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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광복(光復) 70주년 기념전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

 1910년 8월부터 35년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 하의 식민통치시기를 겪었습니다. 오랜 고난과 암흑의 시기를 겪은 뒤 찾아온 광복(復)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를 되찾는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이 시점에 분단이 되기 전 한반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과정을 통해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취지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8월 28일 ~ 12월 28일간 열리는 광복 70주년 기념전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에 다녀왔습니다!

 

 

모든 사진은 박물관의 동의 하에 촬영 되었습니다.  -

 

 일제의 식민지로 보냈던 36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일제에 의해 강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유물들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이 일제에 의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우리 민족이 일제의 억압에 맞서 치열하게 살아온 역사의 기록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1910년 강제병합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테마를 '식민통치의 시작', '제국의 시선', '전시동원체제', '강제된 삶' 4부로 나누어 구성되었습니다. 강제병합을 선전하는 엽서와 기념 간행물, 총칼로 대표되는 억압과 공포의 정치, 조선인을 회유하기 위한 다양한 박람회와 전람회,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흔적들, 전쟁에 동원된 당대인들의 삶과 죽음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회의 구성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마모토 일일신문 1910년 8월 27일 호의 & 일한병합기념엽서

 '구마모토 일일신문 1910년 8월 27일 호의'는 한일강제병합조약이 발효되기 이틀 전의 호의보도입니다. 아직 조약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까닭에 조약 전문이 아니라 조약에 따른 세부 결정사항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한병합기념엽서'는 한일강제병합을 기념하여 일본에서 만들어진 엽서입니다. 엽서에는 각각 강제병합조약의 주역들의 얼굴과 병합조약 전문 등을 담고 있습니다.

 

경성일보 핫피

 '핫피'란 본래 일본 무가의 머슴들이 그 집안의 문장을 염색하여 입던 옷으로, 이후에는 장인들이 주로 입었습니다. 통으로 된 소매에 기장은 대부분 허리에서 무릎 사이였으며, 등에는 종사하는 곳의 상호를 커다랗게 나타낸 것이 특징입니다. 이 핫피는 등 부분에 붉은색의 경성일보 상호가 염색되어 있고 앞섶과 배를 둘러싼 부분에도 '경성일보', '경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국민복 & 총, 봉 등의 무기

 '국민복'은 군인 이외의 모든 남자 국민이 모든 장소에서 착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옷으로 국민의 정신 고양, 의복 생활의 합리화 및 군인과 민간인의 피복 일체화, 전의의 고양 등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 총 4가지 형태로 고안되어 1940년에는 갑호, 을호 두 종류로 정리되었는데 이것은 을호 디자인에 해당합니다. 1945년 6월에는 「대동아전쟁육군군인복제특례」를 만들어 국민복을 군복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안중근 엽서 & 김구의 『백범일지』

 1909년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여섯 발의 총성이 울리고,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이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중했습니다. 이것은 대한제국을 식민지하기 위해 내달리던 일본제국의 침략을 멈춰 세우기 위한 의거였습니다. 이후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의 의거 직후부터 그를 둘러싼 기억투쟁은 여러 방면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승모하며 기리는 엽서와 그를 흉한, 테러리스트로 표현하는 엽서들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각각 유통되었습니다. 이 엽서 또한 그 중 하나로, '흉한 안중근과 흉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한 일본인 측에서 안중근을 폄하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가 쓴 자서전으로,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권은 김구가 53세 되던 해인 1943년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하였습니다.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으며, 이 책은 이듬해 나온 재판본입니다. 김구가 이달원에게 서명하여 준 것으로 그의 아들 성균관대학교 이상순 명예교수가  2005년에 기증하였습니다.

 

 태극기

 

 안중근 의거 영상(1909)

 

 트릭아트 '나도 안중근 의사!'

 이번 전시의 특징은 '관람객 참여형'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히 식민지의 암울한 상황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볼거리와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로 트릭아트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트릭아트는 '달리는 철마'와 같았던 일제의 압력에 저항하는 민중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식민지를 주제로 한 전시에 트릭아트가 접목되었다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모형총을 집어 드는 순간 묘한 긴장감과 애통함이 밀려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언론을 통해 보았던 때와는 다른 느낌, 처음으로 안중근 의사의 시점에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관광기념인첩 & 『조선의 풍습& 불국사 엽서

'관광기념인첩'은 스탬프를 보아 1935년경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관광기념인첩의 주인은 경성, 부산, 수원, 인천, 경주부터 함흥, 함경북도, 평안남도, 해금강, 외금강, 내금강까지 한반도 일대를 방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반도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상황이, 분단이 되어 북으로 가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선의 풍습』은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인들에게 조선의 풍습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초판은 1925년에 나왔고 이것은 1929년에 나온 5판입니다. 책에 소개된 조선의 풍습이란 1920년대 변화하고 있던 조선이 아니라, 정체된 옛 모습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인의 눈에는 조선은 여전히 미개한 상태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성전미술』도록 & <끝이 없는 행군> - 남관 作

성전미술전은 "붓으로 화폭으로 진충보국하라."는 명분으로 1940년에 개최된 전시회입니다. 1940년대 전반에는 천황제 파시즘에 의해 미술정책이 결정됐고, 내밀하게 작동하던 식민지 권력의 매커니즘이 전쟁과 함께 적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화가들은 회화봉공과 화필보국을 강요받았고, 화단에 만연했던 일본은 영향은 대동아전쟁을 통한 총력전체제 속에서 조선의 화단을 더욱 침체의 늪으로 몰아갔습니다. 1940년 성전미술전을 기점으로, 1941년 국민총력연맹문화부 산하의 조선미술가협회결성, 1942년과 1943년 반도총후미술전 개최, 1944년 결전미술전 개최, 단광회를 통한 전쟁기념화 제작 등이 대표적인 전시미술행위였습니다.

