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학술세미나: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 과정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 9월 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북한미술 어제와 오늘’ 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했는데요. 쉽게 접하기 힘든 ‘북한미술’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인 만큼 직접 다녀왔습니다. 공동 주최측인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광복 이후 북한에서의 한국미술사 연구동향 및 남한의 북한미술에 대한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통일을 위한 남북문화교류협력의 장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개최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세미나는 북한의 한국미술사 연구(1945~2015), 남한의 북한미술사 연구(1990~2015),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 북한의 미술정책과 담론의 네 가지 주제로 각 논문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앞의 두 주제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어서 비교적 다가가기 쉬운 주제인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과 ‘북한의 미술정책과 담론’ 발표 내용을 두 편에 걸쳐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과 홍지석 단국대학교 연구교수의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 발표 내용을 다뤘습니다.
논문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에 의하면, 북한에서 미술작품은 단순히 예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교양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정체성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의 생산과 수용 방식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방식과 상당히 다른데요. 북한 미술의 생산과 수용은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각 단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 미술에서 미술작품은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에 기초한 사상적내용과 아름다운 조형적형식의 결합으로 간주된다. 자신들의 사회주의미술은 “사상성의 선차성, 그리고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술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은 사상적내용의 표현형식으로 중요시함으로써 높은 사상예술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은 그들에게 “위력한 무기”다. – 박영정, 홍지석「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
1. 조선노동당에서 규범 제시
북한의 미술가들에게는 당 정책에 기여하는 미술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미술 활동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미술 작품은 당에서 제시한 규범에 따라 생산되는데요. 특히 북한의 문화예술 사업에서는 ‘3위1체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당의 선전선동부, 내각의 문화성(문화예술부), 조선문화예술총동맹(문예총)이 삼위 일체가 되어 문화예술 사업을 지도한다는 것입니다.
당, 문학예술행정기관, 문예총이 ‘3위1체’가 되어 문학예술부문 사업에 대한 지도와 방조를 강화할 데 대한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당이 “앞으로!”하고 구령을 내리면 ‘문화예술부’를 비롯한 문학예술행정기관들과 문예총 중앙위원회에서도 “앞으로!”하고 구령을 내립니다…당 중앙위원회 선전부와 문화예술부를 비롯한 문학예술행정기관들, 문예총 중앙위원회에서는 잘 협의하여 문학예술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총적인 투쟁목표를 세우고 이에 기초하여 각기 자기 기관의 기능과 특성에 맞는 동원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 김정일,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창작성과에 토대하여 문학예술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이러한 원칙에 근거하여 당은 중앙위원회의 선전선동부를 중심으로 미술 작품 창작 규범과 창작 계획을 설정하고 이를 조선문화예술총동맹(문예총) 산하 조선미술가동맹과 창작사에 전달합니다.
2. 조선미술가동맹에서 생산자 확보 및 육성
당에서 창작 규범과 창작 계획을 제시하면 조선문화예술총동맹(문예총) 산하 기구인 조선미술가동맹에서는 생산자를 확보하고 육성합니다. 문예총 산하에는 조선미술가동맹을 비롯하여 조선작가동맹, 조선음악가동맹, 조선영화인동맹, 조선연극인동맹, 조선무용가동맹, 조선사진가동맹이 운영되고 있는데요, 조선미술가동맹은 1946년 발족된 기구입니다. 산하에 중앙위원회 및 시도위원회를 두고 있고, (조선화, 유화, 출판미술, 조각, 공예, 무대미술, 평론, 산업미술, 서예) 분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미술가들은 조선미술가동맹에 가입해야만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데요. 조선미술가동맹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상교양: 미술가를 대상으로 북한 미술의 ‘주체성과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을 철저히 옹호고수하고 제국주의자들의 부르주아 반동문화와 온갖 반동적인 미술 조류들의 침습을 반대하여 투쟁하도록 교양’한다.
2. 창작지원: 미술가들이 ‘인민들을 혁명과 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도록 한다.
