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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한 여름 밤, 통일을 꿈꾸다> ③ 독일통일과정과 문화후유증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8기의 이일심, 홍다혜 기자입니다.

<한 여름 밤, 통일을 꿈꾸다>의 세 번째 기사입니다. 세 번째 강의는 7월 23일 목요일 밤 7시~9시까지 '독일통일과정과 문화후유증'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었지만, 참석 인원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DMZ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구(舊) 소련과 서구 세력의 대립구도는 유럽을 40년간 나누었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 세계일보)

소위 ‘철의 장막’으로 불리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나누는 경계는 북해의 핀란드부터 흑해에 이르기까지 23개의 유럽 국가를 지나 총 8,500km에 이릅니다. 구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이데올로기로 나뉘었던 이 경계선은 EU연합의 구성과 함께 그 종적을 감췄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자유주의 공산주의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EU로 묶고 경계선이었던 곳의 동·식물을 보존하면서 생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사진출처 : 경기관광공사)

철의 장막은 독일을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는 경계선이 되었는데, 이곳은 독일 통일 이전 동독 정부가 서독으로의 탈출을 막으려고 설치한 지뢰와 철조망, 감시탑, 자동발사 장치로 덮여 있어 죽음의 선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이 죽음의 선은 총 길이 1,400km에 폭은 최소 50m에서 최대 200m 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죽음의 선이라 불리던 이 철의 장막이 걷히고 동서 통합이라는 감격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대신 남과 북이 통일이 되어 생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하루 빨리 되길 바랍니다.  

<독일통일과정과 문화후유증>을 강연하고 있는 김면교수

 

강의로 들어가서. 독일의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989년 11월 20일 라이프치히, 동베를린, 드레스덴 등지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민들은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통일을 요구하였다. 동독 주민들의 서독 이주를 막고, 동독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통일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출처 : 외교부-독일 개황)

독일 시민들은 분단은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면서, 통일은 서독의 경제력과 동독의 노동력으로 이뤄나가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서로간의 달라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영역속에서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과 과거사문제 청산, 유럽의 문화목표정책 등의 접근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서독 화해협력, 동서독기본조약 등이 체결되고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독일 통일은 이뤄졌습니다. 

 

 

김면 교수는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보다는 청소년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통일을 이끌어가야 할 청소년들의 통일 의식이 낮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성세대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청소년들의 통일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기자입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청소년들에게 있어 진학과 진로에 대한 무게감이 크고 통일은 성적처럼 와 닿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일은 통일 전, 특히 TV를 통한 교류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통치자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같은 것을 통해 동독주민들은 서독처럼 살아보자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동독의 평화혁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남과 북도 통일을 위해 문화협정과 이산가족 상호방문, 서신 및 통신왕래, 청소년 교류 등 활발한 교류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이 바로 통일 후의 우리들의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통일이 되지 않았던 게 낫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그땐 그랬지'하며 방송 프로그램도 방영되면서 동독 주민들이 단순한 향수 차원을 넘어서서 (김면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동독이 좋은 면이 더 많았다.'고 29%, 8%가 '동독 때가 통일 후보다 행복하다.'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이 다시, 더 높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시위를 했던 것은 통일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 통일의 시사점은 사회보장이나 언어교육 등을 근본적으로 실시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이제는 서로를 많은 부분에서 다르게 했기에, 혈통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정과 배려와 같은 열려있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일심, 홍다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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