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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 안보여행 6 탄. 백마고지 위령비

#. 안보여행 6탄. 백마고지 위령비에 이르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통일부 상생기자단의 박 기자입니다.

드디어 안보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인, 백마고지 위령비에 이르렀습니다.

다들 함께 가보실까요?

 

두루미관과 월정리역을 지나 제5통제소에 이르면 안보여행을 떠나기 전에 맡긴 신분증을 교환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마고지 위령비로 향하는 길은 안보여행을 계속하고 싶은 분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향하시면 됩니다. 이곳은 통제구역이 아니기 때문이죠 ^^

저는 피곤해하시는 아버지를 졸라 마지막으로 백마고지 위령비로 향했습니다.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__)(--)(__) 꾸벅!

 

 

 

#. 백마고지란?

395고지라고도 한다. 철원읍 북서쪽 약 12km 지점인 휴전선 남쪽 DMZ 내부에 있다. 심한 포격으로 온통 파괴되어 공중에서 보니 백마(白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2년 10월 6~15일 정예군으로 알려진 중공군 제38군이 국군 제9사단(사단장 金鐘五 소장)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에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이 전투에 1개 군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1개 사단 병력을 잃었으며, 아군(9사단)도 3,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끝까지 고지를 사수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둔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유엔(UN)군은 휴전 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백마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 전쟁 당시인 1952년 10월 6일~10월 15일까지 한국군과 미군이 중공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 전투 과정

당시 강원도 철원 서북방에 위치한 395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지정학상 요지가 되어 중공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재개되었다. 10월 6일 저녁 중국인민지원군 대장 장융후이는 제38군단의 6개 연대이 지원부대병력 등 총병력 4만 4056명과 각종포 55문의 지원을 받으며, 국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에 국군은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여러 사단과 무기, 미군의 지원을 받아 중공군을 성공적으로 격퇴시켰다. 9일 동안 12차례의 공방전으로 백마 고지는 황폐화되었고 중공군은 1만 명, 국군은 35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전투 승리의 요인은 우수한 정보활동과 보병과 포병의 적절한 협동, 전투부대의 적절한 임무교대 등으로 통한 충분한 휴식이 있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 백마고지 위령비에 대한 설명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기념의 장’, ‘회고의 장’,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절했던 격전 현장을 재현하고 높이 22.5m의 기념탑을 세웠다. ‘회고의 장’에는 피아 전사자를 추도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기념의 장’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함께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도 배치하였다. ‘다짐의 장’에는 전망대와 함께 자유의 종각도 건립하여 오늘날은 국민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위로 향하는 길]

 

 


 




 


 

 

 

 

 

 

[시설 보완이 너무 필요한 것 같아요 ㅠ_ㅠ 고쳐주세요!!]

 

 




 

 

 

 

 

 

 

 

 

#. 백마의 얼

(85·6 건립한 당초의 위령비)

풀숲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 적들이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끓는 피로 용솟음 치며, 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쌌다.

이 한몸 초개같이 바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 같이 강물을 헤치고,

산을 부스며 달려 오는 적들을 막았노라.

수많은 적을 따라 소탕하고 조국의 얼로 내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 버렸나니 쓰러지며 죽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렸노라.

나의 조국...

영원한 땅이여!!!

만세를 가도록 그 얼은 살았으니 지금도 그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저 몰려오는 적을 막고 있노라.

푸르러 푸르러 영원한 젊음

우리는 그품에 안겨 안식하리라.

어머니 조국에 이 혼을 맡기어

후회없이 더 강하게

앞으로 달려 가리라.

 

 

[백마고지 위령비] 부근에 위치한 백마고지참전용사의 집.

이곳에 가서 백마고지 위령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면

친절한 군인 아저씨가 관련 설명을 해주시니 꼭 이용해 보시길 권유해 드립니다 :)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백마고지에서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장병들이 전사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지금은 시간의 흐름에 씻겨져 버린 백마고지에 뿌려진 그들의 붉은 피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치열했던 전투를 기억할 뿐이고 아직도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그네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이 나라 이 땅을 가로지르는 저 흉측한 철조망을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22살에야 철원 땅을 밟은 저로서는

안보여행을 통해 얻은 가슴 아린 추억이

이 나라 이 사회를 이끌어갈 한 명의 젊은이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소중한 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분단이란 아픔을 치유하는 데에 있어서 말입니다.

여러분의 2009년이 조금은 심심하셨다면!

한반도에 내재하고 있는 [분단]이란 거대한 문제를 극복해야 할 우리들에게

한 번쯤은 [안보여행]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원평야]에 넓게 펼쳐진 광대한 정경이 답답한 가슴도 시원하게 틔워줄거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박 기자의 안보여행이었습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해주세요 :)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__)(--)(__)