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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제1회 동국대-서울대 연합세미나 - 동국대 발제


2016년 11월 3일 목요일, 서울대학교에서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학술동맹과 서울대학교 한반도문제연구회(SNUKOA) 간의 연합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동국대학교에서는 "탈분단과 '북한적 소속감'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한반도문제연구회는 "고위층 탈북과 북한 체제의 취약성"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학술동맹 대표인 추재훈 학생이 발제한 "탈분단과 '북한적 소속감'에 대하여"라는 발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발제를 맡은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학술동맹 추재훈 대표


추재훈 학생은 발제문의 목적은 통일과 탈-분단이라는 개념 아래, 김련희씨 사건으로 촉발된 북한적 소속감을 간략하게 살펴보며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거리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먼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남북 간 이질감 및 적대감이 최대한 해소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며, 분단이 남북의 치자가 달라지거나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한반도 내의 사회적 갈등이 축적되어 생성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긴 과정이자 구조라면, 통일 또한 남북의 정치적 혹은 체제적 단일화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남북의 차이를 없애는 긴 과정이자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분단과 통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며, 장구한 과정입니다. 분단이라는 문제가 반드시 통일이라는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분단을 파악하는 일은 단순히 통일과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과정을 아는 일이 아닙니다. 분단에 대한 반성은 분단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한반도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책임을 포착하고 반성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분단을 직시하는 일은 분단된 한반도가 갖는 억압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발굴해내고, 이의 극복을 한반도적 전망으로 소환하는 일이며, 이것이 탈-분단의 시발점입니다.


분단 상황 하에서 남북 이질감 및 적대감의 해소는 남북 각각의 내적 노력과 남북 교류의 활성화를 필요로 하며, 내적 노력과 교류의 활성화는 상호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가령 남북 교류의 활성화는 남북 이질감 및 적대감을 상당부분 해소하는 한편 남북 각각의 내적 노력을 추동하며, 또한 이러한 내적 노력이 남북 교류의 활성화를 촉진합니다.


세미나가 진행된 서울대학교 신양학술정보관(III)


그러나 2008년 이후의 남북 교류는 사실상 단절되면서 이질감 및 적대감 해소는 주로 남북 각각의 내적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남북 교류의 단절과 활성화는 남북관계의 빙결과 해빙에 좌우되며, 이는 단순히 남북 중 어느 한 측의 일방적인 행위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내적·상대적 행위 및 동북아시아 제 국가의 행위 등 수많은 변수들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남북 교류의 상황이 남북 각각에게 주어지고 남북은 동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내적으로 남북 간 이질감 및 적대감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분야는 무척이나 많으며 형태 또한 다양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가령 언론의 보도, 학계의 경향 내지는 학문적 성취, 정당의 정강 및 정책 수립, 시민사회의 활동, 학생·시민교육 변화 등이 있습니다. 또한 동 노력을 위한 각 방안들 또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필요성, 타당성, 적실성, 가능성 등 무수한 기준 하에 검증되어야 합니다.


발제는 ‘북한적 소속감’을 주제로 삼았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적 소속감은 학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적 소속감은 불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질감과 적대감의 해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남북 소속감의 평화공존 내지는 한반도적 소속감의 성립이라고 할 때, 이는 한반도 전 영역에 걸친 북한적 소속감의 존재를 전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 내지는 탈-분단에 있어 남북 간 다원주의는 주요 이슈이며, 북한적 소속감은 그 핵심 이슈입니다.


