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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CHINA REPORT ①한반도정책


21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꼽으라면 중국의 부상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4대 문명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은 5,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융성한 문명이었습니다. 수많은 왕국과 제국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던 중원, 중원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중앙일보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국가의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입니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중국의 서쪽과 남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있어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동북 지역과 한반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49년 중국이 수립된 이래 중국의 외교관계를 살펴보면 중국에게 있어 한반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또한 현대 중국이 정치적으로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1. 마오쩌둥 시대



1949년 중국이 수립된 이래 마오쩌둥 시기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잘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한국전쟁 정전협정문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3년여의 공방 끝에 1953년 7월 29일 정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당시 교전국의 대표로서 서명했던 군 통수권자는 총 세 명이다.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 최고사령관 김일성, 그리고 중국인민지원군(Chinese People’s Volunteers) 사령관 펑더화이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은“抗美援朝保家衛國(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돕고, 가정을 지키고 국가를 방비하자)”라는 구호를 내걸며 참전하였고, 전쟁으로 인해 중국인민지원군에서 약 36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희생을 기반으로 조중관계는 한미관계만큼이나 돈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사실상 대북 정책과 같았습니다. 즉, 북한에 대해선 군사, 경제적으로 전력을 다해 지원하고 지지했지만 남한에 대해선 전면적 적대정책을 취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세계전략에 관한 자신의 구상에서 한국을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제1중간지대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해놓고도 “친구”, 즉 우방국으로 인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주구” 즉 종속국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2. 덩샤오핑, 장쩌민 시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있어 한국전쟁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바로 한중수교였습니다. 불과 40년 전만 하더라도 적대국으로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두 국가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중수교가 결실을 맺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1976년 이후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대 당시 정책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덩샤오핑 시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삼비삼불원(三非三不願, 세 가지를 반대하고, 세 가지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였습니다. “三非”는 한반도 비핵화, 남북한 간 비전쟁, 북한정권의 비붕괴이고, “三不願”은 한반도가 미국과 밀착하는 것, 한반도가 중국과 경쟁관계에 들어가는 것, 남북한이 민족주의로 뭉치는 것 등 세 가지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국내적으로 개혁정책을, 대외적으로 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한국과의 교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장쩌민 시대에 들어서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중국의 외교방침으로 자리잡은 자주독립 원칙과 평화공존 5원칙을 중국 대외관계의 목표로 계승하였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중수교가 성사되었습니다. 이처럼 변화된 한중관계로 인해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도 중요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한반도 및 북한에 대한 외교방침은 바뀌지 않았고, 한반도에 대해서는 안정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북한과는 기존 혈맹관계를 유지하는 등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한과는 기존의 선린우호관계에서 협력동반자관계로 외교관계의 등급을 올려 경제교류의 확대를 지속하기로 했습니다.


3. 후진타오, 시진핑 시대



 1990년대 장쩌민 주석은 “비동맹, 비대항, 비적대시”원칙을 제시하면서 신형 대국관계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후진타오 시대였던 2010년부터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고, 2013년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은 “적극적 행동을 통해 함께 신형대국관계 건설을 추진”할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신형대국관계는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전제하에서 이미 부상한 중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인정하고, 상호간의 핵심이익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상호 존중을 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합니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이 제시된 시기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시진핑 시기의 외교는 후진타오 시기 발전도상국이라는 자아정체성에서 벗어나 점차 강대국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 세계, 지역, 한반도 전략을 재구성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신형대국관계를 제시한 이후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은 비군사적 영역에 있어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포괄적 정책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미중 간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질 것임을 시사합니다. 



 신형대국관계라는 원칙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를 중국의 핵심 이익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1월 시진핑 주석은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이 회담한 자리에서 대북제재와 관련된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즉, 시 주석이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핵심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도 중국의 의견을 경청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시진핑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3원칙을 고수하면서 북핵문제 해법에 대해서는 미국과는 온도차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CHINA REPORT ②일대일로"로 이어집니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