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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통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통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

  지난 7월 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금강산관광재개와 피해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금강산기업인협의회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국회의원이 함께 자리했는데요.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홍익표 의원입니다. 홍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북한·통일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에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한 전문 연구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통일부 정책보좌관 등을 지냈습니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당내 기구인 ‘남북관계개선 및 통일위원회(이하 통일위원회)’의 간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남북관계와 북한·통일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통일부 대학생 기자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홍 의원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흔쾌히 장시간의 인터뷰에 응해주었습니다.

△금강관 관광 재개 촉구 기자회견에서 연대사하는 홍익표 의원(사진=하준호)△금강관 관광 재개 촉구 기자회견에서 연대사하는 홍익표 의원(사진=하준호)

 

1980년대 중후반의 시대적·사회적 배경에 큰 영향 받아


 홍익표 의원이 대학생이던 1980년 중후반은 우리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폈는데요. 홍 의원은 7·7선언이 남북관계·통일문제·북한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7·7선언, 즉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특별선언’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것으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북방정책과 대북 유화정책을 표명한 선언입니다. 이는 탈냉전시기와 맞물려 학생들 사이에 통일논의가 봇물 터지듯 확산되던 가운데 발표되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1989년 3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당시 육군사관학교장(중장) 민병돈이 노태우 대통령의 면전에서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을 비판하는 식사(式辭)를 한 뒤, 졸업생 대표 생도의 경례도 받지 않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죠. 

△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을 보도하는 신문기사(출처=통일뉴스)△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을 보도하는 신문기사(출처=통일뉴스)

 홍 의원은 또 대학교 4학년 시절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故 조영환 교수(당시 애리조나주립대 정치학과)를 소개하며 “1세대 재미교포 학자이자 중국전문가이셨던 조 교수님이 한양대에 교환교수로 오셨을 때, 실제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하신 그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이런 환경들이 내가 북한·통일 분야에 대해 여러 가지로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 실무 보좌... 북측 사람들이 그렇게 비합리적이거나 일방적이지는 않아

 홍익표 의원은 자신이 간사로 있는 당내 통일위원회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홍 의원은 통일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정당은 수권(受權)을 준비하는 것이 기본 핵심인 만큼 당 차원의 외교안보정책과 통일정책, 대북정책 등에 대해 정책적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분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소통하는 것이 주요 임무”라고 설명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홍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기억나거나 느꼈던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북한과의 대화가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북측과의 회담을 통해 느낀 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북측 사람들이 그렇게 비합리적이거나 일방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 6월 9일 남북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서 악수하는 천해성 당시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오른쪽)과 김성혜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출처=월간조선)△2013년 6월 9일 남북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서 악수하는 천해성 당시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오른쪽)과 김성혜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출처=월간조선)

 특히 “우리사회에서 북한을 이해한다고 하면 마치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회담의 기본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계를 좀 인정하는 속에서 회담을 하면 대화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당시 실무 담당자로서 느꼈던 남북 간 대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당시 홍 의원은 대통령을 따라 방북하지는 않았고 서울 상황실에서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미 한 차례의 남북정상회담(2000년)을 경험했기 때문에 실무를 담당한 통일부로서도 회담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며 “한여름에 휴일도 없이 밤새가면서 일했던 기억이 나는데 나름 보람이 있었던 기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권 말미에 정상회담이 이뤄져 남북 간 합의가 정권 교체 이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합의의 정신과 모멘텀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홍익표 의원(사진=하준호)△질문에 대답하는 홍익표 의원(사진=하준호)

 