발제하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학술동맹 대표 추재훈 학생


추재훈 학생은 한국 사회에 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인 탈북민 ‘김련희’씨를 소개했습니다. 김련희씨는 2011년 9월 한국에 입국한 평양 출신 북한이탈주민으로,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라고 규정하고 끊임없이 북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동년 5월 병 치료를 위해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에 방문했던 김련희씨는 북한으로 돌아오던 길에 돈을 벌기 위해 선양에 머물렀고, 이곳에서 탈북 브로커를 만났습니다. 브로커는 김련희씨에게 한국에서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얼마든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브로커에게 여권을 맡겼던 김련희씨는, 한 번 한국에 입국하면 되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권을 찾으려 했지만 돌려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면 한국 당국이 자신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리라 믿고, 국가정보원의 신문을 받는 즉시 북송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로 나온 후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을 거쳐 북한에 돌아가리라고 마음먹었으나, 여권은 국정원의 거듭된 거절로 실패합니다. 그는 중국 선양의 북한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실수로 한국에 오게 되었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북한 당국은 중국까지 와야 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밀항도 생각했으나 자금이 없었던 김련희씨는 결국 자신이 간첩이 되면 추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자발적으로 탈북민들의 정보를 수집하였으나, 이것이 발각되어 간첩 혐의로 체포되기만 했을 뿐 추방되지는 않았습니다.


지속된 탈남(脫南) 실패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김련희씨는 손목을 긋거나 수면제를 다량 섭취하는 등 몇 차례 자살기도를 했으나 번번이 담당 형사가 발견하여 실패하고, 현재는 간첩 사건에 대한 죗값을 다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련희씨의 사례는 남측으로 잘못 흘러온 북한 어선을 북송하는 등의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지만, 탈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비슷한 사건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북 주민 간 자유 왕래가 가능해지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우리 사회 내에 ‘북한적 소속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큰 문제점을 던져줍니다.


추재훈 학생은 우리 사회 내에서 북한적 소속감이라는 주제 앞에 던져볼 수 있는 질문들은 무수히 많지만, 두 가지 질문―①오늘날 남북 각각의 소속감(혹은 공동체성)은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가? ②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한국 주민과 탈북민의 인식은 어떠한가?―을 설정하고 그 답을 추론적으로 살펴본 뒤, 이어서 다양한 논의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포괄적 질문―북한적 소속감은 여타 한반도 제 문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을 제시했습니다. 




▲발제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동국대-서울대 학생들


남과 북은 분단 이래로 각각 특유의 국가적·민족적·사회적 공동체성을 형성했으며, 통일 이후에 꿈꾸는 공동체성의 형태도 상이합니다. 한반도적 공동체성은 학술적인 개념이 아니지만, 단편적으로나마 분단을 초월한 상태에서 국가적 내지는 한반도적 차원의 ‘우리’가 의미하는 바로 상정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우리’라는 정체성은 크게 세 갈래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시민적 정체성, 국가적 정체성, 민족적 정체성이 그것입니다. 시민적 정체성은 국가나 민족 등 배타성을 띤 소속감을 거부하고 다원주의와 포용적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국가적 정체성은 시민적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으나 이른바 한민족이라는 기존의 담론을 거부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지향한다. 민족적 정체성은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식의, 한민족으로서의 공동의식을 지향하는 정체성입니다. 광복절-건국절 논쟁에 빗대보면, 국가적 정체성은 건국절을, 민족적 정체성은 광복절을, 시민적 정체성은 광복절이나 건국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국절이라는 담론이 헤게모니화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북한의 경우, ‘우리’의 의미는 ‘우리식 사회주의’, ‘우리민족제일주의’ 등의 담론에서도 표현되듯 전통적인 민족의식을 계승하는 가운데 주체사상이 접합된 개념입니다. 북한에서 국민이나 공민의 개념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으며, ‘우리’의 지향점은 “수령의 위대성, 당의 위대성, 지도사상의 위대성”을 널리 떨치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의 실제 사회에서 이러한 정체성만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북한 주민들은 국가적·민족적 정체성이 점차 불필요하며, 개인적 생활이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북한 주민의 상당수는 국가적·민족적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북한적 소속감에 대해서는 한국 주민의 긍정적인 인식과 부정적인 인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탈북민의 정체성에 대한 한국 주민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인식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민족적 정체성은 상당부분 쇠퇴하여 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사회 전체적 인식의 일환으로 파악하기에는 미약한 수준입니다. 국가적 정체성은 강할수록 탈북민에 대한 반감이 크고, 시민적 정체성이 강할수록 탈북민에 비교적 반감이 적은데, 이는 탈북민을 탈북민이 아니라 이주민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인식차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런데 다문화 사회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탈북민에 대한 친근감보다 적대감과 연결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문화다양성에 대한 옹호가 민족성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세대별 논의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었는데, 20대와 30대 세대에 가까워질수록 민족적 정체성이 감소하고 시민적 정체성 및 문화다양성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상승하여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탈북민들의 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인식은, 김련희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북한적 소속감이 탈북민들에게서 가장 크게 유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지표입니다. 탈북민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 후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상이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한국 주민들의 배타성에 어려움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따라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가치를 상실하여 대체로 북한적 소속감에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이는 타 문화로 유입된 이주민에게도 보여지는 현상입니다.



