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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북한 영화 비평 - <한 녀학생의 일기> (2)



("북한 영화 비평 - <한 녀학생의 일기> (1)"에서 이어집니다)


어버이 숭배


<일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어버이에 대한 마음가짐을 어떻게 다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아버지를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는, 그러나 실은 무척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존재로 형상화합니다. 수련은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서 도무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에 대해 불만을 품지만, 사실 아버지는 가족과 조국을 위한 중대한 일을 수행하는 과학자였습니다.


북한의 수령이 가끔씩 현지지도를 하듯, 가끔씩 집을 찾아 가족을 살피는 아버지


<일기>에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특징은 수령이 보여주는 특징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가족을 자주 방문하지 않고 이따금씩 야심한 밤에 가족들을 찾아오며,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가족을 위해 큰일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어머니의 입원처럼 큰 일이 생겨도 공무가 바빠 직접 방문은 못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집안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어버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자식으로서는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부적절한 것입니다. 이는 “과학자가 가정일에 발목잡히면 성공 못해요”라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긍정되고 있습니다.


<일기>는 아버지의 권위가 위대한 과학자이기 때문에 성립되는데, 이러한 구조는 북한의 지도자가 핵실험을 완수해내는 과정을 끊임없이 인민에게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지도자의 권위를 세우고 있는 현실이 있으므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기>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이 수령을 의미한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것은 영화에 나오는 한 과학자나 그 딸의 부름이 결코 아니다.

 아버지! 이것은 령도자에 대한 전체 인민의 진심이다.


 (...) 노래가 사람들에게 주는 큰 충격은 서정적주인공의 내면세계에 있다. 다시말하여 예술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의 주인공들인 한 평범한 과학자와 그의 딸의 모습으로써 그려진 전인민적인 사상감정, 생활감정에 있다. 서정적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통하여 받아안게 되는 절절한 그리움, 그것은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다 바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다함없는 신뢰와 흠모의 감정이다. 바로 그것으로 하여 노래는 그처럼 커다란 감동을 자아내는것이다. 노래의 깊은 서정도 다름아닌 거기서 흘러나오고있으며 형상에서의 전형화와 개성 역시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로동신문》 “전선길에 울려가는 다함없는 흠모의 노래” (☞클릭!)




한편, <일기>에서 어버이가 숭배되는 과정에, 2000년 이후 북한 정치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음악정치’를 사용한 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장군님 발자국소리>라는 주제곡을 아버지가 직접 부릅니다. 아버지가 부르는 부분의 가사는 “눈덮인 령길에 자욱을 새기며 / 전선길 가시는 아버지 안녕 바라네”인데,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가족과 조국을 위해 힘들게 걸어가고 있다는 점을 굳게 믿으며 그의 안녕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노래를 통해 아버지와 수령은 다시 한 번 동일시됩니다. 북한에서는 이를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노래를 통해 멀리에서 딸을 격려하는 아버지


<일기>는 그것이 보여준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학예술의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기>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 표현되거나, 과학에 대한 중시가 표현되는 등 북한 영화로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문학예술이 국가적 방향에서 한 발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일기>는 북한식 문학예술의 특징에서 크게 벗어난 상태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가령 북한 문학예술의 서사는, 영화에서 아버지로 표현된 수령이나 당의 지시를 어떻게 가슴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주된 갈등구조로 삼고 있으며, <일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일기>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변주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효과적으로 봉합되긴 했으나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모습이 있었고, 이는 종이비행기를 통해 수미상관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영화는 주제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음악도 사용하였으며, 과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며 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하게 드러냅니다.


딸(인민)의 꿈과 아버지(수령)의 꿈이 다르지 않으며, 함께 성취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종이비행기


북한의 영화는 그것이 관제예술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북한의 문학예술을 보는 일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일기>는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영화로서 의미가 깊습니다.


현재 <일기>는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습니다. (☞클릭!) 북한 영화 <일기>를 통해, 직접 북한 사회를 가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