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건축학과 학생인 남주인공과 건축학 수업을 듣는 타과생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래서 영화 흥행 이후에 '건축학과'와 '건축'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건축', 쉽게 들리지만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건축'이라는 독특한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건축'으로 보는 북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요?
북한의 건축사 인식문제
북한의 건축역사는 북한식 일반역사의 시대구분을 철저히 따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건축을 위한 역사를 따로 서술하기 보다는 김일성-김정일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있는 일반역사를 기준으로 건축사를 서술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건축의 기술사나 양식사적으로 시대를 구분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일반사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역사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서술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회주의 국가의 공통된 역사관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본으로 여기에 우리민족의 역사발전을 가미하여 '주체적인 역사관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둘째, 일제에 의한 왜곡된 식민사관을 타파하고 '민족문화의 자존을 바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러한 북한의 일반사 서술의 목적에 따라 북한의 건축사 역시 이러한 내용을 수용하는 종속적 입장에서 서술됩니다. 때문에 북한의 건축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의 일반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을 기반으로 북한은 건축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또한 '건축'을 통해 바라보는 북한,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아래에서는 북한의 일반사와 연결하여 북한의 건축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아래의 북한 건축사에 대한 내용은 목원대학교 건축학부 이왕기 교수님 논문, '북한 건축의 연구'를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건축'으로 바라보는 북한
⑴일제강점기(1920년 후반~1945년)
북한은 현대건축의 첫 시기의 시작을 1926년으로 설정합니다. 왜냐하면 1926년은 김일성이 '타도 제국주의 동맹'을 조직하고 항일투쟁에 나선 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타도 제국주의 동맹'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이를 건축사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해 민족건축의 정상적인 발전이 억제되던 기간이었고, 한편으로는 북한이 미혼진밀영지, 마안산밀영지, 백두산밀영지 등 여러 곳에 밀영지를 만든 때 입니다. 북한은 밀영지를 중심으로 항일운동과 관련된 병영, 사령부, 훈련소, 막사, 나무에 새겨진 항일구호 등을 혁명사적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⑵해방 후 건국시기(1945년~1950년)
북한은 이 시기에 문학예술 및 과학분야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낡은 사상의 잔재를 없애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때문에 이 때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은 '근로자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고, 문화적일 뿐만 아니라 인민들의 민족적 정서와 현대적 미감에 맞는 형식을 띄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적인 것은 배제되어야 했으며 민족적 특성이 잘 발휘되는 건축활동이 강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건축 양식은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근로인민대중의 미학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합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을 따르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1947년 7월에 건립된 '모란봉극장'입니다. 북한은 이 극장의 구조와 색이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고, 정면에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하는 조각을 새겨 인민적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모란봉극장
⑶한국전쟁기(1950년~1953년)
북한은 이 시기의 모든 건축을 전시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들었으며, 특히 지하구조물을 많이 건설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모란봉 지하극장, 원산 신충지하극장, 원산 충정리영화관 등 극장과 영화관을 많이 건립했습니다. 북한에서 영화는 '인민대중을 사상적으로 무장하여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투쟁에로 조직 동원하는 사상적 무기'로 규정되기 때문에 영화는 주민사상교양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전쟁 중이라도 극장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⑷전후 복구시기(1953년~1960년)
이 시기에 북한은 전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동구권으로부터 공장건설과 도시건설을 위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평양시에만 35만㎡의 간선거리가 신설되었으며 기존의 거리가 새롭게 개조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북한은 이 시기에 동구권 건축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건축의 규모를 웅장하게 하고 대칭적인 형태를 많이 적용했습니다. 층고를 일반건축에 비해 높게 처리하고 벽체를 육중하게 만들었고, 처마와 창문의 변두리를 풍부하게 장식하여 기념비적인 효과를 최대한 표현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건축에는 평양역사, 국제여관, 대동문화영화관, 평양대극장, 옥류관 등이 있습니다.
▲평양역 |
⑸사회주의체제 정비시기(1961년~1970년)
이 시기에 북한은 지금까지의 건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그에따라 화려한 장식을 형식주의로 비판하고 설계단계에서의 낭비를 경계했으며, 장식을 배제하고 재료를 규격화하여 사용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으로는 소년학생궁전, 소년단야영소 등이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동구권 건축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함께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건축물들을 건설했는데, 이를 위해서 대규모 주택과 인민대중을 위한 공공시설물을 많이 건설했습니다.
▲소년학생궁전
⑹사회주의 우월성 표출시기(1970년~1980년대 전반)
북한은 이 시기에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강조하며 사회주의 경제토대를 강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때에 건축은 하나의 예술로 생각되었고 창조적인 형식이 요구되었습니다. 특히 김정일이 지도층으로 부상하면서 건축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데, 김정일은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건축창작도 반드시 비반복적이어야 한다."는 제안을 하며 많은 건축자들에게 창작성을 강요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거대한 건축물과 기념비들이 많이 건축되었는데 이것은 김정일이 거대 건축물을 통해 아버지인 김일성의 유일사상을 고취하고, 자신의 행적을 전 인민에게 확고히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에는 만수대 대기념비, 왕재산 대기념비, 김일성경기장, 혁명열사릉, 주체사상탑, 평양개선문 등이 있습니다.
▲왕재산 대기념비 | ▲주체사상탑 |
지금까지 북한의 건축을 북한의 일반사에 비추어 살펴보았습니다. 북한의 건축에는 그들이 강조하는 인민, 주체, 우상화의 개념들이 고스란히 적용되어있습니다. 이는 북한체제가 강조하는 사상과 신념이 일상생활이나 사회문화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사상교육을 통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주변의 건축물들을 통해 생활 속에서 체제를 끊임없이 인식시키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 주민들이 체제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북한의 건축에도 그들의 사상과 체제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미래의 남북 건축양식을 어떻게 맞춰갈 것인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특히 북한의 우상화를 위한 건물이나 기념비는 남북의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남북의 건축을 통합하고 정비하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 기사에서는 '건축, 남북교류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그 동안 남북이 '건축'이라는 통로를 통해 진행해 온 교류협력에 대해 짚어볼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북교류협력을 재발견하고, 남북건축교류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해주시길 바라며, 이상으로 이숙미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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