 이런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어떤 노인과 손자가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50년 뒤에서야 열매를 맺는 나무를 심는 겁니다. 손자가 왜 50년 뒤에서야 열매를 맺는 열매를 심냐고 하니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대답했습니다. 50년 후에야 열매를 맺기 때문에 빨리 심어야 하는 나무라고 말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통일의학센터가 그러한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참 훌륭합니다. 오늘 훌륭한 장래 통일을 생각하는 모임에 참석해서 열심히 필기하고 공부했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만, 끝나는 시간까지 함께 할테니 여러분들과 후배들께서 용기를 잃지 말고 훌륭한 민족, 세계 평화를 구축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 밥을 지어 먹었던 1947년 탈북자입니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입니다. 탈북자 여러분들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