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과'를 아시나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북한학과'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기사(http://blog.daum.net/mounification/8768961)에서는 북한학과가 언제 왜 생겨났는지, 북한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짚어 보았습니다.
제가 북한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넌 어떻게 북한학을 공부하게 된거야? 원래부터 그렇게 북한에 관심이 많았어?"
정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아니오"입니다.
저도 남들과 똑같은 상황에서 성장해서, 똑같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우리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고민 따위와는 전혀 관계 없이 남들도 모두 남들따라 꿈꾼다는 그런 보편적이고 인기 많은 학문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참 이제 대학교에 지원서를 넣던 시기, '북한학과'라는 네 글자가 문득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 한 번도 북한학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대학입시생이었던 저에게 그 네 글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걸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북한을 공부하는 건 어떤 일일까? 하긴, 장차 통일은 이루어져야 할텐데 그걸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 멋지지 않을까? 어라, 경영학과는 어느 학교에나 다 있는데 북한학과는 고작 두 군데 뿐이네. 이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비전 있겠다. 잘만 하면 내가 한국의 미래 큰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았고, 그 이후로 저는 정말 무언가에 홀린 듯이 결국 북한학과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학통지서를 받은 그 순간부터 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선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북한학과라는 네 글자를 보기 전과 후, 저의 시야는 한반도 남쪽에서 한반도 전체로, 반쪽에서 한쪽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대한민국에서 나름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국민이었겠지만, 후에는 한반도 북쪽까지 아울러 바라보고 더욱 더 큰 꿈을 품는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도, 북한학과는 정말 메리트있는 학과 입니다.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무한한 학문입니다.
북한학 전반에 대한 전문지식을 체득하고 민족통일에 대한 비전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연구기관, 언론사, 기업, 정부기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상 진출 분야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통일교육요원 및 통일대비요원(1998년 8월부터 시행된 통일교육지원법에 따라 각급 교육기관에서 통일 관련 교육을 담당할 인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2. 북한 및 통일관련 정부부서, 전문 연구기관에서 정책 실무자나 연구자로서의 업무 수행
3. 언론기관 등에서 북한 전문 기자로서 활동
4. 민간기업에 진출해 남북한 교류협력의 중추적 역할 담당
예를 들자면, 향후의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과 관련하여 자원이나 무역 관련 회사에 취직할 수 있습니다. 혹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의 증가 추세를 감안하여, 기업의 인사팀에서 북한 사회의 특성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북한이탈주민 고용시에 발생할 사안들을 전문적으로 다루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에 대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점은, 북한학은 해외에서도 대단히 인정받는 학문이라는 점입니다. 분단이 우리나라의 의지에 관계 없이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복잡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이러한 분단체제의 해체 과정에 있어서도 주변의 동조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독일 통일과 관련한 연구가 상당히 많이 진척된 상태고, 북한학과 더불어 동아시아 정치학이나 국제관계학 등을 함께 공부한 전문가들이 늘어난다면 풍부한 통일 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관련국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 왔고, 관련된 세미나나 토론회도 자주 접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굳이 어렵게 따지지 않아도, 기자 자신이 직접 겪은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이번 여름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한반도의 통일에 놀라울 만큼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직접 만든 포토북의 일부분입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체크포인트찰리 박물관에서 독일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독일 포츠담 광장에서 관광을 안내하던 분과 함께.
이처럼 북한학은 해외에서도 어딜가나 인정받는 학문입니다. 오히려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북한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고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공부한다고 하면 신기해하고, 또 흥미로워합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인 만큼 많은 외국인들은 남북통일에 관한 문제를 궁금해하고, 그만큼 북한학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입니다.
진로와 연관해서 본다면 UN 등의 각종 국제기구에의 진출, 외국계 기업 입사, 다국적 NGO단체 활동 등의 다양한 길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학을 전공하는 사람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해외에서도 이 학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학과 학생들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았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장은수(04학번), 김성진(04학번), 김하란(10학번),
현주희(07학번), 백승희(08학번), 노준원(07학번), 김용현(교수님)
그.런.데.
안타깝게도 북한학과는 지난 몇 년간 통·폐합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는 북한학과 폐지 논란, 마치 흔들리는 남북관계처럼 북한학과의 존폐위기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
북한학과 설립년도 |
현황 |
동국대학교 |
1994년 |
2007년 입학 정원 축소 (40명→20명) |
명지대학교 |
1995년 |
2010년 정치외교학과로 통폐합 |
관동대학교 |
1996년 |
2006년 폐지 |
고려대학교 |
1997년 |
유지 |
조선대학교 |
1998년 |
1999년 폐지 |
선문대학교 |
1998년 |
2008년 동북아학과로 개편 |
북한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내부적 위기 요인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인문 계열, 그 중에서도 특수한 북한학과를 졸업할 경우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렵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가 있다.
-북한학을 다루는 이론적 체계가 학부 과정에서 다루기는 너무 포괄적인 면이 있다.
