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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연변, 어디까지 가봤니? ④유일한 통일인(統一人), 김진경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연변 지역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통일에 관심을 갖고 여러 학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함께했습니다. 북중접경지역을 답사하는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도, 연변 지역을 중점적으로 답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5회에 걸쳐 연변지역 특집기획, "연변, 어디까지 가봤니?"를 연재합니다.

[기획특집] 연변, 어디까지 가봤니?

 ①북중러 접경지역, 훈춘 (클릭!)

 ②한국대학생-연변대학생 간담회 (클릭!)

 ③백두산(북파) (클릭!)

 ④유일한 통일인(統一人), 김진경

 ⑤만주침탈의 중심, 간도총영사관 (클릭!)


한 한국인이 중국에 대학교를 설립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그리고, 그 한국인이 북한에도 대학교를 설립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셨나요?


연변은 물론 동북3성, 중국 전역에서 유명한 대학 중에는 '연변대학과학기술대학원(이하 연변과기대)'이 있습니다. 연변과기대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에 최초의 중외(中外) 합작 대학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허허벌판이었던 길림성 연길시(연변의 중심) 한복판에 착공을 시작한 연변과기대는 중국 중앙당국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연변과기대의 설립자이자 현 총장은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하 평양과기대)의 총장직도 겸하고 있습니다. 국경과 이념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스스로를 '유일하게 통일된 사람'이자 '사랑주의자'라고 소개하는 김진경 총장입니다.


김진경 연변과기대/평양과기대 총장


김진경 총장은 1935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전후 숭실대학교와 영국 클립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의 유학시절 독일 통일을 지켜보면서 통일을 위해서 대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부산 고신대학교 대학부를 설립했는데,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기업가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김진경 총장은 한중수교가 아직 체결되지 않았던 80년대에 미국 시민권자인 박사이자 사업가(뉴요커 주식회사 대표)로 중국 학술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를 계기로 조선족 자치주에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는 곧장 길림성 정부와 협상에 들어갔고, 1988년에 중국 당국과 협상이 시작되어 1년만에 승인을 받았으며, 3년 뒤인 1992년 9월 연변과기대는 문을 열었습니다. 연변과기대는 중국 최초의 중외 합작 대학으로 중국 중앙정부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연변과기대 입구

연변과기대 본관 입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있고, 위쪽에는 미국, 북한, 중국, 한국 등 관련 국가 국기가 걸려있는 낯선(?) 모습을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연변과기대에 대해 설명하는 김진경 총장. 뒤편에 등소평이 적어준 글귀가 적혀 있다.


92년 설립된 연변과기대는 최초 연변과학기술대학이라는 이름의 독립적 대학이었으나, 1996년 연변대학과 통합되었으나 내부 운영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연변과기대는 생물, 컴퓨터, 첨단사업, 자동차 등 과학분야, 외국어분야, 건축분야 등 총 8개 학부 14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생은 약 2,000여 명, 교수 및 교직원은 400여 명입니다.


연변과기대 전경 모형

연변대학교를 가로지르는 실내복도 내부 모습


연변과기대의 한가지 특징 중 하나는 학교를 크게 가로지르는 실내 복도입니다. 위의 전경 모형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연변과기대를 크게 가로지르는 긴 복도가 있는데, 이는 김진경 총장이 겨울에 학생들이 만주의 칼바람 때문에 공부하기 힘들지 않도록 지은 것입니다. 또한 이 복도는 교수 숙소와 바로 연결되는데, 연변과기대는 학생들이 교수 숙소로 자주 찾아가 학업, 인생 등에 대한 고민을 자주 나누고,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손수 끼니를 챙겨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총장실에서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진경 총장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만나 평양과기대 준공 등을 이야기했던 김진경 총장

김진경 총장이 자신의 미국 시민증, 중국 시민증, 북한 시민증, 한국 시민증을 소개해주고 있다.


연변과기대가 동북3성 지역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유명해지자, 북한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북한은 2001년 방문단을 꾸려 연변과기대를 답사했으며, 답사 후에는 김진경 총장 등에 북한에도 같은 대학을 세워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대학을 설립할 부지에 있던 군사기지도 옮길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김진경 총장은 남측의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과 북측의 교육성 사이를 오가며 마침내 대학 설립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평양과기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개교가 미뤄지다 2009년 마침내 개교했으며, 김진경 총장은 평양과기대 초대총장으로 임명됐습니다. 평양과기대는 2명의 총장과 4명의 부총장이 있는데, 2명의 총장 중 실질적인 대학 운영을 담당하는 것은 김진경 총장입니다. 평양과기대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함흥공업대학 등 북한의 유명한 대학교에 진학한 대학생 중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다시 선발하여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평양과기대는 2014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관련기사: "남북의 첫 합작 대학교인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첫 졸업생을 배출하다"). 한편 평양과기대는 2013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방문과, 한국계 미국인인 성킴이 쓴 <평양의 영어선생님>으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관련기사: "북한 특권층 자제들을 가르쳤던 "평양의 영어 선생님" 이야기").


학생들에게 연변과기대 및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진경 총장

연변, 평양과기대 홍보자료집과 김진경 총장이 청와대, 백두포럼, 원아시아클럽, 미국 한인회 등에서 한 강연 원고

평양과기대 준공식 및 공동운영총장 임명식에서 총장임명 후 발언하는 김진경 총장

김진경 총장은 학생들에게 독일 통일에 있어서 대학과 학자의 역할이 무척 중요했다며,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를 설립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핵문제가 무척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유럽연합의 사례와 같이 동아시아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분명히 통일국가에서 일하게 될 것이므로 당당하게 말하는 김진경 총장은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김진경 총장은 학생들과 헤어지며 활기차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경과 이념을 아우르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사랑주의자' 김진경 총장, 그의 삶과 사고가 품고 있는 함의는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아갈 방향에 큰 이정표로 우뚝 솟아있습니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