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인권연구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독일의 전환기 정의 경험과 북한인권> 심포지엄이 지난 7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SSK인권포럼, 헤코가 함께한 이번 심포지엄은 2회의에 거쳐 진행되었습니다. 기사는 두 세션에 맞추어 ①비밀경찰 인권범죄와 처리과정, ②동서독 통합 과정과 북한 전환기 대비 시사점을 주제로 나누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란 ??
전환기 정의에 관한 논의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반, 주로 중남미와 동유럽 지역이 정치적 전환을 겪는 동안 정의에 대한 진전된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처음 대두되었다. 당시 인권운동가들과 여러 인사들은 과거 정권들에 의한 체계적 인권유린문제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고,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변화로부터는 탈선하지 않는 가운데 정치적 전환을 계속 강화할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변화들은 대중적으로 '민주주의로의 전환' 으로 불리었기에 사람들은 이처럼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주제를 '전환기적 정의' 또는 '전환기 정의'로 부르기 시작했다.
채택된 전환기 정의 조치들에는 주로 과거 정권 지도자들에 대한 형사기소, 국가기록보존소 개소와 공식적인 진실위원회 설립과 같은 진실규명 작업,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프로그램 마련, 공직자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조사 등이 포함되었다.
출처 : What is Transitional Justice? A Backgrounder, United Nations Peace-buliding, Feb 2008
번역 :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오유나 연구펠로우 / 감수 : 이영환 국장
△ 심포지엄 시작 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참석자들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환영사
헌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북한의 전환기 상황에 대한 역량이 우리에게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통일은 단순히 휴전선에 있는 무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출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전환기 정의 실현에 미리 대비해야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심포지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환영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인권기구로서 남북관계 진행상황과는 별도로 북한 인권상황에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인권기구입니다. 인류 보편적 문제인 인권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논의해야만 하는 피해보상, 가해자 처벌 등 폭넓게 접근하고, 행동 계획 내용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인권 보장 마련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이 논의가 시작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통일의 경험이 선결된 독일의 전환기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 추미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의 축사
추미애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의원은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 인권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한반도에서 남북을 가로지르고 있는 분단의 장막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본질적인 통합이 요구됩니다. 그 바탕에는 북한 인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이러한 심포지엄이 열린 것입니다."
더불어 인간을 철저히 사회적 존재로 정의하는 북한 체제의 문제를 짚으면서, 이러한 특수성에 보다 심층적인 고민과 접근이 요구됨을 강조했습니다.
◇ 1회의 : 나치 독일과 동독 비밀경찰‧정보기관의 인권범죄와 처리과정
△ 1부 발제의 찰스 폰 덴코프스키
찰스 폰 덴코프스키는 <나치 및 동독 시기에 자행된 독일에서의 인권 침해와 불법 폭력에 대한 전환기 처리 - 바람직한 북한의 전환기를 위한 범죄학적 제언>을 주제로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국가범죄는 전환기 정의 국제센터의 개념을 차용해 '심각한 인권 침해의 유산들을 시정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들에서 시행된 일련의 사법적 및 비사법적 조치들, 이러한 조치들은 형사 기소, 진실위원회, 배상프로그램,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제도적 개혁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연구에는 국가범죄 내용과 나치치하의 비밀경찰- 동독 비밀경찰의 비교가 주로 이루었고, 그 과정은 어려웠으나 북한 안전보위부와의 비교도 살펴보았습니다.
독일 제3제국 시기에는 대량살상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들이 곳곳에서 자행되었습니다. 폴란드-러시아에서 대량살상, 이탈리아에서 국가범죄가 자행되었고 독일 내에서는 수용소뿐만 아니라 수용소 밖의 사회 내에서도 국가범죄 행위가 자행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1932년부터 프러시안 경찰로 활동했던 정치경찰이 게슈타포로 변환하게 되면서 일반 경찰 제복을 입은 '형사 경찰'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내의 일반 국민들에게도 국가범죄를 자행했는데, 묵살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
국가범죄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매일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유대인들의 삶을 단속했습니다. 제 3제국 독일 영토 내에서 자행되었던 나치경찰의 반인륜적 범죄가 정적들을 탄압하고 제거하는 것에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독일의 경찰들이 유대계 독일인들을 거리로 내쫒아 기차역으로 끌고 강제로 해외로 추방시키는 사례들도 존재했습니다. 경찰들은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 학살)를 도우며 명백히 참여한 것입니다.
