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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구동독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Ostalgie)현상의 의미와 대책

오스탈기 현상


지금의 '독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코카 콜라 혹은 환타를 마시며 벤츠나 BMW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과거 동독의 사람들도 과연 그랬을까요? 사회주의의 나라에서 지금처럼 화려한 독일이 가능했을까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과 다른 독일.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다 Ostalgie 현상 

동독을 뜻하는 'Ost(오스트)' 와 가족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 향수를 뜻하는 'Nostalgie(노스탈기)' 가 결합된 말로, '동쪽을 그리워 하다' 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Ostalgie'. 그래서'Ostalgie' 는 말 그대로 ‘동쪽을 그리워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사전적 정의는 동독 출신 사람들의 과거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그리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사회주의 시스템은 동독, 소련뿐만 아니라 폴란드를 포함해서 모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말하지만, 보통 독일에서는‘동독을 그리워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됩니다.

동독은 사회주의 특유의 경제체제 때문에 생필품은 물론 치약마저 쉽게 구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가지고 있는 대신에 월급은 많지 않았으며, 기본적인 의료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상품의 품질 또한 형편없는 나라였습니다. 심지어 자동차를 주문하여도 양도 받기까지 20년이 걸리는 나라였습니다.


오스탈기 현상△칙칙한 건물 색상, 정비가 미흡한 도로, 획일화 된 자동차들 등 누가봐도 사회주의 국가다.


  왜 Ostalgie 현상이 나타났을까 

런데 어떻게 동독 사람들은 통일이 되고나서 삶이 풍족해졌음에도 구 동독을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1989년 11월, 최초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은 사실상 통일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서독과 동독 사람들은 통일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민족으로, 하나의 국가로 세상에 당당히 통일 독일을 선포할 날만을 고대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와 동시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서서히 동독 사람들이 구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떠나 그냥 가족과 함께 평화롭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했던 것입니다. 여러가지 문제의 대표적인 예로 동독에서는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 독일은 그렇지 않아 정리 해고를 당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거리로 나앉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구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차별하기 시작했고, 동독인 스스로도 '2등 국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탈기 현상△동독의 상징인 에리히 호네커 동독 수상과 자동차 '트라반트'


그리고 동독인들은 점차 구 동독을 더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하게 빛나는 겉모습 속에 각박한 경쟁사회가 숨어있는 자본주의보다 차라리 개성도 없고 흑백으로만 가득찼던 세상이지만 경쟁이 없으며, 가족과 친구들의 정이 두터웠던 동독이 그리웠을 수 있습니다.


  동독인들의 향수병을 위로하는 다양한 노력을 시작하다

그러자 서독 정부는 동독인들을 배려하는 여러가지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했고, 또한 동독인들의 향수병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역사를 재인식시키기 위해 '동독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여러 기업들은 동독인들을 위해 동독인들이 즐겨쓰던 제품들을 부활시켰으며, 동독 때부터 있던 국영회사를 민영회사로 전환시켜 세계적인 기업으로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오스탈기 현상△베를린 시내에 위치한 동독 박물관.

오스탈기 현상△박물관 내부에 재현해 놓은 동독의 일반적인 거실 모습. 이제는 다신 볼 수 없는 탓에 가끔 노부부가 와서 "그땐 그랬지.."라며 서로를 회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스탈기의 흔적은 현재 통일 된지 24년이 지난 지금에도 독일 도처에 남아있습니다. 2003년에 독일의 방송 채널인 RTL 에서는 옛 동독 지역의 추억의 생활상을 방영하는 'DDR 쇼(DDR SHOW)' 가 방영되었습니다. 쇼의 내용은 옛 동독 출신의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당시 동독의 자료화면을 함께 보며 그 시절을 회상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DDR SHOW△DDR SHOW의 한 장면

 

또한 '굿바이 레닌(Goodbye, Lenin!)(2003)'과 같이 동독 가정의 정을 그려낸 영화의 개봉으로 오스탈기로 인한 향수가 더욱 더 깊어졌으며,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베를린 곳곳에 재고가 남은 구 동독 제품을 싼 값에 사들여 다시 파는 '인터샵 2000(INTERSHOP 2000)'이나 '오스트프로두크데(Ostprodukte)' 같은 곳도 생겼습니다.


트라반트 자동차△동독의 대표적인 차량 '트라반트' 귀여운 외모와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인해 주문하고 10년 이상은 기다려야 양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특징이었던 자동차.

 

당연히 제품은 심심치 않게 팔리며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구 동독인들의 오스탈기는 서독인들과 분단을 겪지 못한 세대에까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동독 박물관은 항상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독일에서는 구 동독인들의 향수병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동독의 인기있었던 상품을 본따 만든 제품(혹은 당시의 제품)을 재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부활한 'Vita Cola(비타콜라)'의 인기

여기서 인기 동독 상품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Vita Cola'(이하 비타 콜라)입니다. '비타 콜라'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자본주의에 맞섰던 '사회주의 콜라'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래서 동독 주민들에게 필수음료이기도 했죠. 사실 '비타 콜라'는 서구권의 문화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1958년부터 동독 사회주의 정부가 실시한 계획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비타 콜라'는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비타민이 들어간 것을 강조했고 처음에는 '과일과 약초의 향이 들어간 탄산음료'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동독 정부는 '비타 콜라'를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를 강조하며 선전했습니다. 결국 맛도 좋고 품질도 괜찮았던 비타 콜라는 곧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가장 인기가 좋았을 때는 동독 지역에 200개의 공장이 존재했습니다. 콜라와 비슷하게 제조법은 아직도 비밀이 부쳐져 있습니다.


