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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경찰학과 재학중인 한 탈북 대학생의 꿈

경찰학과 재학중인 한 탈북 대학생의 꿈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년 최우주 군의 남한 생활 정착기

 

 

제가 탈북하여 남한으로 오게 된 동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먼저 탈북하신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중학교 6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다니고 있던 중, 탈북하여 중국에서 지내시다가 한국에 먼저 입국한 아버지가 제가 군대에 입대하기 몇 달 안 남았다는 것을 아시고 군대에 나가기 전에 저의 가족과 저를 탈북 시켜 한국으로 데려오시려고 북한에 살고 있는 저희 가족한테 연락을 보내 왔습니다.
탈북 한다는 자체가 거의 역적 수준으로 처벌이 가해져서 엄청난 두려움 때문에 저희 가족과 저는 탈북하려는 엄두도 못 냈고, 먹고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저의 가족과 저는 탈북하려는 생각이 별로 없었으나 아버지의 간곡한 여러 번의 설득 끝에 힘겹게 두만강을 넘어 탈북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탈북하게된 두가지 이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17살까지 살면서 고향 밖으로는 벗어나 본적 없는 저에게 있어서 나라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비록 많은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다는 희망과 설렘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가족과 저는 한국으로 가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시기에 북한에서는 한국행이 아니고 단순한 중국으로의 탈북은 그리 무거운 벌이 가해지지 않아서 두만강을 건너려 하는 순간에는 그리 두려움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여러 가지 동기가 있었겠지만 제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탈북 동기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크게 두 가지였다고 봅니다.

저는 탈북하여 중국의 한국영사관에서 1년을 보내고 2005년 11월에 한국으로 입국하였습니다. 1개월 정도의 조사와 하나원에서 3개월 기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2006년 3월초 한국사회에 새 출발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하나원에서 교육과정중에 있을 때에는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여서 사회에 빨리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서 3개월이라는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었지만 정작 사회에 나오니 아무 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어서 겁부터 났습니다.

초기 서울 생활, 사막에 대책없이 서 있는 느낌 

서울 시내의 콘크리트 바닥이 삭막한 사막 같았고 저는 그 사막에 아무 대책이 없이 서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도시생활을 난생 처음 접하게 된 저는 집에서 밖으로 나와 주변 구경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려 못 찾고 방황한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한동안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서는 돌아다니지 못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리버리 길도 제대로 모르던 때에 사회에 나와서 1주일 정도 조금 지나서 부모님이 바로 저를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시켰습니다. 또한 학교에 입학하여 보니, 아는 친구도 전혀 없었고, 같은 학년 급우들 보다 나이도 1~2살 정도 이상이어서 쉽게 다가서기가 힘들었고, 탈북학생은 저 혼자여서 학교생활에 대해 도움 받을 선배도 없었습니다.

또한 북한에서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지라 막상 고등교육을 접하고 나니 정말 눈앞이 캄캄한 게 맹인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오기로 하루하루 버텨낸 학교생활

이러한 큰 문제에 부닥치고 나니 빨리 자퇴해서 대안학교로 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 들어서 정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만 더 견뎌 보자는 오기로 하루하루 학교생활을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점차 적응 되어 갔습니다. 제가 편입된 학급은 급우들도 모두 너무 좋았고 담임 선생님도 너무 좋고 다정하였습니다. 제가 자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어지도록 여러모로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반 급우들에게는 제가 먼저 경계 하는 마음을 열었고, 또, 탈북학생이라는 것을 아예 처음부터 밝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허물없이 물어 보고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급우들도 경계하는 마음을 열고 저를 도와 줬고, 제가 나이가 급우들보다 2살 많아서 형, 형, 하면서 따라줬습니다.