3. 성과홍보 및 인재양성: ‘주체미술 건설과 미술작품 창작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내외에 널리 소개 선전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과 광범한 근로자들 속에서 자라나는 신인들을 선발육성하기 위한 사업’을 조직 진행한다.
4. 교류사업: 남북, 해외 미술가들의 단결을 도모하여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미술활동에 참여한다.
5. 대외선전: 북한의 ‘주체미술을 대외에 선전하며 다른 나라 미술가들과의 친선과 교류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
정리하면, 조선미술가동맹은 동맹에 등록된 미술가들을 관리하고 실질적인 미술 사업 전반을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구체적으로는 미술가들의 사상을 교양하고, 창작을 지원하며,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기능을 하는 한편, 이들이 작품을 생산한 뒤에는 성과를 홍보하고 대외선전사업을 진행하는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창작사에서 미술 작품 생산
조선미술가동맹에서 생산자를 확보하고 육성하면 이에 따라 미술 작품을 생산하게 되는데요. 창작사는 실질적인 생산공장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조선미술가동맹이 대한변호사협회라면, 창작사는 변호사가 실질적으로 소속되어 근무하는 로펌인 것이죠. 미술가들은 창작사에 출퇴근하며 미술 작품을 생산하고 매달 급여를 수령합니다.
창작사는 1970년대 초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여 현재 중앙에는 만수대 창작사, 고려미술창작사, 중앙미술창작사 등이, 지방에는 강원도미술창작사, 개성시미술창작사, 남포시미술창작사, 라선시미술창작사 등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만수대 창작사는 북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창작사로, 약 2만 평 규모의 부지에 미술가 천여 명을 포함하여 4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요. 산하에 공예창작단, 도자기창작단, 동상제작단, 미술기재제작단, 유화창작단, 조선화창작단, 벽화창작단 등이 편성되어 있어 각 분야의 작품을 생산합니다.
4. 미술 작품 검열
미술 작품이 창작된 뒤에는 검열을 거치게 되는데요. 북한은 개별적인 작품에 대해서도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의 승인 없이는 한 점의 미술 작품도 배급될 수 없습니다.
“창작지도에서 개인의 독단과 취미, 주관주의와 관료주의적 경향성을 철저히 없애고 민주주의적 원칙을 철저히 지키게 하여 창작가들의 개성이 높이 발양되도록 한다” – 김교련, 『주체미술건설』
심의기구로는 당 선전선동부 산하에 문학예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가 운영되고 있고, 문학예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산하에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가 미술작품의 심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는 다시 조선화, 조각, 공예 등 세부 분과로 나뉘어 심의를 진행합니다. 미술 작품이 생산된 후 거치게 되는 심의 과정은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창작사 및 내부기관 심의
2단계: 해당 행정구역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심의
3단계: 출판지도국 심의
보통 2단계를 거쳐 전시되지만, 미술 작품이 출판될 경우에는 3단계 심의를 추가로 거칩니다. 이와 별개로 작품이 창작되기 전 창작 계획 단계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창작 계획을 당에 제출하여 비준 받아야 합니다.
5. 전시 및 출판
위와 같은 절차를 모두 거치면 전시되어 대중에게 공개되거나 출판물 형태로 공개되는데요. 북한은 체제 초창기부터 대중의사상교양을 위해 대중을 대상으로 국가미술전람회, 가두미술전람회, 조선인민군 군무자미술전람회 등 전람회(전시회)를 개최해왔고, 1954년에는 3천 3백평 규모의 국립중앙미술박물관(현 조선미술박물관)을 개관하여 미술 작품을 전시해왔습니다. 이외에도 1958년부터 1964년에는 100차례에 걸쳐 공장기업소, 협동농장 등을 대상으로 이동미술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논문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에서 소개한 북한미술의 생산과 수용 과정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북한의 미술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어떤 채널과 방식을 통해 수용되는지 알 수 있어 매우 유익했던 발표였습니다. 제9기 대학생 기자단 이화여자대학교 유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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