상호 간의 격이나 급을 따지지 말고, 접촉면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해


 홍익표 의원은 남북국회회담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해왔습니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우리나라의 국회) 대의원(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실질적인 국민의 대표로서 일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과는 다르게 단순히 찬반투표라는 명목상의 선거를 통해 선출됩니다. 그런 그들과의 대화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 마련이죠. 북한의 모든 정부기관은 노동당의 입장을 관철하고 따라간다는 점에서 남북국회회담이 그저 1회성 이벤트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자 홍 의원은 “우리 국회와 성격이 다르고 단순히 허수아비 기구라는 성격도 있지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우리나라 대통령에 준하는 국가원수의 역할을 하는 만큼 거꾸로 북한 내에서는 우리 국회보다 강한 힘을 가진 기구로 볼 수도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의회의 힘이 강하듯, 북한도 의원내각제적 특성을 가지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라는 의결기구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진단하며 “남북대화에서 너무 격이나 급을 따질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에서는 대화의 접촉면을 넓혀나가는 것이 관계개선 또는 상호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익표 의원(오른쪽)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사진=임은빈)△홍익표 의원(오른쪽)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사진=임은빈)

 홍 의원은 정부대표단으로써, 그리고 시민단체의 일원으로써 북측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들도 꽉 막히지만은 않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요. 그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면서 기본적인 시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측과 대화를 하러 나오는 북측의 인사들 또한 고도로 교육받고 훈련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경험적인 근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말했습니다. 1998년에는 배로만 가던 금강산관광이 2004년 하반기에는 숙박 프로그램을 포함한 여러 가지 관광 상품의 등장으로 다양화되고, 2007년에는 북측이 우리측의 설득을 받아들여 군사시설 밀집 지역이던 내금강을 개방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는데요. 그는 당시 우리 측이 내금강 개방을 요구한 이유는 금강산 명소의 70% 이상이 내금강에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홍익표 의원(오른쪽)이 임은빈 기자(왼쪽)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사진=하준호)△홍익표 의원(오른쪽)이 임은빈 기자(왼쪽)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사진=하준호)

 

‘통일이 우리의 미래’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어


 홍익표 의원은 청년들의 통일의식 제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청년세대가 통일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면서도 “우선은 통일문제나 남북관계문제에 대해 청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홍 의원은 남북 간 교류·협력과 통일 후 미래를 경제발전과 결부시키면서 “민족적인 문제라는 인식의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통일이 우리의 미래다’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통일이 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통일 한국에서 지금의 청년세대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며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특히 남북경협문제에 대해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나 민족적 당위성이라는 차원을 벗어나 우리의 일자리 문제, 젊은 사람들이 도전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한 여건들을 마련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거듭 말한 홍 의원은 “기성세대가 정쟁에서 벗어나 합의하여 밀고 나가기 시작한다면 젊은 세대는 당연히 거기에 동참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난 6월 새누리당 통일경제교실 시즌3에서의 롤프 마파엘 주한독일대사(뉴시스=중앙일보)△지난 6월 새누리당 통일경제교실 시즌3에서의 롤프 마파엘 주한독일대사(뉴시스=중앙일보)

 남북관계개선과 대북정책에 대한 소신에 대해서는 ▷북한의 변화는 교류·협력의 결과이지, 교류·협력의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북한의 비핵화는 정책의 목표이지만 거꾸로 실질적으로 핵을 보유한 북한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 ▷우리가 먼저 신뢰를 보여줌으로서 북한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 등의 3가지를 제언했는데요. 정치인이 아닌 학자로써 개인적인 입장임을 강조한 그는 “그래야만 우리 주도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6월 새정치민주연합 평화통일 아카데미(출처=홍익표 의원 블로그)△지난 6월 새정치민주연합 평화통일 아카데미(출처=홍익표 의원 블로그)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 앞에서 여야의 입장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방법론의 차이일 뿐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를 꿈꾼다는 점에서 둘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습니다. 홍익표 의원 외에도 여야를 통틀어 많은 의원들이 국회 내 위원회나 당내 기구 또는 의원단체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목받았던 새누리당 ‘통일경제교실’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평화통일 아카데미’가 대표적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청년들이 통일에 무관심한 세태에 대해 야단치고 충고하기보다 “기성세대의 책임”임을 강조하며 반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앞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대표인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청년들의 통일의식 제고를 위해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의 문제, 통일의 문제가 순항하도록 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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