▲발제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동국대-서울대 학생들


다만 탈북민들은 남한주민에 비해 북한주민에게 더 큰 호감을 보이고, 탈북민들은 연구에 활용된 친절성, 근면성, 온화성, 배려성, 개방성, 신뢰성 등 6개 분야 모두에서 남한주민보다 북한주민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남한주민들의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탈북민의 남한주민들에 대한 인식보다 부정적인 가운데 탈북민 스스로가 탈북민에 대한 남한주민의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받아들일수록 탈북민들의 북한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은 강화됩니다. 이는 한국 내 탈북민 사회에서 북한적 소속감이 미약하게나마 존재하고 있으며, 향후 남북관계가 진전되거나 통일, 탈-분단이 가속화될 경우 북한적 소속감이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북한적 소속감은 미약하게 잔존하고 있어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는 없으나, 확대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발제문에서 한국 주민이 북한적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다루지 않았는데, 이는 앞서 잠시 언급했듯 북한적 소속감이 탈북민들에게도 미약할 수밖에 없는 만큼 한국 사회에서 북한적 소속감이 금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북한적 소속감과 가장 밀접한 주장을 펼쳤던 70~80년대 이른바 NL계열의 주사파는 민주화 운동의 큰 축을 담당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배척되었고, 그나마도 90년대 이후 북한바로알기운동 이후 파악된 북한에 대한 객관적 정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빨갱이’, ‘종북’ 프레임을 이겨내지 못해 소멸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북 적대감이 심화된 오늘날 한국 주민이 북한적 소속감을 말하는 것은 구태여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왜 불가능한가를 다방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북한적 소속감이 불가능한 것이 단순히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적 문제 때문인가? 혹은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때문인가? 반공주의의 잔재 혹은 분단체제의 억압성이 작용하는가? 진보진영의 반성처럼 전략적 실패인가? 혹은 적대적 국가 사이에 교차적 소속감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적 소속감을 한반도 제 문제와 연결시켜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사상체계와 관련해서는 북한 관민의 북한적 소속감의 차이를 살펴보며 북한 사회적 결집성을 판단해볼 수 있고, 통일이나 탈-분단과 관련해서는 한반도적 공동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북한적 소속감의 역할을 가늠하며 남북의 사회적·내적 통합을 재정의해볼 수 있고, 남북교류와 관련해서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적 소속감과 남한적 소속감의 병행 가능성을 짚어보며 남북교류의 방향을 그려볼 수 있으며, 북한위기론과 관련해서는 북한위기론 기저에 깔려있는 한국 사회의 사유체계와 북한적 소속감의 관계를 살펴보며 북한위기론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고, 이념과 관련해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북한적 소속감의 양립 가능성을 생각하며 통일 이후의 이념적·사상적 지평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적 소속감은 비록 학술적으로 논의된 바 없지만, 김련희씨가 불러일으킨 문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논의들을 계발하고,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통일 및 탈-분단에 대해 보다 심화되고 확장된 사유가 가능합니다. 북한과 통일을 공부하는 일이 현상에 대한 정확하고 정밀한 진단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면, 북한적 소속감에 대한 논의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세미나에 함께한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학술동맹, 서울대학교 한반도문제연구회 학생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