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이산가족상봉행사의 조속한 개최를 기원하며② (부제: 국내 이산가족의 현주소)

남북의 형제가 기약없는 작별의 인사로 서로의 입을 맞추고 있다. 2010-11-01, ⓒ이산가족상봉 사진공동취재단

-

여러분에게 '이산가족'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저에게 이산가족은 분단의 아픔과 현실을 우리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거울로써 다가옵니다. 일례로 제가 언제부터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반추해보면, 그 시작점은 늘 '이산가족'입니다. 분단의 역사를 공부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마주한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의 현장, 그것은 정말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제 자신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분단국가 국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분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 꿈은 늘 변함없이 제 안에 머무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산가족'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저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산가족은 분단의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로서 우리가 왜 통일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 당위성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산가족은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세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 아파해야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산가족'을 통해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저의 일화처럼, 오늘 기사가 여러분들이 통일문제 한 걸음 다가가는 작은 동기부여가 되기를 소원해봅니다. 지난 기사에서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초점을 국내 이산가족에 맞춰 그 현황을 다양한 항목별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국내 이산가족 현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국내 이산가족에 관한 모든 사항은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이산가족 숫자는 상봉신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8년부터 집계되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가장 최근이었던 2014년 4월 30일까지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총 12만 9천 5백 16명입니다. 하지만 통탄스럽게도 이 가운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산가족이 가슴 속 분단의 한을 풀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현재 남한 내의 이산가족 생존자 수는 총 7만 3백 9십 명이며, 이 마저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국내 이산가족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산가족 현황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북한의 이산가족 현황은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상봉행사와 같은 특별한 경우 남한과 이산가족 생사확인 의뢰서를 주고 받기는 하지만 이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산가족의 현황을 알 수 있는 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1950년대 중반부터 이산가족(월남자 가족)에 대해 입당이나 취업은 물론, 주거를 제한한다거나 산간지역에 분산, 이주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차별화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러한 차별정책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북한은 이산가족에 한하여 직장선택이나 진학 그리고 군복무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차별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주민들 중 일부는 자신이 이산가족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비슷한 일례로 과거 상봉행사에 있어 남한가족이 북한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였지만 북한주민이 상봉행사를 거절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내부적인 이유 등으로 인하여 북한의 이산가족은 그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는 것 조차 많은 어려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죽기 전에 생사확인이라도 알고 싶다"던 이산가족의 인터뷰가 공연히 떠오릅니다. 이는 모든 이산가족의 가슴마다 품고있는 간절한 희망이겠죠. 마음이 참 무겁지만, 이분들의 작은 희망이 피어날 수 있는 여건이 하루 속히 남한과 북한사이에서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7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존재합니다. 여기서는 생존자 현황을 다양한 인포그래픽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산가족을 성별로 나누어 봤을 때 전체 이산가족 중에서 남성은 44,617명, 여성은 25,773명으로 각각 53.4%, 36.6%를 차지합니다. 즉 남성이 여성보다 약 1.7배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우려는 향후 이산가족 수가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남성의 평균수명은 78세, 여성의 평균수명은 84세이며 전 세계적으로 봐도 남성의 수명은 여성의 수명보다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현재 이산가족의 평균연령이 77.8세임을 고려해 볼 때 남성이 이산가족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이산가족 고령화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이산가족의 숫자가 급감하는 '잠재적 가속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이산가족상봉 행사 정례화가 시급한 수많은 이유들 중에 하나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출신지역별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산가족의 출신지역은 남한과 인접한 황해도가 23.3%로 타 지역에 비해 가장 높습니다. 뒤이어 평안도와 함경도 그리고 강원도와 경기도 순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면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이산가족 출신지역에 남한의 행정구역인 '경기도'가 있다는 것, 그리고 북한의 주요 행정구역인 '양강도'와 '자강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자신들이 관할하던 경기도 일부(장단군, 개풍군 등)를 황해도로 편입(1952)시켰고, 비슷한 시기 새로운 행정구역으로서 자강도(1949)와 양강도(1954)를 각각 신설하였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은 이산가족이 발생한 시점 이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산가족 출신지역 통계자료에 있어 '경기도'가 존재하고 '자강도'와 '양강도'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이산가족의 현황을 거주지별로도 정리해봤습니다. 북한과 거리상 가까운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이산가족이 압도적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20,347명)'와 '서울특별시(20,265명)', 그리고 인천광역시(5,857명) 순서로 나타났습니다. 즉 수도권지역에만 전체의 66%에 달하는 이산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타 지역에 거주하는 인원이 평균적으로 1천 500여 명임을 감안할 때 이는 굉장히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이산가족이 가장 적게 거주하는 지역은 '세종시(140명)'로 나타났으며, 이산가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경기도와 약 150배씩이나 차이가 납니다. 또한 타 지역보다 실향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강원도와 부산광역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사실입니다. 이렇듯 지역별 분포로 국내이산가족 현황을 살펴본 결과 이산가족의 지역적 분포가 비교적 균형적이지 못하며 특정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내 이산가족 현황을 살펴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7만 이산가족'. 어떻게 보면 많은 숫자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이산의 한을 가슴속에 꾹꾹 누르며 살아오신 60여 년 이라는 세월, 그리고 가족한번 만나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분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7만이라는 숫자가 하염없이 적게 느껴집니다. 현재 남아계신 분들이라도 상봉 행사를 통해 조속히 아픔을 덜어드려야 하지만 정치와 이념과 같은 제반 문제에 가로막혀 상봉 행사를 정기적으로 추진 할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는 이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아가지만 분단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비극의 경험이 전무한 세대입니다. 따라서 이산가족의 슬픔을 완전히 공감하는데 한계가 있고 우리의 어떠한 말로도 그분들을 위로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분들을 통해 분단의 참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직시하고 함께 아파하며, 이산가족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산가족을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어 죄송한 마음이 앞서지만  이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19차 상봉행사가 개최된지 벌써 4개월이 지났습니다. 설날에 맞춰 북한이 상봉제의 움직임을 보였듯, 오는 추석에도 같은 행동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올해가 가기 전 상봉의 길이 재차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상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 남궁바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