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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대학생기자가 추천하는 통일여행지, 경운궁(덕수궁) 석조전

분단의 아픔을 담고 있는 '경운궁(덕수궁) 석조전' 

△ 경운궁 석조전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조현기, 곽호기 기자입니다. 오늘 저희가 소개해드릴 통일여행지는 '경운궁(덕수궁) 석조전'입니다. 경운궁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많이 떠오르시나요? 많은 분들이 연인들이 사랑과 헤어짐의 공간으로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이나 고종 황제, 미술관 등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경운궁은 우리의 역사와 현재가 같이 공존하고 숨 쉬는 공간입니다.

 경운궁의 역사에서, 오늘 저희가 소개드릴 부분은 분단의 아픔과 상처와 관련 있는 부분입니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열심히 공부하셨던 기억이 나시나요? 여러분께서 배우신 미소공동위원회와 관련 깊은 곳이 바로 오늘 저희가 소개해드릴 경운궁입니다. 그 중에서도 경운궁 석조전 일대입니다.


△ 경운궁 석조전 일대△ 경운궁 중화전을 바라보면서


 미소공동위원회(The Joint Soviet-American Commission, 이하 미소공위)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이하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에 따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할 목적으로 미소점령군사령관들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공동위원회입니다. 1946~48년까지 약 2년 동안 열린 미소공위는 이곳 석조전을 약 2년 동안 사용하였습니다. 첫 회의는 1946년 1월 16일 미국 측 아놀드 소장, 소련 측 스티코프 중장을 대표로 미소공위 예비회담으로, 이곳 경운궁 석조전에서 열렸습니다. 예비회담에서는 시급한 현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1개월 이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는 공동성명만을 발표하고 2월 5일 폐회하였습니다.

  Q.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났나요?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미국, 영국, 소련 3국은 한반도에 대해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한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 실시, 한국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하여 장차 독립에 대비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미소공위 예비회담의 합의에 따라, 1946년 3월 20일 경운궁 석조전에서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습니다. 1차 미소공위에서의 주된 논쟁점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한국 내부의 협의대상자 선정기준’이었습니다. 진통 끝에 4월 17일 미소공위는 ‘협의대상이 될 정당과 단체는 모스크바3상회의 협정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는 선언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코뮤니케 제5호)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명 발표 후, 선언서에 서명하는 것이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지 여부를 놓고 미·소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미소공동위원회는 1946년 5월 6일 무기휴회를 선언하였습니다.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끝나자, 한반도 내의 정치세력간의 역학관계는 보다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미소공위 재개를 위한 시도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계속 오갔고, 장기간의 교섭 끝에 1947년 5월 21일 제2차 미소공위가 재개되었습니다. 2차 미소공위 초기에는 미·소 대표들은 한반도의 사회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 회의를 갖는 등 진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1차 미소공위의 대립점이었던 협의대상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947년 8월 중순, 미군정이 남로당 및 좌익계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고 갈등을 빚으면서, 미·소간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결국, 미·소는 10월 18일 개최된 미소공위 62차 본회의를 끝으로 국제연합에서 한국문제의 토론이 끝날 때까지 공동위원회 업무를 중단하자고 하였고, 10월 21일 소련대표단이 철수함으로써 미소공동위원회는 결실 없이 끝나게 됩니다.

 두 차례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국은 1947년 10월 유엔 총회에 한반도 문제를 상정했습니다. 제2차 유엔총회(1947.11.14.)는 소련의 불참 속에(찬성 41, 반대 0, 기권 4) 한반도에서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거 실시 및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 파견을 결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호주·캐나다·중국·엘살바도르·프랑스·인도·필리핀·시리아 등 8개국 대표(우크라이나도 지명되었으나 참여를 거부함)로 구성된 위원단이 1948년 1월 7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1948~50년 약 2년 동안 유엔한국임시위원회는 이곳 경운궁 석조전에 사무실을 설치, 활동했습니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총선거를 실시하기 위해 38도선 이북지역을 들어가려 했으나 소련 측이 거부하였고,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가능한 지역 만에서의 총선거’를 가결하여 38도선 이남에서만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위원단은 1948년 12월 제3차 총회에서 유엔한국위원회(UNCOK)로 개칭 되었다가, 1950년 10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로 흡수되었습니다.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는 1973년 12월 제28차 총회에서 해체되었습니다.

△ AP통신이 바라본 격동기 서울 ' 석조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미소공동위원회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조전은 1900년(광무 4년)에 착공하여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1910년(융희 3년)에 완공하였다. 석조전 서관은 193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사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겉모습에서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궁궐들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18~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에 기초하여 기둥 윗부분은 이오니아식(서관은 코린트 양식),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한 건물입니다. 또한 조선시대 궁궐의 대부분이 침전(왕의 침소)과 정전(업무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과 달리, 두 가지 기능이 통합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1층은 상궁처소, 주방과 같은 시종들의 준비공간이었으며, 2층은 접견실, 귀빈실, 홀 등 업무용 공간, 3층은 침실, 욕실 등 황제의 사적 공간이었습니다. 석조전은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권이 피탈되는 비운을 겪었지만, 근대국가를 꿈꾸었던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고종 황제 서거 후에는 1933년부터 이왕가 미술관, 근대 일본미술 진열관 등 일제의 의도가 반영된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직후에는 저희 기사에서 다루었던 미소공동위원회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사무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1955년 국립중앙박물관,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 1987∼2005년까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은 2009년 10월부터 석조전 원형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원형대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조현기, 곽호기 기자 (왼쪽부터)

 

 우리의 현재 분단이라는 모습에 영향을 미친 미소공동위원회·UN한국임시위원단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출퇴근길에 지나치거나 친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루어졌고, 우리가 그런 역사 현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 놀랍지 않나요? 많은 분들이 이제 우리 주변에서 분단의 아픔과 상처들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이처럼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주변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도 분단의 아픔과 상처들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운궁을 돌아보면서 우리 마음속의 아픔과 상처를 되돌아보고, 그 아픔과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될지 우리 한 번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조현기, 곽호기 기자였습니다!


 

 

 ※ 경운궁 역사 및 궁궐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경운궁 및 궁궐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궁궐의 역사해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설명을 들으면서 궁궐을 둘러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우리궁궐길라잡이’ 는 종묘와 궁궐을 찾는 내외국인에게 우리궁궐의 역사와 가치를 설명하며,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보존하는 자원활동봉사자들입니다.

경운궁(덕수궁) 홈페이지 :  http://www.deoksugung.go.kr
우리문화숨결 궁궐길라잡이 홈페이지 : http://www.palaceguide.or.kr/

 

[참고문헌]

한국민족대백과, '미소공동위원회'

한국민족대백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우리문화숨결 우리궁궐길라잡이, '경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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