비타 콜라△현재 생산되는 '비타 콜라'의 모습. 상표 모양은 동독 시절과 똑같다.

 

이러한 '비타 콜라'는 동독 사회주의 체재가 무너진 후, 서독 음료회사에 흡수되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탈기의 효과로 1994년 '튀링어 발트쿠벨(Thüringer Waldquell)'이라는 회사가 '비타 콜라'를 부활시켰고, 동독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펩시 콜라'를 누르는 음료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서독을 제외하고 동독 지역에서나 베를린 지역에서는 '비타 콜라'를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인기 또한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타 콜라'가 빠르게 시장의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었을까요? '비타 콜라'가 동독 지역에서만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의 이유는 바로 동독인들의 구 사회주의 동독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동독 사람들의 동독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독일 사람들은 아주 잘 이용했습니다.


  Ostalgie로 인해 재탄생한 제품들 

'비타 콜라' 외에도 오스탈기로 인해 재탄생한 수도 없이 많은 제품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서독엔 우리가 잘 아는 '누텔라(Nutella)' 초콜릿 잼이 있다면, 동독에는 '누도씨(Nudossi)' 초콜릿 잼이 있습니다.


누텔라△독일산 마약 초콜렛 잼. 누텔라

누도씨△하지만 누도씨 또한 동독에서 만만치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제 핸드크림인 '플로레나(Florena)' 또한 동독의 핸드크림 제품이었던 것을 아셨나요?

플로레나(Florena)△유명한 독일제 플로레나 핸드 크림플로레나(Florena)△동독 시절에는 이런 모습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나라인 동독, 그리고 독일 곳곳에 남아 있는 동독의 흔적들. 그것은 살아있는 역사이자 현대사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예술 작품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추억하고, 또 그 과거를 잘 이용하여 이익까지 창출해내고, 역사를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독일의 발상은 참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서, 독일의 경우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나라에 이것을 적용시키면 어떨까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훗날 대한민국도 이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통일이 아직 오지 않았어도 지금도 현재 남한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탈북민의 북녘 땅에 대한 '향수병'은 계속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들에게는 남한이 좋다, 북한이 좋다를 떠나서 북한은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자 추억의 공간입니다. 또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포함한 모든 이산가족이 북녘땅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썼던 물건이나 공간을 추억했을 것 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도 통일이 된다면, 북한은 남한에 흡수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북한이 사라져 ‘통일 한국’ 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하여도 북한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추억까지도 사라진 북한과 함께 묻어야 할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그 추억을 다시 부활시켜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서로 분단된 세월이 너무나도 길고, 교류도 거의 없었기에 문화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통일은 서로가 화합하여 이루어나가는 것이고 남한이 주도적으로 통일을 하는 것이지, 북한을 일방적으로 흡수하거나 합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가 생긴 북한 사람들을 배려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 번째 또 그 과정에서 새로 탄생한 '통일 한국'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여러 있을 것 입니다독일은 '오스탈기'를 통해 여러가지 동독의 추억들을 부활시켰고, 자연스럽게 독일 사회에 접목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 '추억거리'들은 독일에 경제적, 역사적, 문화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독일과 비슷한 문제점이 발생했을때, 이렇게 대처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통일을 경험한 독일이 여러가지 성과를 내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통일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 후 통일편익을 어떻게 최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활발한 연구는 필수입니다. 또한 연구 뿐만 아니라 이런 것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개성공단 재개의 노력과 북한지역 전통 및 현대 산업 연구 또한 필요합니다.

탄산단물△북한의 '비타 콜라'가 될 수 있을까?


북한의 전통산업을 남한의 기술과 결합하여 발전시키려고 준비하는 것은 앞으로 통일경제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북한의 브랜드라고, 북한의 물품이라고 무조건 흡수시키거나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에도 북한의 '비타 콜라' 그리고 북한의 '누도씨' 초콜렛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브랜드를 살려두어 주민들에게 맞게 현대화하려는 노력의 효과는 북한인들의 향수병을 완화시켜서 북한과의 흡수 통일에 대한 사회적 문제나 마찰을 쉽게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중 괜찮은 브랜드는 더욱 발전시켜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면 국가 경쟁력까지 상승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동독과 서독△동독과 서독의 상징들


우리나라도 남한과 북한이 통일이 되는 날이 오면, 지금의 독일처럼 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베를린에 갈 기회가 생기면 베를린 장벽 앞에서 우리나라의 통일을 생각하면서 '비타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켜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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