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북한 1964.10.9 신금단 부녀 도쿄 상봉,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 사건'
신금단은 1960년대 당시 북한의 육상 선수였습니다. 6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400m, 800m 1위를 차지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가네포 대회에서는 비공인 세계기록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신금단 선수는 이런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도쿄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인도네시아의 가네포 대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신금단 선수의 선수 자격을 박탈시킵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도쿄까지 온 북한 정부는 북한 선수단에게 철수를 선언합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북한으로 돌아갈 짐을 챙기던 신금단 선수 귀에 믿지 못할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동무 아바이가 왔으니 따라오시오..."
아버지 신문준씨는 신문을 통해 1951년 1.4후퇴 때 헤어져 13년간 행방을 몰랐던 딸의 올림픽 출전 소식을 접했고 서울에서 한걸음에 도쿄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13년 만에 이루어진 이들의 만남은 고작 7분간이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 신문준 씨는 딸이 떠나는 기차역으로 달려가 3분간의 포옹을 끝으로 부녀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과 남측의 아버지 신문준씨의 상봉은 남한과 북한, 당국 간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이루어진 비공식적 만남으로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이었습니다.
신금단 선수의 "아바이!"라는 외침은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고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가요 '눈물의금단아', 영화 '내딸금단아' 등 이산가족의 아픔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당국의 정부 차원에서의 이산가족 논의는 71년 적십자회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고 시간이 흘러 85년 9월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교환사업이 처음이었습니다.
신금단 선수의 아버지 신문준 씨는 1983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결국 딸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현재도 이들과 같은 아픔을 가진 이산가족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통일이 되어 이산가족을 비롯해 남북한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웃는 날을 기대합니다. 제9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신동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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