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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의 유엔외교는 어떻게 진행되어왔나?

  냉전이 종식된 후 북한은 대외관계에서 나름의 변화를 보여 왔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국내정책의 변화는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므로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변화의 정도는 덜하지만 북한의 외교정책 또한 1991년 국제연합(UN) 가입 이후 극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 왔다. 따라서 북한의 국제연합 가입 이전과 이후의 대외정책을 분석해보는 것은 앞으로의 대북정책 방향을 설정하는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제연합 가입 이전 북한의 유엔외교


  한반도가 분단되는 과정에서 국제연합은 남한의 총선거를 인정하고 남한만이 유일한 한반도의 합법정부라는 것을 승인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제연합군이 결성되어 북한과 실제 전쟁을 벌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북한은 국제연합을  부정하고, 국제연합과 대립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국제연합 단독가입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이는 국제연합체제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이 아니라 남한만의 단독가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948년 실시된 남한 단독 총선에서의 투표 모습 (출처 :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ds2hcg&folder=45&list_id=12281014)


  1950년대 말 부터는 비동맹 국가들이 국제연합에 대거 가입함으로써 북한의 유엔정책이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북한은 60년대 말부터 국제연합군 사령부 해체와 외국군 철수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1971년에 중국이 타이완을 대신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오르자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유엔외교를 펼쳤다. 


국제연합 가입 이후 북한의 유엔외교


남북한 유엔가입이 확정된 후의 모습 (출처 : http://img.yonhapnews.co.kr/photo/yna/YH/2011/09/15/PYH2011091510770001300_P2.jpg)


  1970년대에 북한은 더욱 적극적으로 유엔 산하 기구에 가입하기 시작한다. 1973년 국제의원연맹(IPU)을 시작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 1977년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등 다양한 국제기구, 비정부 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73에는 유엔이 한국전쟁 중의 남한을 도울 목적으로 1950년에 설립한 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이 해체되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UNCURK의 해체를 주장해온 북한의 외교적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국제연합 가입의 의미


한국과 중국의 수교 (출처 : http://news.donga.com/3/all/20120820/48733764/1)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북한의 외교정책에 수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남한은 북방정책을 통해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유엔에서의 상황은 북한에게 불리하게 전환되었다. 이에 북한도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여 1990년부터는 유엔에 남북한이 분리 가입하는 방안을 준비했다. 1991년, 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한의 국제연합 동시가입을 수용했다. 그리하여 1991년 9월 17일 국제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남북한이 동시 가입했다. 이로써 첨예하게 대립하던 국제연합 가입 문제는 남한의 입장이 관철되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불리해진 상황 속에서 남한의 단독가입이라도 막고자 어쩔 수 없이 동시가입을 따랐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수세적인 입장이 아니라 이것이 북한 나름의 전략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북한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일단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연합에 가입한 것은 당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명분외교에서 실리외교로


  국제연합 가입 이후 북한의 유엔외교는 명분 싸움 보다는 회원국의 지위를 가지고 정치적 실리를 얻어내려는 성격으로 변모했다. 1992년부터 북한은 국제연합 총회에서 지속적으로 하나의 조선 정책과 평화협정을 주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는 약해지고 있다. 또한 국제기구를 통해 국내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북한이 명분외교에서 실리외교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국제연합 개발계획(UNDP)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개발 사업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의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식량난에 대해서도 유엔에 호소했다. 이에 국제연합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 등이 인도적 지원을 펼쳤다. 그리하여 북한은 대북지원을 수행하는 기구들의 현지 모니터링을 수용하는 등의 획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국제연합에서 인권관련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4년에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제기한 정치범 수용소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 했다. 나아가 1995년에는 국제사면위원회 조사단을 초청해 감옥시설을 공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국제연합 가입을 기점으로 남북대결의 각축장으로 국제연합을 활용하기보다는 대외관계를 개선하고 실리를 챙기는 외교의 장으로 국제연합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합을 통한 북한 포용?


  과거 냉전시대에 국제연합은 미소 대결, 남북 대결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북한은 국제연합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남북한의 동시 가입이라는 남한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연합은 북한에게 중요한 대외관계 개선의 창구이다. 실제로 북한은 국제연합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얻는데 주력해왔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연합은 북한을 포용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출처 : http://img.yonhapnews.co.kr/etc/graphic/YH/2013/03/08/GYH2013030800020004400_P2.jpg)


  국제연합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포용해서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얻는 것은 도발을 억지하는데도 효과적이다. 이렇게 북한이 국제연합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아질수록 국제연합의 대북제재도 실효성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설적이지만 국제연합의 대북제재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도 북한이 그동안 유엔외교를 활발히 펼쳐온 탓이다. 이렇듯 북한과 국제연합의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우리에게는 북한을 대하는 전략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국제연합은 북한에 당근과 채찍 전략을 적절히 사용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mejunate@nate.com

구희상



[참고자료]

김근식, “북한의 유엔외교: 유엔가입 이전과 이후의 비교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41집4호(200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15/0200000000AKR201109150244000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