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22일, 신의주 아래에 위치한 평안북도 룡천의 룡천역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합니다. 폭발로 인해 직경 500m에 달하는 공간이 쑥대밭으로 변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룡천의 위치
폭발 전의 룡천 위성사진
폭발 후의 룡천 위성사진
웬만한 폭탄도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폭발을 일으키기는 힘듭니다. 폭발지점에는 15m 깊이의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주변의 건물들은 충격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폭발현장 ⓒWFP
다만 폭발의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당시 비료를 실은 기차가 룡천역에 진입하다가 기름을 실은 기차와 충돌했습니다. 이 때 비료에 포함된 질산암모늄과 디젤유가 결합되었는데, 이는 흔히 비료폭탄(ANFO)이라고 불리며 불꽃과 접촉했을 경우 큰 폭발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폭발이 주변 전신주를 쓰러뜨리며 가연성의 질산암모늄과 뜯어진 고압선이 접촉하며 더 큰 폭발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당시 약 20량의 LP가스통을 실은 기차가 열차노선을 변경하는 Y자형 차로를 통해 룡천역으로 진입하다가, 정차해있던 15~20량의 휘발유 수송열차의 옆부분과 충돌하여, 충돌로 인해 가스가 방출되고, 불꽃이 붙어 가스와 휘발유가 연쇄적으로 불타며 거대한 규모의 폭발이 발생했다는 설도 있으며, 당시 투입되었던 아일랜드의 한 구호단체의 대표는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기차가 폭발했다는 것을 북한이 밝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평소 자연재해나 비상상황이 발생해도 해외에 구호를 잘 요청하지 않지만, 이 사고가 난 직후에는 이례적으로 사고 발생 사실과 현황을 신속히 발표하고, 자국의 능력으로는 사고 수습과 복구가 어려움을 인정하며 국제사회에 구호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국제단체와 각국에서 구호품이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피해동포 돕기 운동본부"가 설립되어 성금을 모으고 구호물품을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총 50만 달러에 달하는 구호품이 북한에 전달되었습니다.
당시 룡천역 폭발사고를 보도한 동아일보
당시 룡천역 폭발사고를 보도한 MBC
이 사건으로 인해 룡천에서 약 150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룡천과 가까운 중국의 도시 단둥 등에서는 사망자가 1,000여 명 이상이라는 말도 나돌았습니다. 그만큼 큰 규모의 사고였던 것입니다.
룡천역 폭발사고 후 복구에 힘쓰는 룡천 주민들의 모습 ⓒWFP
룡천역 폭발사고 후 룡천의 모습 ⓒWFP
룡천역 폭발사고 후 룡천의 모습 ⓒWFP
룡천역 폭발사고 후 룡천소학교 앞의 모습 ⓒWFP
룡천역 폭발사고 후 돈이 되는 현관문을 모으고 있는 아이 ⓒWFP
룡천역 폭발사고 후 룡천의 모습 ⓒ프리미엄조선
룡천역 폭발사고 후 룡천소학교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한 가지 음모가 나돌았습니다. 바로, 이 사고가 김정일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폭발이 일어난 오후 1시경 즈음에 김정일이 룡천역을 통과하기로 되어있었는데, 폭발도 이 시점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접착 테이프가 붙어있는 휴대전화가 발견되었다는 영국 텔레그래프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룡천역에 정차해있던 기차는, 김정일이 탑승한 기차가 원활히 지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김정일이 탑승한 차량은 이미 9시간 전에 룡천역을 통과한 상태였습니다. 만약 암살설이 사실이라면 김정일의 소재가 명확히 파악되지 못한 가운데 암살기도가 실패한 것인데, 시간 차이가 9시간이나 나는 점으로 보면 암살설은 근거가 미약해보입니다.
위키리크스 문서
김정일이 룡천역 폭발은 자신에 대한 암살 기도였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키리크스는 2009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주한미국대사에게 한 발언이 적힌 문서를 공개했는데, 해당 문서에 따르면 김정일은 폭발 사고가 자신에 대한 암살기도였고, 휴대전화를 통해 자신의 스케줄이 누출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정일은 생전에 암살과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컸으며, 따라서 룡천역 폭발 사고도 자신에 대한 음해공작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한편, 룡천역 폭발사고가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모사드 전현직 간부 200여 명을 인터뷰하여 만들어진 <기드온의 스파이>라는 책에 따르면, 당시 룡천역에 진입하던 기차에는 시리아 과학자들이 탑승해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굴란고원을 두고 영토분쟁을 빚고 있으며, 북한과의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시리아 과학자들은 북한과 핵프로젝트를 협업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모사드가 파악하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폭발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암살설들은 그 근거나 주장의 논리성이 상당히 빈약해보입니다.
룡천역 폭발은 수많은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사고 후 나돌았던 암살설 등도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를 방증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피해 주민들에게 내민 도움의 손길이 최근에는 쉽게 보기 힘든 모습이라,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고가 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서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길 바랍니다.
[참고]
NK조선. "룡천역 폭발사고 진상 오락가락" (2004.04.23)
통일뉴스. "北룡천역 폭발사고 사망 150명, 부상1천명 이상" (2004.04.23)
자유아시아방송. "북한 용천역 폭발 사고와 비밀주의" (2004.05.22)
노컷뉴스. "김정일, "용천역 폭발사고 자신의 암살기도"" (2011.09.07)
경향신문. "[오늘]원세훈과 미스터 빈" (2011.12.28)
추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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