 남관(1913~1990)은 1937년 도쿄에 있는 다이헤이요미술학교를 졸업, 1955년 프랑스 파리의 아카데미 드라그랑드쇼미에르에 입학, 추상미술에 몰입하였습니다.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드메전에 초대되어 국제적인 화가로 인정받았습니다. 1966년 망통 국제비엔날레에서는 P.R.피카소, B.뷔페, A.타피에스 등 세계적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수상,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다졌습니다.

 

 <여인상> - 장운상 作 & 승무를 추는 기생의 모습을 한 조선 & 『경성정서』& 승무를 추는 기생 엽서

『경성정서』는1936년 경성관광협회가 간행한 소책자로, 경성 지역의 각종 요리점과 기생에 관한 정보를 담은 일종의 홍보물입니다. 조선의 3대 명물로 금강산, 기생, 인삼을 들었습니다. 당시 일본인이 관광 상품으로서 경성을 어떻게 소비하였는지 잘 알게 해주는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공출된 유기그릇들

생활의 필수품인 그릇과 수저들. 이러한 세밀한 부분까지도 공출의 대상이 되었던 당시의 열악한 현실과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민중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병합기념 대일본판도전도

 

 양우회 조선본부, 국민총력경성부연맹, 경성제빵조합 제작 포스터첩

 

 신천경찰서장 관사 신년회 사진

 황해도 신천 경찰서장을 중심으로 신년회를 즐기는 풍경입니다. 일본인 남성과 조선인 남성이 섞여있으며 일본인 게이샤와 조선인 기생도 함께 있습니다. 흥에 겨운 표정의 일본인 남성과 경직된 표정의 조선인 여성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경찰서장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신년회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몸짓과 표정은 당시 암울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억압된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애국반』 1942년 3월 1일 제15호

 

 '일장기를 든 조선여성'

 

 황국신민의 서사 & 궁성요배 전단 & 과자봉지

 

 『소학관통신』대동아전쟁지도

 일본 『소학관통신』1942년 3월호로, 그 해 2월 당시 전쟁 상황을 지도와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영국, 미국, 인도네시아 등 적군의 각종 군사기지와 일본군이 격침시킨 적군의 함선 등을 표시하였습니다. 일본군이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한 날짜까지 세밀하게 기록한 것이 특징입니다.

 

  센닌바리

  '센닌바리'는 일본 여성들이 출정군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흰 헝겊에 붉은 실로 한 명이 함 땀씩 천 개의 매듭으로 만든 일종의 부적입니다. 태평양전쟁시기에는 조선 여성들도 센닌바리를 만들게 하였으며, 이는 황국신민으로서 일치감을 갖도록 강요하는 전쟁동원기제로 작동하였습니다.

 

 『반도의 지원병』& 『동맹뉴스』1938년 10월 20일 제67호

 "2천 3백만 민중의 혈기를 들뜨게 한 조선인 육군지원병의 훈련 개시"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사진은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실시된 직후 제1기 훈련생 202명이 현재의 육군사관학교 자리에 신축 영사를 짓고 그곳에서 훈련하는 모습입니다.

 

 

 

 

 한반도를 억압했던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 항복을 하였고, 그리하여 우리는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남아있던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미국과 소련의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소련군은 북한으로 들어섰고, 미군은 남한으로 진주하였습니다. 이렇게 한반도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직후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아래 38선을 기준으로 분할 점령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벌어진 정치적 이념의 분열과 함께 6.25전쟁이 발발했고, 오늘날과 같이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많은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다른 행사들과는 달리 광복 '이전'의 시간들에 주목을 했다는 점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36년의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간을 견뎌낸 우리 민족의 정신과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하에 이루어졌던 많은 행적들 속에 우리의 '자의'는 없었고, 그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가는 과정 속에도 수많은 '타의'들이 뒤섞여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혼란의 시기는 '잃어버린 시간'이라 표현되는 것입니다. 70년이 흐른 지금도 한반도의 문제는 단순히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닌 주변국들을 포함한 동북아의 문제,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문제로 포괄될 수 있습니다.  

 광복 70주년 기념 전시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을 통해 36년 간의 잃어버린 시간을 마주하면서 당대인들의 삶과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 전시는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8월 28일에 개막하여 1228일까지 계속됩니다.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찾아가는 방법 -

 

출처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 참고 자료

- 글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광복 70주년 기념전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

- 사진, 표 : 양다혜 기자    - 지도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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