내부 경찰범죄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 부분이 북한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후에 이들을 포함한 많은 경찰들이 재판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의 결과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공소시효가 정해진 독일의 특별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공소시효가 경찰들에게 적용되었다고 학계 문헌에 분명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폴란드 대량살상 범죄에 대한 재판을 제외하고는 특별법에 의해 온전한 재판이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독일내에서 경찰들이 저질렀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의의 심판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경찰의 의무를 계속해서 이어가기까지 했습니다.
△ 발제를 경청하는 참석자들
독일의 경찰과 인권착취를 동독 공산주의 정권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이 또한 '슈타지(Stasi)' 로 정의되는 비밀경찰이 존재했습니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와 비슷한 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정권의 규정들을 엄밀하게 적용했고 인권착취를 자행했습니다. 이들이 경찰제복을 입고 있는 보통 인민경찰을 도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1945년에서 1949년까지의 독일 경찰들이 자행했던 범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여러 국경에서 자행되었던 국가범죄들도 존재했습니다. 슈타지는 게슈타포와 같은 역할로, 첩보이면서 경찰인 아주 위험한 특성을 가졌습니다. 불법행위를 자행할 때 경찰 권력으로 즉, 합법적으로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기에 이르렀고, 폭력적인 취조와 수사를 자행했습니다. 피의자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피의자의 모든 감정을 박탈하고 특히나 동독을 탈출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자택을 임의로 수사하고 도청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슈타지는 독일 국민들에게 강제 노동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포츠담 역사연구센터가 세워지게 되면서 강제노동과 납치에 대한 진상규명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불법적 즉결체포, 1989년 거리 선동을 이유로 무차별 구타, 미동이 불가능한 독방에 감금 등 인권유린이 자행되었습니다.
동독 내부에서 이루어진 국가범죄는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관계를 모두 끊어버리고 고립시키고 고문의 수단으로 암을 발병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여 누구에서 누구로 옮겨가는지, 어떤 문서를 어디로 전달했는지까지 추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여러가지 심리적 압박감과 상처, 고통, 자녀들에 대한 염려, 위협으로 인민경찰은 슈타지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연구를 진행했던 2002년까지도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경우 정부가 저지르는 범죄를 보면, 통일을 이룬 후에도 그 상처와 트라우마는 엄청나고 또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범죄를 재단하는 것에 있어 공소시효 범위도 논의해야할 것입니다.
독일과 같은 경우 통일 이후에 과거 국가범죄에 대한 약 7만 건의 기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중 142건의 슈타지 범죄만이 기소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제 구형이 된 것은 62건, 나머지 38건은 실제적 구금이 되었고 37건의 경우 보석으로 풀려나고 가택연금의 수준에 그쳤습니다. 역사에 비추면 상당히 작은 규모의 성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시민 라운드 테이블이 개최되었고, 다양한 피해자들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도화되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과거사 청산을 위해 노력했던 것 중에 긍정적인 측면은 추모관, 기념관의 건설입니다. 베를린에서 유명한 추념 홀이 대표적이죠. 북한도 이와 같이 이런 추모관 기념관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상의 장소가 추모의 장소로 변환하게 되는 것이죠. 다양한 연구프로젝트가 현재도 집행되고 진행되고 있는데요,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슈타지의 고문행위가 가정을 파괴했으며 심리적 트라우마 등으로 사회관계를 어렵게 한 모든 것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 또한 통일 이후 북한 내부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에 의해 트라우마에 빠진 피해자들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 이후에는 피해자들을 상담치료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통일 안건이 될 것입니다. 또한 처벌에 있어서는 저급관료에서부터 고급관료까지 모든 전체 조직을 살펴보아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일에서는 모든 부정을 처벌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부디 이런 비극이 북한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실규명화해 위원회가 있어야 하고 연구를 진행해야하며, 피해자 배상과 공소시효 규정에 있어 국내외적 연구가 또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의 입장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수용소, 경찰소 등 다양한 고문 장소가 추모 기념홀 등으로 변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피의자, 범법자들을 단순히 배제시킬 수 없습니다. 단순한 사면이 아니라 온전한 책임과 반성, 회개가 존재할 때 사회로 복귀시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사회에 복귀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통일한국의 치안을 고려하여, 이들이 음지화 되어 범죄그룹이 되는 것을 막아야합니다. 건강한 통일을 위해서 통합과정에 이 모든 것들을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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