-북한학이 학문적으로 독립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북한학과 개설은 대학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공감대를 갖고 추진했던 것인데 막상 북한 전공자가 진출할 만한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출처: 데일리NK 이은솔 기자, "위기의 북한학과…폐지·통폐합에 2개 학교만 남아", 2011.04.01>
하.지.만.
명지대 북한학과는 10학번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아 이제는 2곳밖에 남지 않은 북한학과, 최근에는 동국대마저 북한학과 폐지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얼마전 해당 학과 학생들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안에 대해서 동의를 할 수 없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측에서 현재 통과된 안은 이른바 '연계전공안'인데요.
<9월 26일 학교 측에서 구두로 발표한 학문구조개편안>
→2013년부터 연계전공으로 전환, 교수 소속은 일반대학원으로 전환
이는 사실상 북한학과를 폐지하고 북한학 연계전공 과정으로 재편하여 모든 북한학 과목을 각기 다른 전공으로 분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북한학에 대한 애정을 가진 많은 학생들이 학과를 수호하고자 하는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 학문을 지키기 위한 동행'이라는 이름의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여 관련 과 학생들이 참가하는 연합총회를 통해 문제를 논의하고, 학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9월 28일, 학문구조개편안이 발표된 다음날 소집한 2차 의사결정회의를 마치고 나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학교 본관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소수가 이끌어가는 학문인 북한학은 폐쇄적이라는 한계를 지닌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전공의 대학생들이 학부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서 접할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다 많은 학생들이 통일 문제가 본인들의 일임을 인지하고 주인 의식을 갖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학과의 실체가 없는 북한학 연계전공은 연구기반과 깊이, 전문 분야에의 활용도 등이 현저히 부족하여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을 뿐더러, 학부 과정이 없는 북한학 대학원 과정은 소수만의 폐쇄적 학문으로서의 고립을 자초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먼저 북한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의 말을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북한 문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인데, 정작 우리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모교를 사랑하는 재학생으로서 북한학과 폐지 논란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를 향해 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박서윤(동국대 북한학과 1년)
다음으로 대학원생의 말도 들어보았습니다.
"대학원 과정에서 선수 과목으로 학부 수업을 듣는 게 많은 도움이 됐다. 학부가 있으면 훨씬 안정적이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대학원 수업이 향상될 것이다. 북한학과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북한학은 북한의 변화와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학부, 대학원 과정 모두 북한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우리대학을 포함해서 전국에 2곳 밖에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점도 동국대 북한학과의 최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동국대학교 대학원 신문)
-현재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중인 한 대학원생
이미 앞서서 북한학과 통폐합을 겪은 명지대학교 학생의 의견 또한 들어보았습니다.
"명지대 북한학과가 그랬듯, 이번 폐과결정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꼭 과가 없어진다는 것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되는 학생들, 교수님들과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정책, 정권교체 그리고 취업률이라는 수치 하나만으로 과를 없앴다 만들었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 학문의 가치를 2년, 5년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비록 명지대 북한학과는 없어졌지만 동국대 북한학과는 꼭 과를 살려서 보란 듯이 성공하길 항상 응원하겠으며, 언젠간 명지대 북한학과도 신입생을 다시 받아서 앞으로 북한학과 학생들 모두가 통일을 준비하는데 그 중심에 설 수 있길 바란다. 재단의 이익을 위해 더 이상 학생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임소라(명지대 북한학과 4년)
뿐만 아니라 북한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학생들의 반응 또한 남달랐습니다.
"북한학과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고작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판단하기엔 북한학은 가능성이 많은 학과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현재만 생각하고 통일될 미래의 앞 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임창민(동국대 사회학과 1년)
"평소에 북한학과에 다니는 여자친구를 보며 느낀 것이 많았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꿈을 꾸며 관련된 일을 열정적으로 찾아나가는 그 모습에 부럽기도 했다. 덕분에 예전엔 북한에 관심도 없던 내가 천안함 추모시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이런 것 하나 하나가 북한학과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유민철(동국대 윤리문화학과 4년)
"개인적으로 북한학은 굉장히 비전있는 학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북한학이 없어진다니 다소 충격적이다. 북한학과는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학과이므로 폐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찬행(경희대 행정학과 1년)
다른 과 교수님의 말씀 또한 들어보았습니다.
"북한학을 택한 이상 굶어죽을 일은 없다. 북한 문제를 배제하고서는 한국 사회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관련된 공식적인 일자리는 그다지 많이 없어 보이지만, 앞으로 북한 관련 일자리는 무조건 늘어날 것이다. 북한, 통일에 관한 논의도 모두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므로 테크닉보다는 기획적인 마인드를 가진 북한학 전공자가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북한학 관련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홍윤기(동국대 철학과·문화기획 연계전공 담당교수님)
△학생들의 벌이는 서명운동 종이 '응원메시지'란에 적힌 문구들.
아마도 북한학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갈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큰 이견이나 수그러들어 더욱 유연하게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와야만 하는 미래, 통일된 한국에 대한 구상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통일 한국에 대한 당찬 포부를 품고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북한학과 학생들의 꿈을 지키는 일은 곧 미래의 안정적인 통일의 기반을 닦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최수지 기자였습니다.
참고 사이트: 데일리NK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500&num=89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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