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3년) 1월 1일, 연초부터 북한에서는 파격적인 변신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변신"인지 아시나요? 바로 신년사였습니다! 신년사(新年辭)란 새해를 맞이하여 하는 공식적인 인사말로,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장관, 통일부장관 등 여러 인사들도 거쳐 가는 코스입니다.
이때까지 북한에서는 신년사를 <로동신문> 지면에 게재해오다가 19년 만에 처음으로 김정은이 직접 육성이 담긴 신년사를 공개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북한학 연구자들이 주목한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사업을 1970년대처럼 화선식으로 전환시키고 김정일애국주의를 실천활동에 철저히 구현하도록 하는데
당사업의 화력을 집중하여야 하겠습니다."
-2014년 신년사 부분 발췌
게다가 이와 비슷한 내용을 2009년 신년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각급 당조직들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당과 혁명의 진두에 높이 모신 격정과 환희에 넘쳐
모든 분야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켜나가던 1970년대처럼 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2009년 신년사 부분 발췌
보시다시피 두 신년사에서는 공통적으로 1970년대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필이면 왜 1970년일까? 과연 1970년대에 무슨일이 있었을까? 1970년대의 일은 앞으로 북한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와 같은 의문을 품고 이에 관련한 깊은 연구를 진행한 결과, 2014년 10월 8일, 동국대학교에서 "북한의 오래된 미래 1970년대를 재조명한다."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발표는 크게 정치ㆍ군사, 사회문화ㆍ경제 및 대외관계의 총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서 진행이 되었으며, 19명의 연구자들이 4시간 넘게 발표를 하고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그렇다면 1970년대 북한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세미나에서 다뤄진 내용을 바탕으로 1970년대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70년대 정치ㆍ군사 분야
당시 정치적으로 북한에서는 모든 것을 제도화했던 시기였습니다. 유일지도체계를 정비하고 당대회-당규약을 개정하면서 혁명적 수령론이 대두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수령제를 제도화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회에 그들만의 틀을 설정한 후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의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그들의 정치체제가 운영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조성하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 북한에서는 후계체제에도 중요한 의의를 두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자신의 조직체계와 사상체계, 그리고 사업체계를 모두 구축하여 1980년대엔 후계자 중심의 "유일지도체제"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는 이후 그가 당-정-군 모든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 검열권과 보고권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기관들을 후계자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사적으로 1970년은 군정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시기였습니다. 이는 크게 70~80년에 걸쳐 두 가지의 단계를 통해 진행이 되는데 첫 단계(70년대)는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 자격을 통한 군정체계를 수립한 것이고, 80년대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의 자격을 통한 군령체계를 수립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의 기반을 탄탄히 다진 김정일에 비해, 그의 아들 김정은은 안정적이지 못한 군정체계 속에서 북한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기간이 짧은 만큼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하지 못하였고, 군에 대한 통수권을 장악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북한 엘리트집단의 분열로 인하여 권력의 내재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로 관료들이 빈번히 교체되어왔고 장성택의 처형과 같은 공포정치를 통해 북한의 불안정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1970년대 사회문화ㆍ경제 분야
1960년부터 북한은 대내외적 경제 시련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1970년의 북한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 현상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먼저 그들은 양적성장을 질적성장으로 전환을 시도하여 서방과의 대외무역 확대와 중공업설비 위주의 수입을 통해 산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특히 그들은 전 역사에서 무역제일주의를 강조하여 무역을 통한 자국 내 경제발전을 도모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은 내부적으로 "북한식 경제"가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북한식 경제정책은 3가지 방향으로 제시가 되는데 1.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 관리를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2.서구의 자본까지 동원하여 기술적 병목현상 등을 해결하려는 개방정책을 전개하였으며 3.자원의 제약으로 인해 산아제한정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부족한 노동력에 대해서 여성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오늘날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적 바닥을 탈출하였으나, 본격적인 경제적 발전을 위한 일관된 경제운영체계의 작동이나 경제 전략의 실행이 미흡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은 당조직 중심으로 북한경제의 도약과 산업구조의 부흥을 꾀하고자 당차원에서 1970년대를 학습하도록 하고 청년들도 동참하는 제2의 3대혁명운동소조운동을 주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 복잡한 대내외적 환경에서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려는 시도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지만 북한은 계획경제와 시장의 공존을 활용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도입하여 인민들의 실생활을 조금씩이나마 개선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1970년대 대외관계 분야
1970년대 북한의 대외정책은 데탕트와 중소분쟁으로 인한 변화에 적응하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북한은 사회주의권 국가에 한정해서 교류를 하고 미국과 같은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와 신생독립국가들을 분열시키고 그들을 경제적으로 종속하고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미소, 미중관계의 개선과 중소분쟁의 지속과 같은 대외적 요인, 경제침체와 같은 대내적 요인, 남북간 체제경쟁의 고조와 같은 남북관계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련의 사건은 북한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중소분쟁의 여파로 인해 북한은 진영 내 협력만으로는 경제발전과 안전보장을 확신할 수 없었고, 이는 서방국가들에 손을 뻗는 외교 다변화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대서방외교가 본격화된 1970년대는 당시 정세 대응 수준 이상으로 미국/일본과 접촉, 교역 및 관계정상화를 추구했다는 것은 이 시기 북한외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념과 실리, 적응과 돌파의 양면이 동시작용 하였으며 당시 나타난 대서방외교는 오늘날 북한의 대미, 대일정책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이후 협상력 제고에 유용한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1970년대 북한정책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으며, 당시 대서방외교가 현 북한외교의 '오래된 미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과거를 거울삼아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예로부터 역사란 과거로부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는 말도 존재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하여 저는 북한의 역사와 토대를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하고, 현 상황도 바라보면서 북한의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는 조금 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의 북한은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고 실패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다른 시기에 비해 연구가 덜되어있는 만큼 본 세미나를 계기로 앞으로 1970년의 북한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하기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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