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옌볜)에 거주하고 있는 재중동포에게 물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축구시합을 하면 누굴 응원하시겠습니까?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다들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계시나요?
재중동포들이 쓰는 말투가 북한 말씨와도 비슷하고, 재중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연변이 북한과 지리상 가까우니까 북한을 더 응원하지 않을까? 한류는 이미 연변에서 90년대에도 있었고, 현재 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니 한국을 더 가깝게 생각하여 한국을 응원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는 데요.
제가 연변에서 들었던 대답은,
“형제끼리 다른 팀으로 축구 시합을 한다니, 속상해서 전기를 끊어버리고 일찍 잔다.” 였습니다.
분단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는 사람들
대답이 남한 아니면 북한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를 놀라게 했던 대답이었습니다. 통일에 관심이 많은 저이지만 분단 된 반쪽 짜리 땅에 살며 남한 아니면 북한 이라는 분단의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재중동포들은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에 분단 이전에 대거 이주하여 터를 잡았기 때문에 남한과 북한을 모두 같은 형제로 생각하며 한반도 안에 팽팽하게 존재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긴장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음을 연변에서 만났던 재중동포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한국과 북한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한반도 양쪽에 나뉘어 살고 있는 우리들은 반쪽 땅은 서로 방문할 수 없지요.
저는 작년에 흥사단이 주최한 '동북아 친선문화제'를 통해서 중국 동북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대학생, 고등학생과 중국에 살고 있는 재중동포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함께 했는데요, 일정의 끝머리에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옌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일정을 통해 단동(단둥), 백두산, 도문(투먼) 등 북중 접경지대에도 다녀왔지만 이미 많은 기사들이 올라와있으니 굳이 여기에 대해서 쓰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오늘 기사를 통해 연길과 연변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처럼 통일을 꿈꾸는 제가 이 곳에서 한반도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를 품은 이국 땅, 연변
지도에서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재중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입니다. 빨간점이 연변 자치주의 주도, 중심도시인 연길(옌지)입니다.
<연길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국어 간판>
연변 안에서는 간판이 중국어와 조선, 한국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연변 자치주의 대표 도시인 연길시에는 북한 음식점, 한복 대여점, 한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패션 상품을 파는 한국 의류 백화점도 볼 수 있고, 연길시의 남대문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시장에 가면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북한산 명태 등 북한에서 온 식료품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연길시 전경>
<연길시 풍경>
<연길시 풍경>
<중국어를 제외하면 한국의 여느 피부 관리실 광고와 흡사한 연길의 한 피부 관리실 광고>
<공원에서 화투를 치고 있는 연길 시민들>
저희 단체는 연길 도심의 한 호텔에 묵었는데요, 호텔 텔레비전에는 한국의 방송들인 MBC, KBS, SBS, EBS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영방송인 조선중앙TV, 연변의 자체 방송인 연변 TV와 중국 공영방송 CCTV 채널까지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 쇼파에 편하게 앉아서 한 텔레비전으로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이 모든 방송을 볼 수 있다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곳은 분단된 한반도와 떨어져있으면서도 이국땅에서 한반도를 담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연길의 호텔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던 북한의 공영방송 조선중앙TV>
다음 날 저녁에 저희는 연변 예술 대학에 초대 되어 학생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물놀이, 남도 민요, 판소리 뿐 아니라 북한 지역의 전통 춤, 중국의 전통 음악, 그리고 작년 여름 최신 K-POP이었던 UV의 압구정 날라리, 2NE1의 춤도 한 무대에서 펼쳐져 신기했습니다. 남도 민요 뿐만 아니라 북한 지역의 전통 춤을 감상하며, 우리는 분단으로 전통 예술도 반쪽짜리만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연변의 학생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통일이 되면 예술 학교 학생들도 배울 것이 더 풍부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연변 예술대학의 공연-사물놀이>
<연변 예술대학의 공연-남도 민요>
<연변 예술대학의 공연-북한 지역의 전통 춤>
<연변 예술대학 공연- 최신 K-POP 춤>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영화 <두만강>을 보셨나요? 두만강을 접하고 있는 재중동포가 많이 사는 마을을 배경으로 재중동포를 둘러싼 북한 주민들, 한국, 중국과의 관계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입니다. 한국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재중동포가 작년 기준으로 36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연변 출신 입니다. 한편 연변에 진출한 한국의 의사들과 사업가들도 많이 있는데요,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연변은 북한과의 왕래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두만강의 경비가 지금 같이 삼엄하지 않아 재중 동포와 북한 주민들이 두만강을 드나들며 자주 왕래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살던 시절에는 중국에 친척이 있는 북한 주민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식료품도 가져다주고 재중동포들을 많이 도왔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기억 때문에 북한에 식량난이 시작되자 많은 재중동포들이 강을 건너 북한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가져다주는 등 많은 왕래가 있었다고 하네요.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연길에서도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이 거리에서 눈에 띄었고, 중국 공안들로 인한 신변의 위협에도 북한 아이들을 집에서 돌봐주고 숨겨주고 한국행을 돕는 재중동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 공안들의 감시의 강도가 강해지고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들을 인신매매하거나 착취하여 이득을 챙기는 일도 연길에서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두만강의 한 장면. 가운데 앉아 있는 재중동포 창호는 왼쪽에 앉아 있는 북한 아이인 정진과 친구가 된다. 정진이는 먹을 것을 구하러 두만강을 건너 창호가 살고 있는 중국의 접경지역 마을에 왔다. 한편 창호의 부모님은 지금 한국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연변에서 만난 한 재중동포는 통일의 소망을 이야기 하며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강성대국이 되면 재중동포들도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정을 함께 했던 재중동포 가이드는 북한 식당에서 한국 학생들과 재중동포 학생들, 북한 종업원들이 함께 아리랑을 불렀던 경험을 이야기 해주면서 그 당시 함께 부른 아리랑 노랫 가락이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고, 자신은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로 우리가(북한주민, 한국인, 재중동포)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게 되어 무척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분단으로 가족이 헤어지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산가족 세대들이 이제 점점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고 하지요. 분단 이후 태어난 저희 젊은 세대들은 이런 아픔을 직접 겪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대에게 통일의 당위성을 말할 때 민족적 정서 보다는 경제적 효과 등 통일의 실리를 말한다고 합니다. 일전에 국민대 란코프 교수도 오랜 분단으로 한반도가 '조선민족'과 '한국민족'으로 분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칼럼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민족주의를 구성된 것으로 보는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이론은 사회과학계에서도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 이 땅에서 이산가족 세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오는 북한이탈주민들 중 여러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북녘 땅에 가족을 남겨 둔 이들이 있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이산 가족의 아픔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한반도에서 젊은 세대에게 민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반도에서 떨어진, 그렇지만 그리 멀지 않은 이국 땅 연변에서 저는 한반도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새삼 잊고 있었던 민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이국 땅에서도 통일을 마음 속에 그려보는 달콤하고 설레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이상 상생기자단 5기, 나하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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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연변 지도: http://gall.dcinside.com/list.php?id=map&no=133&page=84&bbs=
영화 두만강: http://artscene.co.kr/451
언급된 칼럼
안드레이 란코프, 한반도에 '조선민족'과 '한국민족' 분화 우려, 2011년 11월 4일, Daily NK 칼럼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4700&num=92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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