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통일부 대학생 기자 강준혁입니다.
2016년 12월 9일(금) 민주평통지역협의회 대구지부 '민주평통 하반기 대구지역 자문위원 연수'의 제목으로 경주 코모도 호텔에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수도권을 비롯해 지방에서도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본 기사의 의의가 있겠습니다.
<공감! 동행! 결집!>
우선, 민주평통자문회의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시기 때문에 간단히, 소개를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민주평통 창설배경]
"자문회의는 시대적 여건에 따라 역할과 위상의 차이가 있어왔으나 평화통일이라는 일관성 있는 대원칙 아래 통일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헌법기관으로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국민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하는 시대적 상황과 국민적 여망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에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설립되었습니다. 특히 다변화하는 주변국의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통일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초당적·범국민적 차원에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민주평통 창설의의]
먼저 대통령의 통일정책 전반에 대한 자문·건의 기능을 적극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남북간 교류협력 사업 강화, 인도적 지원증가, 금강산 육로관광 착수, 철도 · 도로 연결사업 등 급격한 남북간의 상황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탄력적이고 내실있는 자문 · 건의에 힘쓰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통일에 관한 범국민적 합의조성과 범민족적 역량 결집을 위해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국민운동의 중심체'로서의 헌법이 부여한 책무를 감당해 나갑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전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통일의지를 확산해 나가는 범국민적 통일인식 확산 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외에 대표성을 지닌 2만여명의 지도급 인사들을 자문위원으로 참여토록 함으로써 지역과 계층, 정파와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계층을 통일실현에 참여토록 하는 기반과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더불어 자문위원들 중심의 평화통일을 국민속으로 확산하는데 있어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들의 통일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6 민주평화통일 대구지역 자문위원 연수 일정표>
<개회사 진행하는 박규하 대구 부의장>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습니다. 공동결집이 되지못해서 야단법석입니다 우리 민주평통 자문위원님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대동단결 해주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북한은 2차례의 핵실험과 20여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를 떠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적을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이왕 시작한 김에 끝까지 잘해주시고 유종의 미를 거둬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정과 건강히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행사장을 가득 메운 민주평통자문위원들>
본 행사에는 여러 교수님과 내빈 여러분이 참여하셨습니다.
저는 강의 내용이 무겁지 않았던 '통일토크 콘서트' 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및 북한이탈주민들이 패널로 참여하셨는데 개인사를 예를들어, 말씀해주셔서 혹여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과 북한이탈주민 패널>
Q. 지난 9~10월 압록강 인근에서 홍수가 발생한 부분에 대하여 북중 국경 지역 및 압록강 홍수재해가 발생한 곳에 허물고 아파트를 지었다. 현재, 아파트 내부에서는 집이 습기가 많이 찬 상태고 이로 인해, 관절염이 발생하고 있다. 홍수가 난 수혜지역에 국제 적십자사가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최근 혜령 쪽 주민의 말에 의하면 아파트의 10%는 주민이 살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입주민이 없기 때문이다. 집은 속도전으로 지었지만, 생필품 등 밀수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기 때문에 앞으로 탈북할 인원들은 더욱 더 많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강이 얼면 탈북하는 주민들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고달픔의 끝은 탈북이기 때문에..' 또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일부는 탈북 하지 않았을까 추측도 하고 있고 아직까지 시체수습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내년 봄 쯤은 되어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본다. 