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주장했다. 특히 1824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라틴 및 게르만계 민족의 역사, 1494~1514 (Geschicthe der romaenischen und germanschen Voelker von 1494 bis 1514)』의 서문에 적힌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Wie es eigentlich gewesen)을 다루고자 했다.”는 글귀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는 현대 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그는 역사가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크게 반발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랑케가 주장했던 실증주의 사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주체사상을 확립한 이후부터 역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을 체제 선전 및 선동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랑케가 그토록 경계하던 모습이다. 학문이 정치에 종속되는 구시대적 방식의 연구방법이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연구에서 북한이 추구하는 바는 북한 정치체제의 정당성과 정통성이다. 북한 역사학계는 북한이 한민족의 정통 정부라고 주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본 기사에서는 여러 회에 걸쳐 고조선과 단군릉, 고려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북한의 선전나팔, 역사 (1) 고조선과 단군릉 : http://unikoreablog.tistory.com/6345
북한의 선전나팔, 역사 (2) 고려 :http://unikoreablog.tistory.com/6637
1977년 9월 5일 김일성은 북한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내용에 관한 지침으로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를 발표했다. 이후 북한의 모든 교육 현장에서는 마치 성서와도 같이 사용되고 있다. 이 테제는 서문과 다섯 장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에서는 3대혁명(사상, 기술, 문화)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첫째 장에서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기본 원리"라는 제목으로 인간 본성을 사회주의 교육의 목적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둘째 장에서는 "사회주의 교육의 내용"이라는 제목으로 주체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정치 사상 교육, 선진 과학 지식을 가르치는 기술 교육, 노동과 국방에 이바지하게 하기 위한 체육 교육을 제시한다. 셋째 장에는 교수 방법론을 제시한다. 넷째 장에서는 북한의 교육 체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마지막 장에서는 "교육 기관의 임무와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조선노동당의 임무에 대해 설명한다.
주체 사상이 기반이 된 이 테제에 따르면 사회주의 시민이 갖추어야 할 첫째 덕목은 당성과 노동계급성이다. 북한 인민은 당의 지도와 정책에 순종해야 하며, 정당성에 대한 조그만 의심도 당성을 저하시키며 자유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니 결론은 '의심하지 말라!'이다. 또한 노동계급성은 당성과 병행하는 것으로 이것이 없을 때, 인민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없게 된다. 즉, 주체사상 하의 인민은 자본주의를 증오하고 공산주의를 실천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테제에서 김일성은 인간은 자주와 창조를 지향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체사상은 바로 그 본성에 대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테제 1장은 이러한 본성의 발현은 사회주의 주체사상 교육을 통해 이루어 지며 북한의 교육은 학생에게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 되도록 돕는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겉으로 포장된 자주와 창조라는 가치는 실제로 당성과 노동계급성의 하위에 놓여 상호 모순을 초래한다.
또한 북한 사회에서 역사교육의 목적은 김일성의 교시에 잘 나타난다. <조선력사 2> 교과서 머리말에 '조선 혁명을 잘하려면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즉,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 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토쟁에서 경애하는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 끝없이 충직한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를 양성"하는 것이 역사 교육의 목표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역사교육 목표는 우리나라의 역사 흐름을 발전적인 시각에서 파악하여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자주적 역사에 대한 긍지를 지니며, 새로운 역사 창조에 기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은 목표에서부터 다르다. 북한의 역사 교육은 오로지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반외세 투쟁을 강조하여 국가와 당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것이 그 목적이다.
북한의 역사 교육은 지난 호의 내용과 본 호에서 살펴본 목적에 맞추어 농민 전쟁과 인민들의 투쟁을 중심으로 내용이 선정되어 있다. <조선력사 3,4> 14개 단원 중 10개 단원이 투쟁사 관련 내용이고, 내용 면에서는 생활문화사 봐는 정치경제사에 치중하고 있다. 역사 해석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지배세력의 역할을 배제하고 인민 대중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근현대사 부분으로 넘어오면 김일성 일가를 중심으로 한 지도세력의 역할을 부각시키며 자체 모순을 노출한다. 또한 고구려-고려의 역사를 중심으로 서술하여 고구려의 정통성,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내걸고 있다.
내용의 상당부분에서 인민들은 노예 생활을 하였음을 부각시킨다. 피지배계급이나 일반민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역할로 고정된다. 특정 왕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인민을 억압하는 역할로만 등장한다. 나름의 민중사적 입장을 중시한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기술하는 '정답'은 김일성의 교시와 김정일의 유시이다. 이 교시는 곧 학습의 결론이자 중점이고, 사실에 대한 정답으로서 존재하는 해석이다.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각 시대가 폭동과 투쟁, 반란과 항쟁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시대적 배경과 원인에 대한 설명이 전제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그 다음은 그러한 과정에서 피지배계급으로서 일반민들이 어떻게 혁명을 진행하는지, 어떻게 반봉건 반외세 투쟁을 진행하는지 밝힌 후, 민족적 자긍심을 세우고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짓는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바, 학문에 정답은 없다. 주장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명백한 증거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고 해석을 가하는 것은 학문의 기본 전제이자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정답을 정해놓고 이를 끼워맞추는 행위는 북한이 독재전제국가임을 보여주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남북 통일에 대비한 교육적 준비는 언젠가 다가올 남북 통일을 대비하여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준비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 교육 내용 중 역사 의식이나 민족 의식 형성에 기초가 되는 역사 교육이 북한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북한 교육 내용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과 더불어 북한 교육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에 있어 정치적, 혹은 사회적 압력에 따라 유일한 관점을 강요받고 내용과 해석을 바꾸기 쉬운 과목이 바로 역사이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남북 사이가 얼마나 괴리감이 깊어졌는가, 이질적인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고 이해하고 난 이후에야 통일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논의가 진행될수 있을 것이고, 이후의 교육에 있어 대안을 탐색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본 기사는 북한 「조션력사」 교과서 내용분석 (손용택 등 3명,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서, 1991)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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