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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튀니지와 이집트 그리고 북한

"튀니지와 이집트 그리고 북한"
 

튀니지

2010 12 17일에 분신한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2011 1 5일에 사망하였다. 이를 계기로 1 8일부터 중부 카세리네 지역에서부터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10일까지 3일간 시위 도중 50여 명의 사망자가 생겨났다. 이에 시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일자리 30만개 창출 유화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11일 반(反)정부 시위는 수도 튀니스로 확산되고 이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첫 충돌하게 된다. 시위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13일 벤 알리 대통령은 2014년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하지만 14일 시위는 벤 알리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벤 알리 대통령은 내각을 해산시킨 뒤, 6개월 내 조기총선을 실시할 것으로 발표하였고 과도정부가 출범되었다. 결국 벤 알리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 출국하였다.

 

알자지라에 소개된 튀니지 시민 혁명

이집트

2011 1 17일과 18일 이틀 사이에 튀니지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3명이 분신하였고, 이를 계기로 25일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및 정치, 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날 하루에 시위대 3명과 경찰 1, 4명이 사망하였다. 다음날 경잘 집회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시위로 2명의 시민이 추가로 사망하고, 860명이 체포되었다. 다음날인 27, 체포자는 천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또한 7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날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급거 귀국하였고, 함구하던 미국 백악관에서도 이집트에 정치개혁을 촉구하였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은 야권인사 20명을 검거하고, 이집트 전역의 인터넷을 통제하고,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시위확산은 저지되지 않고 28, 금요기도회 직후 시위는 전국적으로 일어낫다.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여 최소 26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 사태가 지속되자 결국, 29일 무바라크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내각 해산과 정치개혁을 천명하였다. 이집트 당국은 이틀간 시위로 62명이 사망하였다고 확인하였으며, 알자지라TV는 최소 95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알자지라에 소개된 이집트 시위

 

23년동안 튀니지를 장악하였던 독재정권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를 통하여 14일만에 그 결실을 맺었다. 시위를 진압해야 될 경찰과 군인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위 대열에 합세하여 시위대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이러한 튀니지 시민 혁명 상태는 트위터, 유투브, 페이스북, 알자지라 TV등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방영되었고 시민 혁명의 승리를 전하였다. 이는 30년 동안 장기집권 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있는 이집트에 삽시간에 시민 혁명 열망을 번졌다. 이집트의 시민 혁명은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민주주의에 지속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집트 혁명 또한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를 위한 시민 혁명 열기는 이집트에 이어 다른 중동 국가에도 번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민주화 열망에 대한 시민혁명은 우리나라도 1919 3 1일에 일어났던 경험이 있고,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룩하는데 시발점이 되었다. 1919년과 지금의 민주시위가 다른 점은 그 확산 속도에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모두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의 매체를 통하여 빠르고 정화하게 현장의 소식들을 전 세계로 전했고, 자신들의 혁명을 이루는데 주요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에 국제 사회의 독재정권에 대한 압박과 범 전국적인 시민들의 시민 참여로 독재정권이 단시간 안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달갑지 않게 쳐다보는 한 시선이 있으니 바로 북한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와는 비교되지 않는 60여년의 독재 기간과, 그 또한 3대 세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정치 시스템, 그리고 끝나지 않은 기근으로 인하여 북한 주민들은 이미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에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무능함과 잘못을 감추고 시민 혁명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중매체를 통제하고 심지어 시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을 넘어서 다른 마을로 가는 것조차 허가를 받야 이동 할 수 있게끔 철저한 통제를 하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북한의 경제가 낙후되고,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시민들이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고, 시위를 통한 혁명이 이루어질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혁명은 쉬쉬하고 감춘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꼭 인터넷과 전화가 없어도 국민들의 열망 하나만으로도 혁명은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3.1운동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북한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시위를 숨기고 통제하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국제 사회와 우리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2010/2/8, 정부부처 블로그 위젯 [정책공감]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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