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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야기/정책 돋보기

굳세어라! 한반도의 모든 이산가족

 

 

 

#1 첫만남

 

  내 나이 스물 셋. 이제는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내가 완전한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늘 곁에 머무는 것에 대한 부재나 상실에 대한 기분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특히 항상 살을 맞대고 지내온 가족과의 생이별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TV나 영화 속에서만 보던 이러한 일들에 대한 감정은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 나에게 완전한 공감으로 다가오진 못한다.

  이렇듯 아직 감정적인 성장을 덜 이룬 내게 60년 전,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남으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의 인터뷰 약속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고향에 대한 향수,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恨’과 같은 감정들에 대해 정리가 되지 않는 내가 이 인터뷰를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까?',‘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많은 생각에 머리는 무거웠지만,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께 듣던 옛날 얘기처럼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얘기를 친근하게 해주실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적중이라도 하듯, 처음 뵙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친근하고 다정해 보였다.

 

                                                    한명호 할아버지(74세)▶

 

 

 

 

#2 14살 소년이 기억하는 고향

 

굳세어라 금순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中

 

  할아버지의 연세는 올해로 74세. 14살 어린 소년이 가족과 생이별을 한지 벌써 60년이나 되었다. 강산이 10년에 한 번씩 바뀐다고 하니, 60년이면 강산은 벌써 여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할아버지의 가슴 속 고향의 강산은 60년 전 그때 그대로이다.

  할아버지께서 기억하시는 고향의 마지막 모습은 그때의 14살 소년과 지금의 70노인 모두가 감당하기에는 애절한‘恨’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으로 1950년 12월 15일 함흥역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60년 전 겨울, 함흥역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영영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걸 그때 14살 그 어린 소년은 알고 있었을까. 가족과 헤어진 뒤, 기차를 타고 흥남부두에 도착한 14살 소년의 삶은 부산-거제도-서울 등을 거쳐 고단하게 60년간 지속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 가정을 이루며 건강하고, 부지런히 살았지만 북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물론 아버지와 이별하고 수천 명의 피난인파에 휩쓸려 고향을 떠난 것이 할아버지께서 기억하시는 고향의 마지막 모습이자 가슴을 짓누르는 恨의 고통의 시작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마지막은 행복했던 기억들을 추억으로만 간직한 체 살아야하는 하루하루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고향에서의 하루 중 학창시절은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자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 추억일 것이다. 다니던 중학교의 응원가를 한 구절 한 구절 눈물로 꾹꾹 누르며 부르시는 모습, 그 감정은 모두 노랫가락 속에 그대로 담겨 나의 마음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국 할아버지의 노래에 먼저 반응하는 눈물 때문에 노래는 끝까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노래는 그 눈물을 타고 오래도록 흐를 것이라 믿는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아니, 가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선물이 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이름으로 빼앗기지 않는 그날까지...

 

            

(▲할아버지께서는 응원가의 가사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3. 나의 백골이라도 고향을 다시 밟는다면

 

  사람과 사람은 단 30cm의 거리만으로도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60년간 가슴 속에 묻고 살아 온 모든 감정들이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난 이것이 진정한 공감이라 믿는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통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면, 죽어서라고 고향땅을 꼭 밟고 싶다고 하셨다. 그동안 드라마, 영화를 통해 보던 흥미로운 fiction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60년간이나 지속되어온 가장 잔인하고 애절한 fact였음을 난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가족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서글프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끝으로 인터뷰가 마무리 되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는 반쪽짜리 한반도가 하루빨리 온전한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기다림의 눈물로 넘쳐흐르는 한반도에 따스한 햇살이 비추길 바란다. 조금이나마 그 눈물이 마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