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주년 6.25 전쟁을 기억하며,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입니다.
춘천대첩은 6.25 전쟁 중 국군의 첫 대승이며 유엔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국군이 버틸 수 있도록 한 빛나는 전투입니다. 춘천시 근화동에 위치한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은 춘천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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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천대첩의 전개과정
<북한군의 침략방향> (출처 : 구글지도)
1950년 6월 25일 제2군단을 앞세운 북한은 중동부지역의 춘천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주하려고 하였습니다. 서울의 동쪽을 포위하기 위해 화천, 춘천 전방에 전차 연대와 12사단을 투입하였습니다. 당시 중부전선을 담당하던 국군 제6사단은 춘천에 7연대, 홍천 2연대를 배치하고 전방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소양강을 이용해 연대가 배치되었지만, 작전지역 방어준비가 미숙하였고, 병력의 1/3이 외박중이었습니다.
당시 6사단을 담당했던 김종오 대령은 화천과 양구를 통한 불시의 남침을 우려하여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동부전선도 서부전선과 같이 조기에 붕괴되었지만, 북한의 막강한 전차 화력에 굴복하지 않고 국군은 심일 소령의 전차 특공조 등을 통해 북한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참전했던 6사단 병력> (출처 : 세대공감 625)
전쟁 초기, 북한군은 국군이 퇴각하자 춘천을 쉽게 탈취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봉의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방어선을 편성하던 국군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이 포병 화력을 집중하여 공격하지만 38선의 회복을 위해 춘천의 관문인 소양교를 파괴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서부전선의 붕괴로 중부전선의 후퇴를 명령받게 되고, 국민이 피난할 시간을 위해 국군과 춘천시민, 경찰, 애국청년 및 학생들이 지원하여 마지막 피난로 소양교를 수호하였습니다.
춘천대첩은 북한이 서울을 점령한 후 3일 동안 춘천을 공세했지만, 북한의 전차 및 자주포를 포함한 대규모 손실을 입힌 한국전쟁 최고의 승리였습니다. 춘천대첩을 통해 북한의 적화통일의 전략이 상당부분 무너지게 됩니다.
2.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
춘천시는 2000년 6월, 6.25 전쟁 당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춘천대첩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소양강변에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공지천 옆 자전거 길을 따라 이어진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이하 공원)은 당시의 전적기념물과 기념비 뿐만이 아니라 소양강의 뛰어난 경치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입구를 따라 들어서면 당시 용맹했던 참전용사들을 형상화한 동상과 그 아래 춘천대첩의 진행상황, 결과 등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이 늠름하고 멋진 동상은 절대적인 열세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던 참전용사들의 용맹함을 볼 수 있습니다.
무공탑 학도병비
공원 안에 있는 무공탑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6.25 전쟁뿐만 아니라 월남전에도 참전한 무공수훈자들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입니다. 그 아래 있는 학도병기념탑은 춘천대첩 당시 전투를 이끌었던 국군 제6사단과 지원부대인 제16야전 포병대대를 도와 교복도 벗지 못하고 교가가 아닌 군가를 부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젊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기념비입니다.
(무궁화)
공원에는 여느 꽃이 아닌 무궁화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화이자 민족의 얼을 뜻하는 이 무궁화만큼 이 공원에 잘 어울리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춘천대첩 참전용사 인터뷰
<춘천대첩 참전용사 김홍수씨>
2013년 7월 27일 용산에서 열린 6.25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당시 춘천에서 전투를 하신 참전용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춘천대첩에 참전하신 김홍수 참전용사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기자단입니다 훈장이 3개나 있으신데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이게 화랑 2개 충무 1개. 전쟁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난 18세에 6.25 때 국군 처음 생겼을 때 자원해서 들어갔지. 6.25 당시 참혹했을 텐데 상황이 어땠나요? 아우 생지옥 이였지. 나는 이북까지는 환하게 보여 압록강까지 갔다 왔지 내가 이북에 갔을 때 어느 집에 갔는데 다 할아버지하고 할머니 밖에 없고 다 전쟁하러 나간 거야. 그리고 또 후퇴해서 이남에 내려오면 집에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소 한 마리만 있고 젊은 사람은 없었지. 당시 어느 전선에서 참전하셨나요? 나는 6사단 이였고, 춘천 오음리에서 만기제대했어 원주 탄약고에서부터 모포 하나 총 하나 주고 차에 태우는 거야. 그리고 춘천 봉의산으로 갔지, 거기서부터 전투가 시작한 거야. 다리 알아? 중공군이 끊어버린 소양강 다리? 그 때부터 내가 전투한 거야. 당시 오음리로 해서 화천으로 해서 쭉 올라갔지. 그 위로 가면 원산 넘어가는 고개가 있었어.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젊은 세대에게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빨리 남북통일이 이뤄져야지, 내가 제일 바라는 게 그거야. 빨리 왕래가 되었으면 좋겠어. 아직도 이산가족을 보면 나 울어요. 인터뷰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한 번 이야기 해주고 싶었어. |
인터뷰를 하고 나서 당시 치열했던 전쟁 상황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제일 바라는 것이 통일이고 이산가족을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던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습니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6.25 당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영웅들을 기억하며, 대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60년 전 평화를 지켰던 춘천이 평화적으로 통일의 대업을 이뤄갈 수 있는 축복의 도시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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