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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한국전쟁 직후 북한의 모습, 크리스 마커와 꼬레안들

크리스 마커, Koreans-Untitled, 1957 (사진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프랑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크리스 마커의 1957년 북한 방문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중심으로 <크리스 마커와 꼬레안들(Chris Marker and  the Coréens, 기간 : 2013. 4. 5 - 2013. 6. 11)>이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를 준비하던 크리스 마커가 타계한 후, 그의 작업을 강홍구, 노재운, 정윤석, 황세준과 같은 한국작가 네 명의 시각으로 살펴 본 작품들도 같이 전시되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2013년 봄부터 제공한 본 전시회는 크리스 마커의 역사적인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다. 크리스 마커가 죽기 직전에 직접 기획한 이 전시는, 그가 본 1957년의 북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사진들과 그가 선별한 영화들 또한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크리스 마커와 꼬레안들 전시장 내부

 

   한국 전쟁이 끝나고 4년 후, 당시 기자였던 크리스 마커는 북한에 초청된 프랑스 취재팀에 합류한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 후 건설기의 북한을 목격하며, 여성 중심의 일련의 인물 사진과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 후에도 그는 남과 북의 국경을 오가며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영화 에세이를 제작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노재운, 방파제 - 크리스 마커의 영화 <방파제 La Jetée>의 영향을 받아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재정의하려고 시도

 

   특히 크리스 마커는 영화, 비디오, CD-Rom, 게임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구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통해 이미지와 기억의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사회적 의미를 철학적으로 고민해 본 흔적이 작품마다 드러난다. 또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서 언어가 영화나 소리, 비디오와 합쳐지며 관객들의 기억을 자극하며 우리에게 다양한 각도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크리스 마커, 한국인들 Coréens, 1957 (사진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

 

   이 전시의 주된 사진 작품들인 '한국인들'에는 크리스 마커가 그만의 시선으로 롤라이 이안 리플렉스(6*6) 카메라로 담아 낸 1957년 전쟁 직후 평양의 다양한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그는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정치적으로 조직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평양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러면서 당시 평양의 인간에서 문화, 사회, 환경에 걸쳐 시선을 이동시키며 찍은 사진들은 지금까지도 국내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다.

 

크리스 마커, 승객들 Passengers, 2008-2010: 파리 지하철의 승객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대 도시인이 만든 벽이나 경계선을 드러내는 작품

 

크리스 마커, 정오의 올빼미 서곡 - 텅 빈 사람들, 2005: T.S.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로 시작하며, 세계 여러 전쟁들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작품

   위와 같이 '한국인들' 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을 표현한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시회장에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자본주의나 민주주의가 내재한 한계점을 드러냄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의 볼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처럼 <크리스 마커와 꼬레안들>은 우리가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한국전쟁 직후 북한의 모습을 포함한 내실있는  전시로,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시간과 죽음,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작가 소개(자료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 크리스 마커

   크리스 마커는 192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7년 잡지 Esprit를 시작으로 DOC, Petite Planète에 평론과 에세이를 기고하고 편집자로 활동하며 소설, 희곡, 에세이집을 출판했다. 글 쓰는 작업에 한창이던 중 영화감독으로 방향을 바꾼 그는 이후 공동 연출작업을 비롯해 수많은 장편,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독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영화뿐 아니라 사진, 영상 설치미술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방파제 La Jetée> (1962), <태양없이 San Soleil> (1982), <2084> (1984) 등 다수의 영화와 영상, 사진 작업을 남겼다. 2012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강홍구

   크리스 마커의 <한국인들 Coréennes>(북녘 사람들로 번역되기도 함)을 보고 남녘 사람들을 떠올린 강홍구 작가는 버려진 사진들을 주워 무작위로 배치한 다음 재촬영했다. 작가는, 크리스 마커가 찍은 북한 사람들의 사진을 우리이자 동시에 타자라고 느낀 상태를 그레고리 베이트슨을 빌어 관점의 이중구속 Double Bind’ 상태로 해석한다.

  ▣ 노재운

   노재운 작가에게 크리스 마커의 영화 <방파제 La Jetée>는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재정의한 모험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이 영화를 영화의 발명과 연결시켜, 영화란 제작, 실험, 확장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명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 정윤석

   크리스 마커의 작품을 통해 정윤석 작가는 한국의 90년대를 추억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의 90년대와 그 상징과도 같은 백화점 중 하나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필연적 징후로 느낀 작가는 그 시대의 폭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 황세준 

   황세준 작가는 크리스 마커의 작업이 아름다움이야말로 정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그의 작업에 대한 패로마주*를 선보인다. 사진과 영상, 텍스트, 목소리가 지나간 시간의 재현이라면, 그림은 그려지는 현재이고 스스로에게만 속한 매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그림 안에 존재하는 초현실적인 현실, 혹은 현실의 초현실성에 다가가려 시도한다. (*paro-homage: 패러디와 오마쥬의 결합을 강조하는 황세준 작가의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