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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로마의 개선문을 바라보며 문득 생긴 의문점!

안녕하세요! 밀라노에 있는 9기 대학생기자단 선정안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 로마에 다녀왔습니다!

로마는 여행자에게 참 좋은 도시랍니다. 다양하고 유명한 관광지가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끈 건 로마의 개선문들이었습니다.


포로로마노에서 만난 개선문

콜로세움에서 만난 개선문


로마 뿐만이 아니지요. 여행을 하다 보면 유럽 각지에서 정말 많은 개선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문득 개선문들을 바라보며, 개선문이 세워지게 된 계기와 역사가 궁금해졌답니다.

 

1. 개선문이란

개선문 (triumphal arch)

개선문은 개인이나 국민이 이룩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대문 형식의 건조물

 

2. 개선문의 역사 

고대 로마에 역사상 첫 개선문이 세워졌으며, 본격적인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제정 로마의 초기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근대에 국가주의가 대두되자, 유럽 여러 곳에서 많은 개선문이 세워집니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과 카르셀 개선문, 도리스식 원주를 배열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등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파리의 카르셀 개선문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3.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선문,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과 카르셀 개선문은 모두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나폴레옹의 명령의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특히 개선문 건설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로마의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보고 감탄했으며 이를 파리에 그대로 옮기려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본형을 그대로 본떠 새로 설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1808년에 그렇게 완공된 카르셀 개선문.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작게 만들어진 탓에 나폴레옹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대신 1836년, 완공되는 데에만 30년이 걸린 두 번째 개선문인 에투알 개선문이 공개됩니다. 비록 나폴레옹이 1821년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역사는 이를 실로 거대하고 위대한 건축물로 평가합니다. 에투알 개선문은 높이 약 50m, 너비 약 45m로 외부에는 10개의 부조가 조각돼 있습니다. 가히 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이라 알려질만 합니다. 크기만 과거 로마제국 시절의 개선문에 비해 2배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4. 개선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세계의 대부분 나라에선 민족주의의 열풍이 불었고 집단에 의한 개인의 희생이 요구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는 한편 전체주의의 확산을 위해 이런 류의 개선문이 많은 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해리 스탠버그, <파시즘>


개선문은 민족주의의 산물입니다. 프랑스의 예를 들어볼까요?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에 세워져 나폴레옹의 전쟁 승리를 축하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에서 명멸한 젊은 영혼들을 모셨습니다. 파리 개선문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조국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다는 희생정신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개선문을 크게 짓는 것이야말로 국가주의, 민족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5. 그래서 북한은...

개선문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저는 자연스럽게 북한이 떠올랐습니다. 전체주의 이념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북한 아닐까요. 아니나 다를까!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은 사실 북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평양의 개선문

평양의 개선문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과 그의 평양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김일성 70회 생일에 맞춰 세워졌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개선문이 그가 살아온 70년 하루하루를 기리는 벽돌 2만5500개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높이는 무려 약 60m, 폭은 50m. 그리고 개선문 2층에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