탈북학생을 처음 접하게 된 급우들은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고 저하고 북한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는 급우들에 대해 저는 제가 경험하고 북한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을 얘기해주며 친해졌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급우들과도 친해지고 고등학교 생활도 적응해 가니 자퇴를 안 하고 버텼던 제 자신한테도 뿌듯했고, 학교를 안가면 왠지 허전할 정도로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짝꿍과 선생님들 도움…눈이 트이고 귀가 뚫려

공부도 처음에는 아예 몰라서 책을 펴놓고 낙서만 했었는데 점차 짝꿍한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며 배웠고, 여러 과목 선생님들도 제 사정을 아시고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쉬운 교재도 구해 주시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흔쾌히 가르쳐 주셔서 한 달 두 달 지나면서부터 눈이 트이고 귀가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때에는 담임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 급우들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3년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깨달았는데, 나 자신이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한 학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한국 학생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기보다는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한국 학생들을 대한다면 한국 학생들도 제가 탈북 학생이라는 생각조차 잊고 편하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학년 재학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1학년 재학 중에 있는데 감사하게도 탈북학생 이라는 이유로 국가와 학교의 지원으로 등록금을 전액 면제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캠퍼스 생활의 기대와 통제적이던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대학생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 벅차고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학 생활이 그리 자유롭고 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저의 학과 특성상 규율이 심했고 고등학교 때에 미처 부리지 못한 멋도 못 부리게 되었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너무 많아서 왠지 억압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과로 전과하려는 맘도 품고 있었지만 저의 꿈과 미래를 생각하면서 학과규율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동기들과 같이 서로 격려하며 버텼습니다.

그리고 탈북해서 한국에 입국했던 과정을 생각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 정도의 고난에 포기하려고 사선의 경계선을 넘어 지금 여기까지 와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힘이 들 때 마다 견뎌냈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면서 학과 분위기에 적응하고 나니, 나름 학과 생활이 견딜만해졌고 대학 생활에도 거의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과생활이 재미있고 대한민국 경찰학 분야에서는 최상의 학과라는 자부심을 갖고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고등학교 때처럼 바로 제가 탈북학생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있었는데 한두 사람씩 알게 되면서 이제는 학과 동기들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동기들과 친해지는데 별 걸림돌 안돼

탈북 학생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동기들이 모두 전국각지에서 모였고, 서로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서먹서먹한 상황에서 미리 말하면 친해지는데 조금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아서 차차 좀 친해지면 말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동기들이 입학하고 보름 조금 지나서부터 다 알게 되었고,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친해지는데 별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제일 큰 난관은, 대학은 고등학교 때처럼 담임 선생님 같은 분들처럼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당장 강의 들으러 가야 되는데 강의실도 찾기 힘들었고, 리포트도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써야 되는지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한국학생들과는 아직 여러모로 수준차이도 나고 대학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낙담하고 있는 내 자신을 상상해보면 너무 한심해 보일 것 같았고,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몰라서 어리버리 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그때보다 여건이 훨씬 더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제부터 하나하나 배워 가면 된다고 제 자신을 위로하고, 동기들한테서 도움받고 같이 입학한 탈북학생 친구랑 같이 서로 아는 정보를 교환하면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고 나니 이제는 대학생활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 해야 될지 거의 다 알게 되었고 학과 동기들과도 잘 어울려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빨리 성공적으로 적응하는데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통일한국의 첫 경찰청장이 되고 싶다

지금은 저의 꿈인 경찰관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경찰이 되어서 한국 법제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 탈북민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아직 탈북민 중에는 경찰관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하여 탈북하여 한국사회에 새롭게 정착한 탈북자중에서 제일 먼저 경찰관이 되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이 되는 것이 한국에서 나서 자라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과정이어서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선택하고 나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이미 내 자신이 선택했기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미래에 제가 하고 싶은 일들과 경찰복장을 한, 멋있어진 저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걱정이 사라집니다. 또한, 나에게는 아직 비교적 젊은 나이와 건강한 육체가 있어서 나라고 못할 것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걱정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저는 통일이 되면 한국과 북한과의 경찰제도가 서로 달라서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보고 남북한 경찰권 통합문제에 대한 연구를 하여 통일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경찰이 된 후, 통일이 되면 통일 한국의 첫 경찰청장이 될 꿈도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