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에 다니는 탈북민(북한이탈주민. 이하 ‘탈북민’) A씨는 새 학기 첫 날 수업 시간이면 종종 불쾌한 경험을 하곤 한다. 그를 외국인으로 오인하는 학생들과 교수님 때문이다. 출석부에 적혀 있는 A씨의 이름 옆에는 외국인 표시가 되어 있다. 그들이 오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외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A씨는 자신이 남한 사회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불쾌감이나 내적 갈등을 다른 남한 학생들 앞에서 드러낼 수도 없다. 자신은 남한 학생들과 수시나 정시로 경쟁해서는 이 학교에 들어올 수 없고, 더더군다나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정원 외로 입학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만을 터뜨렸다가는 남한 사회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며 비난을 살지도 모른다. A씨로서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속으로 삭이며 조용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위의 사례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다니는 탈북민 대학생 뿐 아니라 탈북민 대학생의 다수가 겪고 있는 일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탈북민을 외국인으로 표기한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전국에서 탈북민 학생을 가장 많이 선발하는 학교라는 것이다. 대학교가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그리고 이들에게 교육의 혜택을 줘야만 장차 통일 한국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탈북민을 선발하면서도 이들을 ‘외국인’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행태는 비단, 한국외국어대학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울 주요 10개 대학교 중 반 수가 탈북민을 재외국민으로 분류해 놓았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탈북민 학생들은 남한의 학생들이 응시하는 수시 전형이나 정시 전형이 아닌 ‘외국인 및 재외국민 전형’을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해 대학교 측에서는, 탈북민은 대한민국의 초등, 중등, 고등학교의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않았기에 편의상 ‘외국인 및 재외국민 전형’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탈북민은 외국인도 재외국민도 아니다. ‘북한이탈주민’, ‘탈북민’이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이하 "북한"이라 한다)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을 말한다(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 2조).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들에 대한 의료,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요컨대 탈북민(북한이탈주민)은 대한민국의 명백한 국민인 것이다.
한민족, 더더군다나 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의 국민인 탈북민을 단지 편의상의 이유로 ‘외국인’이나 ‘재외국민’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이 지향하고 있는 국민 통합의 이념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사회의 분열 양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대학이 탈북민을 분류하는 방식은 자칫 국민 차별, 분열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행의 대학교의 제도는 탈북민으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비주류적 소수자, 즉 정치적 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게 만든다. 남한 사람들 역시 대학교가 탈북민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이들을 접하게 되므로, 현행의 대학교의 제도는 탈북민과 남한 사회와의 간극을 더욱 벌리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세대학교는 탈북민은 물론 남한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연세대학교는 탈북민을 입학 사정관제 중 [북한이탈주민 트랙]이라는 이름으로 수시 전형에 포함시켜 놓았다. 탈북민 학생들은 통상적인 수시 전형이나 정시 전형으로 입학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연세대학교는 비교적 선발기준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입학 사정관제에 [북한이탈주민 트랙]을 만든 것이다. 이 전형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 트랙도 포함되어 있는 등 복지 지향적인 선발 제도로서, 이는 국가가 탈북민을 대하는 방식과도 맥이 닿는다. 다시 말해, 탈북민 대학생을 뽑는 이유가 복지와 통합을 지향하는 국가의 이념 때문이듯이 연세대학교도 복지와 통합을 추구하며 탈북민을 포용할 수 있는 선발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탈북민은 외국인이 아니다. 이들은 북한을 등진 사람들이며 통일이 되기 전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이들을 국민으로서 받아들였으며, 그렇기에 다양한 복지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대학교가 정원외로 탈북민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가 행정상의 편의를 이유로, 탈북민을 [외국인 및 재외국민] 카테고리에 분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행태이다. 굳이 연세대학교와 같은 방식으로 탈북민을 선발할 필요는 없겠지만, 대학교들은 탈북민을 외국인으로 분류하지 않고도 이들을 선발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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