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북한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영웅일까?"에 이은 두 번째 기획기사!
최근 안중근 의사 의거/순국 100주년을 거치면서 한동안 대한민국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번 기사는 바로 "대한민국에서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를 북한에서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라는 의문점에서 착안하여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번 기사는 이주현 기자와 김경준 기자가 합동으로 쓰는 첫 기사인만큼 여러분의 열렬한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
안중근 의사는 누구인가?
먼저 안중근 의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부터 들어가볼까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중국 하얼빈역에서 어떤 독립투사가 6발의 총성을 울리며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의 교란자로 불리던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에 '하얼빈 의거'로 기록되었고, 그 의거를 일으킨 독립투사가 바로 도마 안중근 의사이십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법정에서도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다! 나를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로 대우하라!"며 당신이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일본인 판사와 검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용기 있는 분이셨습니다.
결국 안중근 의사께서는 당신의 짧은 생애를 기록한 '안응칠 역사'와 미완의 저서 '동양평화론'을 남기고 1910년 3월 26일, 31살의 나이에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사진: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
북한에서도 안중근 의사가 영웅일까?
그 업적과 후세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기에,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위인으로 손에 꼽히는 안중근의사가 북한에서도 위인일까요?
답은 OK입니다.
북한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출생 125주년 기념 우표, 안중근 의사 기념 주화 등이 나온 바 있고, 심지어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영화까지 나왔다면 믿으실 수 있나요?
(사진: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스틸컷/안중근 기념주화/안중근 우표)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재조명한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1979년 제작된 영화로 김정일이 직접 연출을 지도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북한에서 매우 공들여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김일성이 1928년 1월에 직접 창작한 혁명연극의 제목을 본 따 만든 영화라고 하니, 김일성 역시 안중근 의사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북한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유명 배우가 총 출연했고, 막대한 제작비와 수천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습니다. 특히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를 사살하는 장면은 하얼빈 현지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이 영화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적 활동과 투쟁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왜 이렇게 유난히 안중근 의사에 대한 칭송을 하는 것일까요? 안중근 의사는 북한 지역인 황해도 해주 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생가터가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친척과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면서, 1970년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을 단장으로 중국 뤼순 일대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사전 조사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번 '북한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영웅일까?' 기사에서도 나왔듯이,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유일한 수령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를 김일성보다 높게 평가할 수 없다는 의식이 깔려 있어,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에도 그러한 의식이 반영이 되었는데, 이로 인해 영화가 '용두사미'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1912년 이전의 항일혁명투쟁은 뛰어난 지도자가 없어 실패에 그쳤으며,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도 결국 조선의 식민지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는 내용으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의 의미를 한 단계 격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1912년은 바로 김일성이 탄생한 년도입니다. 즉, 김일성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나타나 항일무장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끔으로써 조선의 해방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김일성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북한 체제의 폐쇄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춘천MBC에서는 방송 사상 최초로 북한의 안중근 의사 유적지와 후손들을 취재해 '안중근, 분단을 넘다'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다큐멘터리 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한민족의 영웅으로 여전히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남과 북이 모두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면서 왜 둘로 나뉘어 이렇게 분단의 현실을 살고 있을까" 하는 씁쓸함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진: 평양 애국열사릉의 안중근 의사 조카 안우생 묘를 참배하는 안중근 의사 후손들)
미완의 숙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한편, 아직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2007년 남북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조사단이 구성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2008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시도하였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에서도 1970년대부터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고 있는데, 북한은 안중근 의사께서 황해도 해주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안중근 의사 유해의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께서 1946년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역) 한켠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유골이 없이 봉분만 있는 빈 무덤)를 마련해놓고, 훗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게 되면 이곳에 안장하겠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사진: 삼의사묘역 한 켠에 마련된 비석 없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
이처럼 남과 북은 서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남한의 영웅도, 북한의 영웅도 아닌 하나된 조국, 한민족의 영웅입니다. 아마 당신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 갈리어 싸우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실까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게 된다면 어디에 모실지에 대해 아래와 같은 바람을 내비췄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선 증조할아버지(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3.8선이 있는 DMZ(비무장지대)에 유해를 안장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증조할아버지를 존경하는 남과 북이 증조할아버지 무덤에 참배하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고 인사를 하게 되겠죠. 남과 북의 화합이 곧 증조할아버지가 바란 바일 겁니다." -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토니 안(안도용)
이처럼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남과 북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통일의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하신지 100여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한 그분의 유해... 더 늦기 전에 남북이 하나로 뭉쳐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 함께 참배할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부르짖던 안중근 의사의 외침은 아직까지도 분단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주효한 외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2011년 여름, 중국을 방문한 EBS 교육방송 안태근 프로듀서가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인 뤼순감옥구지묘지를 촬영 중이다)
[Tip] 2008년 1차 발굴 실패 이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은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고, 최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하는 시민단체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에서는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한 뤼순감옥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뤼순감옥구지묘지' 지역이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라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에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중근 의사 최후의 유언
(사진: 안중근 의사 순국 10분 전 모습)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조국이 독립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
<출처 및 참고문헌>
1. 영화로 보는 애국적 인물의 궤적① 北 엄길선 감독의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http://blog.daum.net/bolee591/7895204
3. 남북에서 각각 발행했던 '안중근 우표' http://cafe.naver.com/iahn/1041
4. 북한이 보는 안중근 장군(2010.7.13) 기사 http://cafe.naver.com/ahnjunggeun/288
5. [연합뉴스] 北TV,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방영(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628959) 2010.8.29
6. [시사IN] 북한은 1970년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끝냈다(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6891) 2010.4.8
7. [PD저널] 춘천MBC ‘안중근, 분단을 넘다’ 26일 전국방송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861#) 2010.3.22
8. [PD저널]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는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362) 2012.3.12
상생기자단 제5기
이주현 기자 (신라대 음악학과/haruka0220@naver.com)
김경준 기자 (수원대 사학과/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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