현재,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홍수가 난 곳에서 대대적으로 좋은 집을 짓고 있다고 홍보했다. 북한 정권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중 한 가지 사업이 두만강 200M 지역 마을을 없애고자 했었지만, 경제적 능력이 안되어서 마을을 없애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홍수로 인해 오히려 북한정권은 더 좋다고 본다. 그 이유는 실제로 탈북자들을 통제하는데 용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만강, 압록강을 거점으로 탈북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산기슭에 아파트를 짓고 북경 통제구역을 만들어 두만강과 압록강 사이 철조망을 치는 작업 시행하고 있다. |
Q. 어떤 방법으로 북한에 계시는 친척들과 서로 연락하는지? 예전에는 OO에서 전화통화를 할려면 무산이라는 까지 산길을 걸어서 2분 3분 목소리 들으려고 갔지만, 일주일 전에는 어머님이 오신것이 아니라, 집에서 음성녹음을 해서 보내오셔서 깜짝 놀랐다. 전에는 폴더폰을 사용했는데 현재는 놀랍게도 삼성 폰을 사용하고 있다. 전화는 신호가 안되기 때문에 음성녹음해서 연락해주시더라. 또한, 사진보낼 수 있지만 사진은 거부다. 왜냐하면 핸드폰이 발각될 위험 때문에.. 예전보다 수단이 좋아져서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돈 같은 경우에는 보내는 방법이 매우 간편해졌다. 사람이 올때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돈을 보내는건 20-30분 폰뱅킹으로 보낼 수 있다. 방법은 브로커가 연락와서 부모님께 전화보내겠다고 하면, 중국에서 상인 번호를 준다. 그 분의 번호를 받아서 계좌를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조선족 친척들을 이용해서 중국에 있는 브로커에게 그쪽에서 '얼마를 찾아라' 이렇게 1.2.3번 릴레이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것이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백만원을 보내면 30%를 수수료를 제하고 70만원 정도가고 안좋은 브로커를 만나면 50%를 떼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는 이유는 보위부에가서 꼬장부릴수도있기 때문에 조금 더 인세티브를 줄 수 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나마 부모님들이 쌀밥이라도 먹고 살수있는 것이다(통계에 따르면 10명중에 절반 이상 지원한다). 정부에서 인도적 지원은 하지 않았지만, 민간차원에서는 한번도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적없다. 내 어머니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송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인도적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Q. 먼저오신분들이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에서 데리고 올 때 안전은 보장 되는지? 또한, 탈북민 가족이 아닌 실향민을 모셔오는 것이 가능한지? 실향민의 아픔이라는 것은 많이 공감하는 바이다. 일단 탈북자 가족이 아니라 북한 당국이 실향민도 감시하고 있다. 주거이동이 원활하지 않는 북한에서 아마 기존에서 살고 있던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만약 모시고 싶다고 결심에 섰다고 하면 국내에 브로커를 써야한다. 북한 내부에 있는 집주소나 신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넘겨주게 되면 돈을 받게 되면 돈을 받고 사람 찾으러 다닌다. 사람을 찾아가지고 맞대면을 하게된다. 전화통화로 어렸을 때 별명같은거나... (국경경비가 삼엄하다). 그런데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뚫고 나올 수 있다. 한 보안원은 두 세번을 하룻밤에 2-3 왔다갔다 한다. 이들이 넘어 갈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한다. 한국까지 온다면 실제 사람을 찾고 한국까지 모셔온다고 한다면 엄청난 액수 부를 것이다. 특히, 실향민은 탈북한사람보다 훨씬 많은 돈을 요구한다. 일단 돈을 먹은 브로커는 안전하게 국경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한국에서 수수료를 30% 많게는 50%는 조폭들도 그만큼 안받는다. 일종의 분단 비용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비용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탈북하는데 브로커 비용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는데, 3-5년전에는 300-500 현재는 1000-2000만원 부르고 있다. 실향민의 경우 국군포로 80명이 한국에 돌아오셨는데, 제일 낮은 비용이 3000 수준 웬만하면 5000만원 1억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오신것이다. 따라서 액수차이가 매우 많다. |
북한이탈주민에게 남한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하는 말이 '천안함 너 왜쐈어' '너 왜 했어?' 이렇게 말하는것이 가장 상처 받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북한이탈주민들도 남한사회 정착하는 것도 힘들고, 받아드리는 '우리 사회'도 힘들어집니다.
주변에 북한이탈주민이 있다면 용기를 볻돋아주는 말을 해드리면 어떨까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아래의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주시면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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